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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 년 전, 베드로는 그의 앞에 나타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로마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는 로마군에게 바로 체포되어 네로황제의 전용 원형경기장이 있던 자리에서 십자가형에 처해지게 되었다. 그는 예수님과 같은 십자가형에 처해지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며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렸다. 그는 로마 병사들에 의해 발목이 잘린 후 십자가에서 내려졌다.

 

베드로는 당시 공동묘지가 되었던 이곳에 묻혔고 훗날 그의 무덤을 찾아 그 무덤 위에 성당을 만들었으니 그곳이 바로 베드로 성당이다. 베드로는 제1대 교황으로 추존되었고 베드로 성당은 현재 전 세계 천주교의 총본산으로서 현대의 교황이 주재하고 있다.

 

 

베드로 성당의 오른편 문을 통해 십자가 모양의 성당 안으로 들어섰다. 4세기에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1세(Constantinus I, 274~337년)가 최초로 건립한 베드로 성당은 건물이 낡아서 원형 복구가 어려워지자 16세기에 다시 지어졌다. 당시 저명한 예술가들이 모두 이 베드로 성당 건립에 참여했을 정도로 르네상스 시기에 총력을 기울여서 무려 120년 동안 재건되었다. 나는 믿기지 않는 건축물 속으로 들어섰다.

 

축구장 크기의 6배에 달하는 엄청난 크기와 장엄함이 여행자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총천연색의 5백 개 대리석 기둥이 향연을 펼치고 있었다. 중앙 통로의 바닥과 천장 모두 컬러풀한 대리석으로 피부를 입혔고 성당 기둥 사이의 성인 조각상들도 모두 대리석으로 정교하게 깎아놓았다. 기둥의 문양이 모두 색깔 있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으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성당 내부가 온통 대리석 세상이었다. 성스러운 분위기가 온 성당을 감싸고 있었고 화려하고 반짝거리고 있었다.

 

성당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작은 예배당 쪽으로 갔다. 그곳에는 사람의 넋을 빼놓는 불세출의 대작이 있었다. 피에타(Pieta)! 천재 미켈란젤로가 나이 24살 때 남긴 이 작품은 폭발하는 르네상스의 전성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자비를 베푸소서' 혹은 '비탄'이라는 뜻의 이름은 대리석상을 보면서 현실이 된다. 얼굴의 표정이나 섬세한 옷자락은 도저히 돌에 조각된 조각이 아니었다.

 

 

살아서 움직이는 내가 유리 너머로 얼마 전에 죽은 사람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예수의 팔과 다리는 축 쳐져 있었다. 성모 마리아는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를 무릎 위에 끌어안고 있었다.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은 채 깊은 상념에 빠져 있었다.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은 형언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침잠하고 있었다. 가슴이 뭉클하고 마음이 시려온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족을 잃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에 감정이 이입될 수 밖에 없다. 오늘 만난 한 한국인 아가씨는 이 피에타를 보고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로마에 사는 그 아가씨는 피에타를 다시 보면서 목 놓아 통곡했다고 한다. 나난 피에타를 보기 전에 이 아가씨의 이야기를 듣고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다.

 

십 수 년 만에 다시 만난 '피에타'. 나는 일부러 슬픈 표정 짓지는 않기로 했다. 나는 밝은 마음으로 피에타를 감상하기로 했다. 피에타는 슬픔이 밀려오는 작품이지만 동시에 참으로 아름다운 작품이기 때문이다.

 

성모 마리아의 표정은 바라보는 이의 마음이나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 마리아는 어느 쪽에서 보면 슬픈 표정을 짓고 있기도 하지만 어느 쪽에서 보면 성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다. 마리아는 체념한 듯한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자세히 보면 성모 마리아의 얼굴은 늙은 어머니가 아니라 소녀와 같은 모습이다. 성모 마리아는 아들인 예수보다도 더 젊어 보인다. 미켈란젤로는 순결한 여자가 절대 늙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성모 마리아의 어깨에 걸친 띠에는 이 작품을 만든 미켈란젤로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피에타는 미켈란젤로가 유일하게 자신의 이름을 남긴 작품이다. 당시 사람들이 뛰어난 이 작품을 다른 조각가의 작품으로 오해하자 미켈란젤로는 밤중에 이곳에 와서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다시는 자신의 작품에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마리아의 옷 위에 이름 알파벳 여러 자를 정교하게 새기는 일이 하룻밤에 끝날 것 같지는 않다. 아마 이 이야기는 후세 사람들이 재미거리로 만든 이야기일 것이다.

 

나는 아내와 딸을 데리고 점점 더 성당의 내부로 들어갔다. 성당의 중심에는 '하늘의 지붕'이라는 뜻의 청동 닫집, 발다키노(Baldacchino, 天蓋)가 있었다. 베드로 무덤의 덮개로 사용되는 이 발다키노를 중심으로 열십자 모양의 통로가 뻗어나가고 있었다.

 

발다키노의 천 톤에 가까운 청동은 1633년에 판테온의 지붕과 정문을 장식하던 청동별을 떼어온 것이다. 야만인도 하지 않을 만행을 당시 청동작품의 귀재였던 지안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 1598~1680년)가 자행한 것이다. 이 발다키노에는 콜로세움에서 떼어온 청동도 녹아들어가 있다. 콜로세움 외벽에 숭숭 뚫린 구멍들도 베드로 성당을 지을 때에 청동이 뜯겨 나간 자국들이다.

 

29m 높이의 발다키노는 나선형 기둥이 휘감아 올라가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나뭇잎 문양이 마치 덩굴 올라가듯이 기둥을 따라 위로 뻗어 있고 발다키노의 기초 대리석에는 꿀벌이 날고 있다. 발다키노의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성령의 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있고,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가 천장의 중심에서 날고 있었다. 검고 거대한 청동이 강렬한 중량감을 느끼게 한다.

 

 

이 발다키노가 둘러싸고 있는 곳 아래가 정확히 베드로가 묻혀 있다고 추정되는 지점이다. 실제로 이 곳에는 베드로 유골 중 일부가 남아있다고 믿어지고 있었고, 역대 교황들은 초대 교황으로 추앙된 베드로와 함께 묻히고 싶다고 하여 베드로 성당 지하에 묻혔다.

 

교황들이 계속 이 지하에 묻힘에 따라 지하 묘소를 확장하다가 1940년에 고고학자들의 발굴에 의해 베드로 무덤의 실재가 확인되게 된다. 그 곳에는 '여기에 베드로가 있다'는 문구가 발견되었다. 그 무덤 안에서는 발이 잘려나간 것으로 보이는 유골이 발견되었다. 베드로가 십자가에서 내려질 때 발목을 잘랐다는 역사적 기록과 일치한 것이다.

 

이 발다키노의 바로 위로 미켈란젤로가 만든 돔 지붕인 큐폴라(Cupola)가 햇빛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큐폴라의 높은 높이는 성스러움과 신비로움을 더하고 있었다. 큐폴라와 발다키노가 베드로 성인의 무덤을 품에 안고서 지키고 있었다. 발다키노는 밝은 하늘과 베드로의 무덤을 연결시켜주고 있었다.

 

 

큐폴라 가장자리에는 '너는 반석이며 이 반석위에 나의 교회를 세우며 너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노라'는 2m 크기의 라틴어 글자들이 새겨져 있다. 큐폴라 외곽 사방에 붙은 원형 모자이크에는 신약의 4대 복음서 저자들인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 그려져 있다. 큐폴라의 햇빛이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서를 통해 성당 내의 이곳저곳에 신비롭게 쏟아지고 있었다. 어두운 성당 내부를 비추는 자연광 햇빛이 성당 내부를 더욱 경건하게 만들고 있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햇빛을 감상하며 성당 내부를 아주 천천히 걸었다. 한 조각상 앞에 많은 여행자들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줄을 서 있었다. 어떤 조각상인지 확인해보기 전에 일단 줄을 섰다. 일단 줄을 먼저 서고 보는 것이 나중에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 로마 여행에서 터득한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내 시야에 점점 조각상의 모습이 나타났고 그 조각상은 왼손에 열쇠를 들고 있었다. 천국으로 가는 열쇠! 그는 베드로였다.

 

베르니니가 만든 이 청동 베드로의 발을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지고 좋은 일이 생긴다고 사람들은 믿고 있었다. 이 긴 줄은 자신의 소원을 빌기 위해 늘어선 줄이었다. 나는 천주교의 중심 성당에 개인의 기복신앙이 들어와 있는 모습이 조금 놀라웠지만 나도 이미 자연스럽게 동참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발을 만지며 시대를 앞서 간 성인의 마음을 전해 듣고 싶었다.

 

 

베드로의 강렬한 인상은 검정색에 가까운 짙은 갈색의 청동에서 나오고 있었다. 대리석과 다른 청동의 투박함과 강인함이 베드로의 얼굴을 통해 드러나고 있었다. 그는 왼손에 그의 상징인 열쇠를 굳게 잡고 있고 오른손을 들어서 하늘의 천국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의 눈빛도 천국인 하늘을 향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얼굴은 절절한 신앙심이 녹아서 무엇엔가 깊이 심취해 있었다.

 

베드로 발의 윗등은 현대인들의 인기 속에서 닳아 없어지고 있었다. 그의 오른쪽 발등은 마치 버선같이 밋밋하게 닳아져서 발가락의 윤곽이 아예 사라져 버렸다. 나는 베드로의 발을 만져보았다. 그의 청동 발은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느껴졌다. 그저 청동이었지만 이 청동이 나타내려 한 베드로의 삶을 알기에 나는 마치 베드로의 발을 만지고 있는 것 같은 환상에 빠졌다.

 

로마 병사들에 의해 발목이 잘렸던 베드로는 2천년의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발목이 사라지고 있었다. 2천년 전 베드로의 발목은 죽임을 당한 후 순식간에 잘려나갔지만 지금 그의 발은 수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서서히 서서히 닳아 없어지고 있었다. 발다키노 아래에 2천년 동안 잠들어 있을 베드로는 천국의 열쇠를 쥐고 베드로 성당 안의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바티칸, #베드로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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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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