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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측에서 심심찮게 언급되는 말이 있습니다. 국민들에게 '진보도 밥먹여줄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죠. 언제부턴가 이 말이 당연하듯 쓰인 것 같습니다만, 왜, 어떻게 하여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회자되었는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말을 뒤집어 보면 그동안 진보는 밥 먹여주지 못한 반면에 보수가 국민들에게 밥 먹여주었다는 의미가 되는데, 이게 도대체 어떻게 해서 합당한 말이란 것인지 납득이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보도'라는 말은 '보수가' 했으니 진보 역시 할 수 있다는 의미겠지요. 그렇다면 진보 이전에 보수의 실력이 먼저 증명되었어야 하는데, 어떤 근거에서 보수가 국민 밥 먹여주는 실력이 검증되었다는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혹시 대한민국이 과거 보릿고개 시절을 지나 경이적인 경제성장을 이룬 것을 두고 은연중에 그런 의식이 머리속에 들어가 앉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설사 그렇더라도 한국의 경제성장이 꼭 보수의 실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죠.

박정희가 보수측이고 그의 통치 기간에 경제성장을 이룬 것을 두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라면 그것 또한 근거가 희박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박정희만이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는 전제 자체가 말이 안 됩니다. 다른 유능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어도 충분히 이룰 수 있는 것이죠. 박정희가 워낙 오랫동안 독재를 하다 보니 그것을 증명할 기회를 전혀 갖지 못했을 뿐입니다. 물론, 김영삼씨처럼 우리 국민은 독재를 좋아한다는 식의 망발을 내뱉는 사람이라면 그런 믿음이 거의 종교적인 수준이겠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박정희만이 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는 아무런 근거도 없는 유아적 발상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전후사정이야 어찌되었든 박정희라는 보수가 경제성장을 이뤄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치더라도 진정 국민 모두를 배부르게 하였는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실상 배터지도록 특혜를 주고 온갖 졸부들을 탄생하게 한 건 그 대상이 그리 넓지 않습니다. 소위 재벌을 비롯한 일부 기업가들과 국민 전체에 비해 결코 많지 않은 수의 일부 사람들이 혜택(?)을 보았을 뿐이죠. 반면에 전태일을 비롯한 대다수 서민들의 삶은 잘먹고 잘사는 축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국민의 일부만을 특별하게 잘살게 만든 것을 가지고 보수가 국민을 먹여살린다는 명제를 증명하는 것은 가당치도 않습니다.

박정희의 장기독재 기간을 제외하면 그 이후에는 경제적으로 별반 뚜렷한 특징이 없는 편입니다. 실상 군사정권 이후의 기간으로 판단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에서 좀 더 적합할 것인데, 보수인 김영삼 정부에서는 IMF를 맞아 서민들이 엄청난 경제적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에 반해 진보인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는 IMF 극복과 더불어 적지 않은 성과를 올린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신자유주의 추구로 인한 폐해도 적지 않았습니다만, 김영삼 때보다는 훨씬 나아진 게 엄연한 사실이죠.

그 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는데 지금 실상이 어떻습니까. 경제수준, 교역규모, 국가경쟁력, IT경쟁력, 환경수준, 국민기본권 수준, 복지수준 등 그 어느 것 하나도 나아진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엄청나게 뒷걸음질쳤죠. 국내외 각종 통계를 들여다보면 보수정부일 때보다는 진보정부일 때가 훨씬 더 큰 경제적 성과를 이루어냈습니다. 객관적인 사실이 이러한데도 마치 보수에게 밥먹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식의 말이 회자되는 것은 어이없기까지 합니다.

보수는 주로 성장을 우선시하고 진보는 주로 분배를 우선시하는 것에서 그런 오해가 비롯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성장을 우선시하는 게 반드시 밥먹여 주는 것과 연결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밥은 먹여주되 그것이 주로 부자들에게 돌아가는 것이죠. 서민들의 삶은 별반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더 악화되는 경향이 농후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이 이를 여실히 반증합니다. 그러니까,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보수가 결코 밥 먹여주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서민들에게는 진보야말로 실제로 밥 먹여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특권층이 아닌 다음에야 보수가 일반 국민들의 경제적 삶과 복지수준을 윤택하게 한다는 논리가 성립되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보수는 주로 자기들 이익에만 충실할 뿐이죠. 오히려 진보야말로 국민들의 전체적인 경제수준과 삶의 질을 높이는 것에 관심을 갖고 실제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보수가 아닌 진보측에서 '진보도' 밥먹여줄 수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은 스스로를 옭아매는 행위 외에 다름 아닙니다. 어찌하여 '진보도'란 말입니까. 진실은 '진보도'가 아니라 '진보야말로' 국민들에게 밥먹여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존재입니다!

언제부터, 어떤 근거로 '진보도' 밥먹여줄 수 있다는 말이 나왔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소위 프레임 전쟁에 있어 이 말보다 더 크게 진보측을 훼손하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보수측이 만든 프레임이라면 당연히 벗어나야 할 것이고, 무엇보다 진보측 스스로가 그런 말을 사용함으로써 올바르지도 않은 프레임을, 그것도 보수측에 유리한 프레임을 강화시키는 상황이라면 지금 당장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태그:#지방선거, #진보대보수, #프레임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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