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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누가 내 몸 안에 헛간을 들이는가

가슴에 망치질 소리

온 밤이 들끓더니

휑한 헛간 한 채 등불도 없이 서 있다

 

윤기 잃은 하늘 주저앉은 그 안엔

하루종일 별들 죽어가는 소리

벽을 흔들고

가문 땅바닥엔 손금처럼 희미한

길을 덮은 바람

빛 잃은 약속을 매어놓고 간다

 

자고나면 또 그만큼 넓어진 그 안엔

밤새 꾹꾹 짜서 널어놓은

가파른 목마름

못 이룰 꿈으로 펄럭이지만

 

사랑이란

크고 어두운 헛간 한 채 지어가다

결국은 그 안에 내가 갇히는 것

그림자도 내버린 캄캄한 헛간이

이제 나를 삼킨다

 

사라지는 시간이

빗장 걸리는 소리에 놀라

한바탕 울고 있다

           - 서석화 <내 마음의 헛간>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는 사실 '헛간'을 모른다. '헛간'이라고 발음해보면 입술 안에서부터 허허로워지며 갑자기 빈 몸이 된 것처럼 한기가 느껴지는 단어. 국어사전에는 '명사이며 문짝이 없는 광'을 이른다고 나와 있다.

 

그래서 그랬구나. 그래서 글자를 써 놓고 바라보기만 해도 저절로 한 데 나와 있는 것처럼 추워졌구나. 집안에서 가장 허름한 곳! 그러나 버리기엔 아깝고 또 언젠가는 쓰일 지도 모르는 물건을 그냥 넣어두는 곳. 그러다 긴 세월 한 번도 쓰지 않은 물건은 먼지에 덮여 구석에서 잊혀지는 곳. 문짝이 없으니 누군가 거저 집어가도 그만이나 울안에 있으니 내 영토인 것은 분명한 곳. 집안을 발칵 뒤집고도 못 찾은 물건이 결국 발견되는 마지막 장소. 나는 그래서 '헛간'에 매료되었다.

 

누구나 마음 안엔 자신만의 헛간이 있을 것이다. 헛간에서 먼지에 덮여가는 시간, 사랑, 꿈. 그러면서 우리는 스스로 헛간이 되는 건지도 모른다. 사라진 시간, 잊혀진 사랑, 포기한 꿈을 문짝도 없는 마음의 광에다 밀어 넣어 놓고, 버리기엔 아깝고 쓰기엔 번거로워 문짝도 만들어 달지 않은 채 외면해온 건 아닐까?

 

"사랑이란/ 크고 어두운 헛간 한 채 지어가다/ 결국은 그 안에 내가 갇히는 것" 이라고 나는 썼다. 어찌 사랑뿐이겠는가? 살면서 시시각각 갈증을 일으키게 하는 모든 것들, 삶이란 결국 헛간의 넓이를 키우는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건 '헛간'이란 쓰레기 처리장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직은 쓸 만하고 언젠가는 필요하며 손질하면 새 것보다 더 유용할 수도 있는 물건을 넣어두는 곳이 헛간이다. 오늘 내 마음의 헛간에는 어떤 것들이 들어있는지, 오래된 기억을 불러내 보려 하는 지금, 시간도 멈춘 듯 고요하다.(*)


태그:#내 마음의 헛간, #사라지는 시간, #망치질, #빗장,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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