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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율납부를 안내하는 총학생회의 공지
자율납부를 안내하는 총학생회의 공지 ⓒ 화면 캡쳐

이번 학기부터 숙명여대의 총학생회비와 졸업앨범, 기념품비가 자율납부로 전환된다. 등록금 납부시 합산되어 함께 내게 돼 있던 비용이 선택 가능하게 바뀐 것이다. 총학생회비는 매 학기 1만원, 졸업앨범과 기념품은 해당 학기에 내는데, 이를 내지 않을 수 있게 된 것.

이와 관련해 총학생회와 졸업준비위원회는 공지를 띄워 학생들에게 상황을 안내했다. 총학생회와 졸업준비위원회 측에서도 개강을 앞둔 2월에서야 학교측에서 해당 사실을 고지받았기 때문에 다소 어수선한 눈치다. 최소한의 홍보기간도 없이 갑자기 제도가 바뀌기 때문에, 학우들의 혼란으로 필요한 예산이 제대로 걷히지 않으면 업무 수행에 당연히 지장이 초래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비교적 자신이 납부한 비용대로 수혜받게 되는 졸업용품비와 달리 총학생회비의 경우 회비 납부와 관계없이 대부분의 혜택을 받는다. 총학생회에서는 회비 납부를 유발하기 위해 미납자에게 학생수첩과 시험간식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총학생회의 사업은 스쿨버스 운영이나 축제, 체육대회 등 전체 학우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많기 때문에 사실상 납부자와 미납자 간 차등이 별로 없다. 여기에서 모순이 발생한다. 실제로 이미 자율납부를 실시하고 있는 대부분의 학교들은 회비를 70% 걷으면 많이 걷은 거라고 할 정도로 무임승차자(free-rider)가 많은 상황이다.

이번 자율납부 시행에는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먼저, 왜 이런 시기에, 이렇게 갑작스레 자율납부를 실시하느냐는 것이다. 사실 최근의 뉴스를 되짚어보면 답은 간단하다. '숙대문건' 사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총학생회에 대한 압박이다. 본부의 학생 사찰과 개인정보유출로 파문이 일었던 숙대문건 사태는 아직 이렇다 할 진상규명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아래 관련기사 '학교가 몰래 나를 감시하고 있었다' 참조)

다른 학교들은 이미 대부분 자율납부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총학 측도 학교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겠지만 너무 급했다. 시기적으로 너무 속이 빤하다. 자율납부의 경우 무임승차자의 발생으로 회비가 전과 같이 걷힐 수가 없고 총학생회 사업에 지장이 초래됨은 당연하다. 부족한 비용은 본부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이 부분은 학교에서 주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간의 숙대 총학생회는 친본부적인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학교가 이를 압박할 이유가 없었으나, 숙대문건 사태로 인해 학우들의 자치기구가 학교 측에 모종의 위협으로 다가오면서 급박하게 이러한 조치를 취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또 한 가지는, '자율납부'라는 허울좋음 그 자체에 대한 의문이다. 대개 '타율'이나 '강제'보다는 '자율'이나 '선택'이라는 단어가 좋이 들린다. (그래서 우리는 그동안 그렇게 '타율'학습을 '자율'학습이라고 부르며 속고 속아왔지 않나) 총학생회의 존립 목적도 '자율'이나 '학생 자치'에 있으니 '자율납부'라는 단어와 퍽 잘 어울려 보인다. 하지만 이에는 상당한 모순이 엄존한다.

대학 내에서 총학생회가 담당하는 역할이 뭔지 우선 살펴보자. 총학생회는 가입하고 싶은 사람만 가입해 회비 내고 혜택 받는 동아리가 아니다. 졸업생이면 모두 자동가입되는 '동문회'처럼, 그 학교의 구성원이 된 순간 동시에 총학생회의 성원이 되는 것이다. 그로써 총학생회가 제공하는 광범위한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스쿨버스, 축제 운영, 학생 대표자 역할 등 총학생회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전체 학우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학생회비를 내지 않는다고 특별히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총학생회 투표권도 똑같이 주어진다. 그러니까 무임승차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그러니까 결국 학생회비 자율납부는 '성실 납세자'만 바보 만드는 허울좋음이다.

총학생회는 노동조합이나 이익집단이 아니라 자치 기구다. 학생회비는 노조 조합비가 아니라 세금 개념으로 봐야 하는 것이다. 시민에게 세금을 자율적으로 내게 하고, 내든 내지 않든 거의 비슷한 혜택을 주는데 미납자에 대해서는 별 제재도 없다면, 이 얼마나 비합리적인가? 총학생회는 전체 학우가 선거를 통해 뽑은 재학생의 대표다. 전체 학우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총학생회의 활동을 위해서 최소한의 회비 납부는 모두에게 주어진 평등한 의무다. 그럴진대 굳이 제도를 꼬고 개악하여 자치를 시험에 들게 만드는 게,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것인가?

돈 내는 놈이 바보 되는 제도, 학생회비 선택납부. 성실한 납세자가 되고픈 학우들의 선의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자율을 훼손하는 '자율'납부는 그만뒀으면 좋겠다. 합리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민주적이지도 않다.

덧붙이는 글 | 총학생회비 자율납부는 현재 대부분의 대학에서 시행하고 있으며 숙명여대에서 이번에 도입하는 것으로, 자율납부라는 제도 자체의 모순은 숙대에만 있지 않음을 환기합니다.



#총학생회#총학생회비#자율납부#숙명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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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는 곳이라도 누군가 가면 길이 된다고 믿는 사람. 2011년 <청춘, 내일로>로 데뷔해 <교환학생 완전정복>, <다낭 홀리데이> 등을 몇 권의 여행서를 썼다. 2016년 탈-서울. 2021년 10월 아기 호두를 낳고 기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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