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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오후 2시 충남도청 대강당의 한 장면이다.
▲ 이완구 충남지사 지난 1일 오후 2시 충남도청 대강당의 한 장면이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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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대전을 갔다. 이완구 충남지사가 세종시 문제와 관련, 충남의 각계각층 지도층 인사 수백 명을 도청 대강당에 초청하여 간담회를 연 자리에 참석을 했다.

처음에는 가지 않으려고 했다. 현재 병환 중이신 노친을, 거의 한 달 동안 입원했던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병동에서 11월 30일 태안의 '서해안요양병원'으로 모신 다음날이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차질로 말미암아 일거리가 더욱 산적해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하지만 도청에서 등기 우편물을 보낸 것으로 그치지 않고, 도청 직원이 두 번이나 전화로 간곡히 참석을 부탁해서, 원래 '거절' 쪽으로는 마음이 약한 성격이기도 해서 참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운전이 지겨워 버스를 타고 갔다. 너무도 오랜 세월 고장에서 이리저리 '돈 쓰고 시간 쓰고 고생하는' 내 팔자를 또 한 번 조금은 한탄을 하며, 대전 동부터미널에서 택시를 탔다. 도청으로 가자고 하니, 어디서 사시는 분이고, 도청에는 무슨 일로 가느냐는 질문이 왔다.

택시 기사의 적극적인 성품에 호기심을 느끼며 내 사는 동네와 오늘 대전에 온 목적을 말하니, 5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택시기사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세종시, 그거 다 노무현이 때문에 생긴 문제예요. 노무현이가 너무 일찍 오픈을 해버려서 생긴 문제라구요."
"왜 일방적으로 노무현 탓을 하죠? 난 이명박 때문에 혼란이 생겼다고 보는데요."
"애초 노무현이가 충청도 표를 얻을라구 벌인 일이지요."

"그럼, 세종시 자체를 부정한다는 얘깁니까?"
"왜 수도를 쪼갭니까? 세계에 수도가 두 개인 나라는 없어요."

"세종시가 생겨도 수도는 서울입니다. 수도를 분할하는 게 아니에요. 정부 기구를 몇 개 옮긴다고 해서 수도가 쪼개지는 건 아니지요."
"정부 부처를 여러 개 옮긴다면 그게 수도를 분할하는 거지 뭡니까? 그렇게 되면 얼마나 비효율 문제가 발생하겠습니까? 안 그래요?"

"이 좁은 나라에서, 한 시간이면 가는 거리를 두고, 또 통신과학이 최첨단을 가는 나라에서 정부 부처 몇 개를 옮긴다고 정부 기능이 마비되거나 비효율로 떨어지는 건 아니지요."
"내가 대전 사람이어서 잘 아는데요. 대전 둔산에 정부 청사가 있는 거, 그거 아무 의미도 없는 거예요. 거기서 일하는 공무원들, 낮에 근무만 대전에서 하고 전부 서울 가서 살아요. 걔들이 돈 쓰는 곳은 서울이라는 거죠. 그것과 마찬가지로, 세종시에 정부 부처 몇 개 옮기는 거, 아무 의미 없어요. 사람이 많아지고 돈이 돌려면 대기업이 들어가야 해요. '현대'가 들어가서 커진 저 울산같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무엇보다 대기업이 들어가야 한다구요."

"세종시를 행정중심 복합도시로 만들려는 계획은, 수도권 과밀화 현상을 완화하고, 국토 균형발전을 꾀하며,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양극화 현상을 일정 부분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수도권 과밀화 현상, 국토 균형발전, 수도권과 지방의 양극화 현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세종시가 그런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천만에요.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구요. 세종시 문제 때문에 괜히 국론만 분열되고 혼란스러워지는 거, 좋은 일 아니에요."

"세종시의 본래 목적을 부정하고 변경하려는 것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 그 혼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건 뭐 당연히 거쳐야 할 과정이지만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에요. 세종시를 원래 계획대로 만드는 것보다, 원래의 잘못된 계획을 변경하는 일에서 생기는 일시적인 혼란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죠."

"참 편리한 생각이로군요. 그럼, 4대강 사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거 당연히 해야지요."
"당연히 해야 한다?"
"4대강을 훼손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그건 훼손이 아니라 정리를 하는 거예요. 잘 정리를 해서 이용 가치를 높이자는 거지요."

"수만 년을 자연스럽게 물이 흘러온 강을 인위적으로 '정리'를 하고 시멘트를 처바르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요? 그 '정리'라는 말이 너무 무례하고 건방진 말 같은데…."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어떤 게 옳은지는 현재 아무도 몰라요. 반대를 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무조건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고, 반대를 위한 반대도 많아요."

"어떤 게 옳은지는 현재 아무도 모르는 일을 당신은 왜 찬성하십니까?"
"과거 박정희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할 때도 야당은 반대를 했어요. 또 얼마 전에 고속전철을 놓을 때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지금은 그게 다 옳은 일이지 않습니까? 모든 것은 시간이 말해준다구요."

"4대강 사업을 고속도로나 고속전철 건설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일 것 같은데요."
"그게 그거지요, 뭐. 안 그래요? 아무튼 반대가 있을 수는 있지만, 잘하고 못하고는 시간이 결정해 줍니다."
"만약에 4대강 사업이 큰 잘못으로 나타날 때는, 누가 책임을 지죠? 당신 말대로 시간이 말해 준다면, 당신이 죽은 다음에 그 결과가 잘못으로 나타날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대화는 여기에서 끝났다. 택시가 도청 정문 앞에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내 마지막 의문에 대한 택시 기사의 답변은 듣지 못했다. 하여 그것은 궁금증이 되었고, '미궁'이 되었다.

'이명박교' 신자인 그 택시 기사는 모든 것은 시간이 결정해 준다고 말했고, 나는 그 시간이 가져올 수 있는 책임 문제에 대해서도 걱정을 한 셈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책임 문제는 문제도 아니다. 4대강 사업 추진 세력과 찬성론자들은 책임 문제에 대해서 자유로울 수밖에 없다. 역사 이래로 무슨 일이건 잘못된 일에 대해서 책임을 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죽은 다음이어서 책임을 지지 않은 경우도 있고, 변명과 남 탓으로 돌린 경우도 많다. 그러면 그것으로 끝이다. 책임에 대해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다. 우리 삶과 역사에는 '책임'이라는 전통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택시 기사는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서도, 세종시 자체를 부정하고 잘못된 일로 간주하면서 그것을 노무현 탓으로 돌렸다.   

4대강 사업은 과도한 성형수술로 인체의 모습과 속내를 확 까뒤집고 바꾸는 것과 같다. 과도한 성형수술에는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지만, 그 어떤 부작용 앞에서도 집도를 한 의사는 대개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게 다 인체를 좀더 아름답고 때깔 좋게 만들기 위한 일이었다고 말할 수 있고, 또 합법적인 의료 행위였기 때문이다.

합법이라는 이름 아래 가능해지는 의료 행위, 과도한 성형수술에는 으레 돈이 결부된다. 사실은 돈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진다. 의사 면허를 취득하고 합법의 우산 아래 보호받는 의사라고 해서 다 우수한 의사인 것은 아니다. 그들 중에는 돌팔이보다도 실력이 떨어지는 의사도 있기 마련이고, 유난히 돈을 밝히며 상술을 의술로 둔갑시키는 재주로 의료행위를 하는 치들도 있을 것이다.

4대강 사업도 결국은 돈 때문이다. 4대강 사업은 충분히 합법적이지도 못한데, 경제 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자행되는 일이다. 우선 토건 경제가 활발해야 나라 경제가 발전한다는 30년 전과 똑같은 집착 때문에 과도한 성형수술 같은 4대강 사업이 벌어지는 것이다. 엄청난 부작용이 뻔한데도 말이다. 가히 '토건파시즘'이 온 강토를 뒤덮고 있는 형국이다. 

얄궂고도 모호하기 짝이 없는 시절이다. 민주주의는 뒷걸음질치고, 불법을 저지른 자들이 유난스레 '법치'를 강조하며, 도처에서 상식을 깔아뭉개며 양아치 근성이 판을 친다. 분별력도 없고 부끄러움도 모르는 나부랭이들이 운전대를 잡고 역주행 질주를 감행하는 것이다.

역주행 질주인지도 모르고, 70년대 개발독재시대의 자동차 위에 만재한 무리들은 환호를 내지른다. 70년대 경부고속도를 건설할 때도 반대를 위한 반대가 있었다고 30년 전 얘기를 읊어대면서…. 모든 것은 시간이 말해 준다고 떠벌리면서….

여러 가지 면에서 7·80년대의 암울했던 터널 속임이 분명하다.  


태그:#세종시, #4대강 사업, #토건파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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