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선선한 바람에 은빛물결 출렁이는 전주천 억새길. 가을이 깊어갈수록 억새는 은빛 바람타고 블루스를 추며 교향악을 연주한다. 22일 오후 전주시 완산구 교동, 전주천변 억새길을 찾은 시민들이 가을정취를 느끼며 걷고 있다.
▲ 은빛물결 출렁이는 전주천 억새길 선선한 바람에 은빛물결 출렁이는 전주천 억새길. 가을이 깊어갈수록 억새는 은빛 바람타고 블루스를 추며 교향악을 연주한다. 22일 오후 전주시 완산구 교동, 전주천변 억새길을 찾은 시민들이 가을정취를 느끼며 걷고 있다.
ⓒ 신영규

관련사진보기


가을엔 억새가 구슬피 운다. 대중가요 고복수가 부르는 '짝사랑'의 첫 구절 '아~으악새 슬피 우는 가을인가요'는 가을이 왔음을 노랫말로 옮긴 것이다. 으악새를 새로 오인하는 사람도 없지 않지만 으악새는 날아다니는 새가 아니고 억새를 말한다.

지금 전주천 산책로 양쪽 둔치엔 가을의 정취가 한 아름 느껴지는 억새물결이 절정이다. 자연적으로 자라난 억새와 인위적으로 심은 억새가 한데 어우러져 춤을 추고 있다. 하얀 솜털뭉치, 그러면서도 투명한 구름처럼 억새는 하늘거린다. 구름 한 점 없는 에메랄드빛 하늘과 눈부신 억새꽃이 서로 맞선을 보고 있다. 천생연분이다. 단풍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한 빛깔'로 도심을 하얗게 뒤덮은 억새는 깊어가는 가을을 심연으로 이끈다.

억새꽃은 바람을 그리는 붓이면서 태양빛을 담아내는 팔레트다. 청명한 가을 햇살을 눈부신 은빛으로 부숴내고, 어둠이 틈입해 오는 해돋이 땐 황금빛으로 맞는다. 스러져가는 태양이 노을을 퍼뜨릴 때, 억새는 진한 구릿빛으로 장엄한 일몰의 종지부를 찍는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억새는 더욱더 온몸으로 노래한다. 찜통더위 속에서 아련하게 가버린 여름을 추억하며, 또 살아남은 것들을 위해 억새는 유연한 동작으로 블루스를 추며 교향악을 연주한다.

시민들은 소슬바람에 일렁이는 억새물결을 고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전주천을 걷는다. 전국 어디서나 억새의 아름다운 자태를 볼 수 있지만 전주천 억새는 도심 한복판에 길게 무리지어 있다는데 색다른 운치가 있다. 마치 눈꽃 속을 거니는 기분이랄까?

전주천 억새길에서 만난 인후동에 사는 김지연(40)씨는 "모처럼 쉬는 날 억새길을 걸으니 일주일 동안 누적된 피로가 한꺼번에 풀리는 듯한 느낌"이라며 "은빛 억새를 보며 산책을 하니 몸도 맘도 건강해 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

친구와 함께 산책을 나왔다는 호성동에 사는 이정숙(55)씨는 "전주천 억새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해 뜰 무렵과 해질 무렵이다. 특히 억새밭에 가을 햇살이 옅게 비칠 때 바람결이 빚어내는 억새들의 합창소리는 대자연이 만들어 내는 교향악"이라고 표현했다.

척박한 천변에서 소리 없이 피어나는 은빛물결. '꽃도 아닌 것이 꽃이다'고 말하고, 향기도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설렘으로 만드는 마력은 어디에 있을까? 억새꽃 주변에는 벌과 나비대신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천변 길 양 옆으로 흙이 있는 곳에 뿌리를 내리는 강인한 생명력, 그래서 전주 천변의 억새꽃은 오가는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서정으로 이끈다. 누가 억새꽃 씨를 뿌렸을까. 전주천의 미관과 생태 조성을 위해서 인위적으로 억새 씨를 뿌린 것이다.

눈 시린 청잣빛 하늘에/외롭게 흘러가는 구름 한 점/들국화 향기 피워대는 들길엔/가을이 웃고 있는데/은빛 바람 타고/하얀 손수건 흔들며/너는/무슨 한이 그리 많아/소리 내어 흐느끼며/하얀 속살 떼어 날리는가.

억새를 보고 느낀 소감을 시로 옮겨 봤다.

전주천은 동남쪽에서 북서쪽으로 흐르는 1급 하천으로 길이가 30km나 된다. 전주천이 자연하천 조성사업 전에는 물이 심하게 오염돼 생물이 거의 살 수 없었다. 하지만 전주시가 생태계 복원 사업을 실시한 후 13여 년 전부터 1급수에 가까운 수질로 바뀌었다. 사시사철 백로가 수시로 날아와 피라미, 쉬리, 모래무지, 붕어, 버들치, 등의 물고기를 잡아먹고 한가롭게 노닐다 간다. 때로는 겨울 철새 원앙도 날아와 그 고운 깃털을 맘껏 뽐내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다슬기, 반딧물 유충도 서식한다.

이처럼 전주천은 맑은 물이 흐르는 자연형 하천이다. 사람과 자연이 조화로운 녹색환경도시 하천으로 조성되었다. 전주시민들은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전주천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건강을 다지고 여가를 즐긴다.

가냘픈 모가지를 흔드는 억새의 여유로운 몸짓. 낭만적이면서도 쓸쓸하고 한편으론 고고하게 느껴지는 멋스러움. 이 때문에 사람들은 억새밭으로 몰려드는지 모르겠다.

약한 것 같으면서도 억새의 생명력은 강하다. 이 가을, 마음이 심란하고 우울한 사람은 전주천 억새 길을 걷어보라. 가을이 떠나기 전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꽃의 유혹에 빠져보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2009년 10월 23일자 전북도민일보에도 나갔음을 밝힙니다.



태그:#억새 , #전주천억새길 , #은빛물결 , #으악새, #가을정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짧은 시간 동안 가장 성공한 대안 언론이라 생각합니다. 최근 언론개혁 문제가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는 상황에, 기존 언론으로부터 이탈해 있거나 실망을 느끼던 국민들이 오마이뉴스를 새로운 희망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언론에서 시민기자로 활동하고 싶습니다.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