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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

 

예전에 살던 고향의 공동우물이 메워졌다

나무판자를 관뚜껑처럼 덮은 우물에다

열십자로 나무 십자가를 대고

탕탕 동네 아버지들은 못을 박았지.

 

탕탕 우물 속 깊이 북소리처럼 울리는

못박는 소리들 내 어린 가슴에

파르르 아픈 잔못질 하고 사라졌지.

 

해마다 두 서너번씩 동네 아버지들 

굵은 두레박 밧줄을 잡고 내려가서

깊은 우물의 바닥이 보일 때까지 길어올렸지.  

 

동네 꼬맹이들이 빠트린 운동화 고무신 동전

구슬 연필 따위며 퉁퉁 불은 밥알과 썩은 콩나물… 

동네 아버지들 이런 돼지우물을 먹고 살았느냐고

투덜대며 두레박에 삶의 찌꺼기 가득 길어올렸지.

 

사람의 마음도 돼지 우물과 같아서

한해 한번 마음 밑바닥까지 청소 해야하는 거라고

동네 할아버지들은 동네 아버지들과 이야기했지.

 

2.

어느 해인가 동네 내 친구 아버지가  

농협빚에 쪼들려, 더 이상 못살겠다고 

쥐약 마신 돼지처럼 풍덩 뛰어 든 이후

이상하게도 더 이상 맑은 우물 고이지 않았지.

 

지금도 전깃불을 끄고 자리에 누우면 

나는 자꾸 깊이 캄캄한 우물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어쩜 내 마음에도   

한 해 서너번씩 청소하지 않으면

안되는 돼지 꾸정물 같이 나도 마실 수

없는 우물 하나 뿌리처럼 깊어가는 것일까

 

웃통 홀랑 벗고, 그 깊은 우물 바닥에서

우물 청소하다가도 왁자왁자하게 

멱살 잡고 싸우시던 동네 아버지들

 "거 참 한길 물 속은 알아도

사람 속 우물은 그 누구가 알겠나...." 

한결 같이 청소 끝내고들 한마디씩 했지.

 

그 맑고 깊은 우물 속에 고여드는 물소리들

휘파람 불면 자꾸 내 기억에서 흘러넘친다.

마치 오래된 무덤처럼 잠든 깊은 우물 지나며…

 

[시작메모] 기억에도 깊은 우물이 있는 것 같다. 가끔 그 기억의 뚜껑을 열어보면 캄캄한데 점점 눈에 들어오는 장면들이 있다. 그 장면들을 영화처럼 편집하면, 나의 영화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성경을 읽다가 '돼지가 우물에 빠졌..'라는 구절을 읽었다. 홍상수 감독의 첫 작품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감독이 어디선가 인터뷰한 기사로는, 어느날 찾아 간 술집의 간판 제목이 '돼지가 고추장에 빠진 날'이라서 이에 힌트를 얻어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정했다고 한다. 

 

그나저나 단 하루라도 청소하지 않고, 쓰레기 내다 버리지 않으면 방안이 '돼지 우물' 속 이 된다…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도 이와 같지 않은가.

 


태그:#내 마음의 우물, #오래된 우물,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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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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