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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우리는 인사동 사거리에 위치한 옛 'MBC방송국 터' 앞에 선다. 1960대 라디오 방송을 시작으로 하여 방송을 하던 이곳에는 예전 동일가구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 동일가구 건물에는 관광 상품을 파는 판매장이 들어와 있다. MBC방송국은 이곳을 거쳐 정동으로 갔다가 현재 여의도에 자리를 잡고 있다.
           
서울의 중심 표지석  하나로 빌딩에 있다
▲ 서울의 중심 표지석 하나로 빌딩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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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인사동 사거리에서 우측으로 길을 잡으면 20미터정도 가서 길 좌측에 '하나로 빌딩'이 보인다. 나는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이곳에 가끔 가본 적이 있는데, 빌딩 입구에는 1896년에 세운 '서울의 중심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전국의 지번(地番)이 이곳을 중심으로 표기되었으니, 과거 우체국이 있던 터인 것 같다. 당시 이곳이 서울성곽을 기준으로 중앙 정도 되었나 보다. 이 서울의 중심표식은 경술국치 이후에 세종로 사거리 충무공 동상 아래로 옮겨갔다가 현재는 광화문 교보빌딩 옆에 있는 '고종 즉위 40년 창경기념비각'으로 이전했다.

하나로 빌딩 옆은 '태화빌딩'이다.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인조의 잠저가 있던 곳으로 인조의 외가였다. 이후 헌종의 후궁 경빈 이씨의 사당인 순화궁이 되었다가 조선이 망한 다음에는 이완용이 인수하여 별장 겸 친일파들의 사교장으로 이용했다.
           
태화관 독립운동선언문을 낭독한 태화관은 현재 태화빌딩이다
▲ 태화관 독립운동선언문을 낭독한 태화관은 현재 태화빌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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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광화문 동아일보 자리에 있던 요릿집 '명월관'이 이곳에 '태화관 분점'을 내어 요정으로 쓰였다. 당시 태화관은 장안 부호들과 총독부 관리들이 즐겨 찾던 곳이다. 재미있게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은 이곳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이완용의 별장 겸 친일파들의 사교장이었던 이곳에서 3.1독립선언문이 낭독되었다니 이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가? 태화관은 이후 남감리교 재단에서 인수하여 태화빌딩을 건축하여 쓰고 있다.

다시 길을 나와 태화관의 앞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좌측에 '맥도날드 본사건물'이 있고, 그 안쪽에 'SK건설 빌딩'이 보인다. 조선의 대학자인 '율곡 이이(李珥)선생의 집터'이다. 평생 청렴결백했던 율곡은 가족들이 기거할 변변한 집 한 채가 없어 친구와 제자들이 이곳에 집을 마련해 주어 잠시 기거를 했다고 전한다.
              
율곡 선생의 집터  SK건설빌딩
▲ 율곡 선생의 집터 SK건설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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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의 집터에는 사동대감으로 불리던 구한말의 세도가 안동 김씨 김병학이 대궐 같은 집을 짓고 살았고, 1960년대에는 예식장이 들어섰다가, 이후 현재의 SK빌딩이 건축되었다.

다시 길을 나오면 얼마 전 인기리에 방송이 되었던 KBS의 드라마 '아이리스'의 촬영장(북에서 온 군인들의 은신처) 가운데 하나인 '하나투어'가 자리한 '씨티은행 건물'이 보인다. 이곳은 보통 은행과 여행사가 들어서 있는 건물로 생각들을 하지만, 명성황후의 조카로 1905년 을사조약 직후 자결한 '민영환 선생의 순국 터'이다.

이 건물 앞에서 선생의 순국을 기리는 작은 조각상이 있어 가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처음에는 그냥 건물에 있는 일상적인 조각품이라고 생각을 하였지만, 사연을 알고 보면 참 슬픈 터이다.
                  
민영환 선생 순국터  씨티은행과 하나투어가 있는 건물이다
▲ 민영환 선생 순국터 씨티은행과 하나투어가 있는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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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환은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조병세 등과 함께, 대궐에 나아가 이를 반대하였다. 일본 헌병들의 강제 해산으로 실패, 다시 종로의 육의전 거리에 모여 상소를 논의하던 중, 이미 대세가 기울어짐을 보고 가족들을 만나본 뒤 조용히 자결하였다.

당대 제일의 권문세가 출신으로서, 명예를 던지고 망국의 슬픔을 죽음으로써 달랜 것을 보면 당시 권력의 핵심에 있던 다른 민씨일파들과는 분명 차별이 있는 인물이었나 보다.

씨티은행 건물 뒤편에는 종로에 있는 어쩌면 전통의 거리 종로와는 가장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건물인 '종로타워'가 보인다. 우리나라 최초의 백화점이었던 '화신백화점' 자리에 건축된 이 건물을 보고 있자면, 강남의 테헤란로에 있어야할 건물이 왜? 종로의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아 종로의 분위기를 망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종로타워  종로의 전통과 문화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현대식 빌딩이다
▲ 종로타워 종로의 전통과 문화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현대식 빌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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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도 제발 지역과 문화에 맞는 건물을 신축할 수 있도록 건축물의 모양과 구조, 외관에 대한 규제가 철저하게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종로에는 특히 4대문 안에는 제발 고풍스러운 외관의 건물들만 신축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외양은 물론 색깔, 지붕의 모양 등도 조절이 필요할 것 같다.

이어 조계사 방향으로 길을 잡으면 우측 모퉁이에 '농협건물'이 보인다. 2층짜리 단층건물인 이곳은 원래 중외일보의 지령을 계승하여 1931년 창간된 중앙일보를 개제한 신문인 '조선중앙일보의 건물'이다.

1933년 대표적인 중도파 지식인이었던 여운형(呂運亨) 선생이 중앙일보 사장에 취임하여 제호를 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로 고쳤다. 당시 동아일보, 조선일보와 함께 민간 3대지였다.
         
조선중앙일보 사옥 농협 건물이다
▲ 조선중앙일보 사옥 농협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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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을 차지한 손기정 선수의 사진을 실으면서 가슴에 달린 일장기를 지워버린 것이 말썽이 되어 그보다 며칠 뒤에 역시 손기정 선수 사진에서 일장기를 지운 동아일보와 함께 무기정간 처분을 받았다.

이 무기정간은 이듬해인 1937년에 해제되기는 하였으나, 사내 내분과 재정 악화로 1937년 11월 5일 폐간되었다. 

이어 길을 조금 더 가면 우측 골목 안에 '평화박물관'이 보인다. 베트남전 참전에 대한 사죄와 화해운동을 기반으로 역사적 반성과 화해의 의미와 가치를 더욱 보편화시키고 심화시키고자 만든 역사교육운동을 위한 박물관이다.

최근 각종 교육, 문화 행사를 통하여 지역사회의 여러 가지 긍정적인 효과와 이득을 가져올 수 있는 지역화 된 교육 및 문화예술행사를 꾸준히 실시하고 있는 곳이다. 작은 박물관이지만 정말 의미 있고 좋은 전시가 많이 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조계사  조계종의 본산인 조계사
▲ 조계사 조계종의 본산인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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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길을 조금 더 가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조계사(曹溪寺)'다. 조계종의 본사(本寺)로 중앙총무원, 중앙종회 등이 있는 한국 불교의 중심지이다. 조선 초기에 창건된 사찰이다. 대웅전의 규모가 웅장할 뿐 아니라 문살의 조각이 특이한 것으로 유명하며, 경내에는 천연기념물 제9호인 흰소나무(백송)가 있다.

인사동에는 역사 문화적으로 의미가 있는 건물과 유물들이 너무 많아 차근차근 보지 않으면 전부를 보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볼거리가 있다. 620년 수도 서울의 중심, 특히 종로의 중심인 인사동은 서울의 보물임에 틀림없다.

덧붙이는 글 | 역사, 문화와 함께 하는 서울시 종로/중구 걷기 모임
네이버 카페 http://cafe.naver.com/daipapa



태그:#인사동 , #조계사 , #태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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榴林 김수종입니다. 사람 이야기를 주로 쓰고 있으며, 간혹 독후감(서평), 여행기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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