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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과 궁중문화의 올바른 이해는 그 현장을 직접 답사하는 속에서 다듬어지고 이루어진다. 따라서 궁중문화유산의 답사는 매우 중요한 한 과정이다.

문화유산을 유물과 유적으로 크게 나누어볼 수 있듯 궁중문화유산 또한 궁중유물과 궁중유적으로 크게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이 가운데 궁중유적이라 하면 주로 궁중문화가 펼쳐졌던 공간이라 이해하셔도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가장 중요한 공간은 두말할 것도 없이 궁궐(宮闕)이다. 그밖에도 종묘(宗廟), 사직(社稷), 왕릉(王陵) 등이 중요한 공간이다. 물론 이밖에도 궁중문화가 펼쳐졌던 공간은 헤아릴 수 없으나 우리가 가장 많이 찾는 것은 궁궐, 종묘, 사직, 왕릉이다.

그런데 궁궐은 살아 있는 공간이고 서울의 랜드마크로 확실히 자리매김을 해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찾지만 종묘, 사직, 왕릉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으며, 따라서 우리들이 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매우 적다. 물론 궁궐이라 해서 모든 궁궐에 경복궁(景福宮)처럼 많은 사람들이 찾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경복궁을 관람한 것을 토대로 창덕궁(昌德宮), 창경궁(昌慶宮) 등으로 관심이 옮겨가기 때문에 궁궐은 상당히 많이 알려질 수 있었다. 그러나 종묘, 사직, 왕릉은 그렇지 못하다. 이는 아마도 이들 공간이 제의의 공간, 죽음의 공간이라는 사실과 더불어 이것들이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의 역사와 문화에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러나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이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하여 가장 유학적인 나라를 만들어갔던 나라임을 생각한다면 종묘, 사직, 왕릉이 지니고 있는 중요성을 결코 지나칠 수 없다. 오죽하면 나라를 가리키는 말로 '종묘와 사직'을 합한 '종사'(宗社)라 했겠는가. 더구나 충효와 예를 목숨보다 더욱 소중히 여겼던 조선 사람들이다. 조상들의 무덤에 대한 강조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우리는 오늘날에도 길이 막히는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조상의 무덤을 찾고 벌초하며 성묘한다. 그것은 오랜 효의 아름다운 전통이다. 허례라고 몰아붙인다면 할말이 없을지는 모르겠으나 조상의 음덕을 기리고 그 음덕을 통해 후손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게 해주는 아름다운 뜻이 담긴 것이 제사이다. 전통문화의 계승이 항상 고정불변일 수만은 없으나 전통을 오늘날의 모습에 맞게 효과적으로 계승할 수 있다면 그만큼 아름다울 수 없다. 그러한 발랄함, 역동성, 탄력성을 지니고 있었던 한국문화의 특성에 세계는 주목했던 것이다.

잘 아시다시피 종묘는 불국사와 석굴암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또한 그 속에서 펼쳐진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은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어떤 사람은 서양에는 파르테논, 동양에는 종묘라 할 만큼 종묘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외국인의 극찬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종묘에서 느끼는 감정은 형언할 수 없는 깊이의 감동과 뜨거운 무언가이다. 종묘의 정전(正殿)은 100미터에 이른다. 단순하지만 위대하고 아름다운 종묘 정전의 기둥들이 펼쳐내는 울림은 감동 그 자체이다. 영원성, 엄숙성을 굳이 말로 표현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한편 조선왕릉이 마침내 올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그러나 등재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요, 세계인들도 격찬을 아끼지 않을 만큼 무한한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이라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조선왕릉은 범접할 수 없는 기품과 품위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이 조선왕릉의 모든 것은 아니다. 조선왕릉의 진정한 가치는 충효와 예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겼던 조선 사람들의 정신, 사치보다는 절약과 검소함을 강조했던 치열한 자기수양과 절제의 정신, 백성들의 고통을 덜게 하고 그들에게 피해를 안겨 주지 않으려 노력하고 실천하여 백성의 믿음을 얻고자 했던 위정자들의 의식이라든지 애민(愛民)의 정신이 담겨 있는 유산이라는 데 있다. 이는 종묘나 사직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바로 그러한 진면목과 매력이 이들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수 있었던 마땅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러한 진면목과 매력을 오늘의 위정자들은 귀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나는 이 점에서 우리 궁중문화의 진면목과 매력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는 심한 빈부의 격차를 느끼고 있다. 이것은 단지 물질적인 측면의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심리적으로도 이 사이에 상당한 격차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호화롭게, 돈을 펑펑 써가며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그들의 이야기와 스캔들이 터지면 관심을 집중한다. 그들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비판하는 것에 더 익숙해져 있다. 그러면서 고급문화라는 것에 대한 비뚤어진,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 반대로 돈이 많거나 부유한 사람들 가운데 -물론 수많은 부자들이 그렇지 않지만- 아직도 자신보다 가난한 사람들을 하인 취급하며 무시하기 일쑤다. 도덕적 책무라는 것에 대한 사회 지도층, 부유층의 인식은 생각보다 매우 낮은 편이다. 뇌물이 떡값으로 치부되는 것은 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신분이 없는, 자유롭게 누구나 말 할 수 있는 사회임에도 이러한 격차와 심한 위화감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최근 방영된 드라마들에 대해서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 단지 있을 수도 없는 막장의 현실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드라마들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있는 집안과 없는 집안에 대한 너무나 지나치고 어이없는 왜곡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갈등들이 방영된다는 사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빠져들면서도 비난하는 이해가 가지 않는 현실 등이 내가 드라마들을 비판하는 주된 이유이다. 드라마들이 시청자들에게 끼치는 만만치 않은 영향력 때문이다.

나는 수백 년을 대대로 이어오는 종택들을 보면 이러한 드라마들에서 보이는 행태가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다. 과연 우리가 흔히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또는 오늘날 드라마들에서 보이는 고부갈등이 조선 사회에 그대로 있었다면 과연 저렇게 600년을 면면히 이어올 수 있을까? 단언하건대 결코 없다. 백 년도 다툼이 없이 살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인생이다. 하물며 600년이다. 다툼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다툼의 본질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이 고부갈등과 같이 빈부의 격차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과연 제대로 된 것일까? 나는 이 점이 정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점에서 돈이 많은 사람, 돈이 없는 사람 모두 그들의 비뚤어진, 잘못된 생각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명품의 가치는 가격이 아니라 그 속의 정신이다. 몇 백 만 원을 호가하는 정장을 두르고, 벤츠를 타고 다닌다고 해서 그가 기품있고 품위있으며 교양있는 남성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입고 다녀도 망나니짓을 하고 다니고 여자를 노리개처럼 일삼는 남자들에게 세상 사람들은 육두문자까지 동원하여 그들에게 비난을 날릴 것이다. 우리는 진정 기품있고 품위있으며 교양있는 사람에게는 그와 같은 비난을 날리지 않으며 날릴 수도 없다. 진정한 교양인은 지식, 재력, 권력, 돈, 명예 등의 많고 적음과 높고 낮음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있는 분야를 천직으로 알고 그렇게 자신의 일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 가족과 주위 사람들을 언제나 위하는 따뜻한 심성을 가진 사람, 불의와 불법을 철저히 배격하고 지조와 절개를 지키는 것을 잊지 않는 사람, 비록 세상의 변수가 많기에 변칙을 쓰는 일이 있겠지만 그것을 원칙과 정의의 틀에서 융통성있게 활용할 줄 아는 사람, 우리는 그런 사람을 교양인 또는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던가?

내가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의 궁궐과 궁중문화에서 찾는 진면목과 매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비뚤어진 면이 없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연산군이다. 연산군은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의 궁궐과 궁중문화가 지니는 품격과 위신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인물이다. 물론 그의 개인적인 아픔에 대한 동정심이나 그가 추구했던 정치상에 대해 전면적인 부정의 시선을 보내는 것은 아니며, 또한 그것은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그는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이 추구했던 통치의 방향과 이념에서 어긋났을 뿐더러 아무리 자신의 개인적인 아픔, 정치에 대한 이상이 좋았을지 몰라도 백성을 괴롭힌 군주였기 때문에 결코 좋은 평가를 받을 수가 없다.

이렇게 분명히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의 궁중문화는 비뚤어진 면도 어느 정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모든 것인가? 그것은 정말 잘못 본 것이다. 왜 경복궁이 자금성보다 작을까? 그렇기 때문에 정말 옹졸한 것일까? 경복궁은 경복궁이고 자금성은 자금성일 뿐이다. 경복궁이 들어앉을 자리에 자금성이 들어앉으면 우스꽝스러울 뿐이다. 그러나 단지 이것뿐만이 아니다. 우리 조상들은 사치를 지극히 싫어했고, 절검을 강조하며 실천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보는 궁궐도 너무 크다고까지 한 것이다. 박제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는 너무 소비를 안 한다는 것이다.'라고까지 이야기할 정도였다. 그의 말은 분명히 일리가 있다. 경제의 원활함을 위해서는 소비가 활성화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것은 무분별한 소비와 구분을 지을 필요가 있다. 분명 사치를 싫어하고 절검을 강조하는 것이 100%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나쁘게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것을 가장 위에 있는 국왕과 그 아래의 위정자들부터 실천해나갔던 것이다. 조선을 '돌집 같은 나라'에 비유할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며, 그러한 정신이 온 백성들에게까지 고루 전파가 되었기에 비록 세도정치의 오랜 폐단 속에서도, 세도정치가 끝난 이후에도 40년을 더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오늘날 대통령으로부터 국회의원, 공직자들의 모습은 어떤가?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울 지경이 아닌가?

바로 이 점에서 우리는 궁궐과 궁중문화의 진면목과 매력에 관해 다시, 또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내가 부자라서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지극히 평범하며 부자옹호론자는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부자들을 무턱대고 비판하는 것 또한 잘못된 것이다. 부자들이 비판을 받는 것은 그들의 잘못된 행동, 원칙과 정의에 어긋난 행동 때문이지, 돈이 많아서, 지위가 높아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부자들 또한 그들 나름대로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상류층 문화, 고급문화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 돈만 바르면 다 되는 것으로 착각하는 이들이 의외로 적지 않다. 그러나 똥에 돈을 바른다 해서 그 돈을 얼씨구나 하고 집어갈 사람은 없을 것이다. 종이든 돈이든 그 속에 구린내가 나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종묘를 보자. 우리는 왕실의 사당이기 때문에 대단히 화려할 것으로 생각한다. 바로 그 점이 종묘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인식이다. 생각을 해보자. 제사하는 공간이다. 지극히 엄숙하고 조용하며 신성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건물은 화려할 수가 없다. 공간 또한 지극히 단순하며 신성하게 만들어야 한다. 종묘는 그것을 남김없이 보여준다. 조선 사람들은 그것을 철저하게 지켜왔고 나라가 위기에 빠지는 순간에도 자신의 목숨보다 종묘와 같은 조상들의 신주를 돌보는 데 더욱 신경을 썼다. 그러한 정신이 서양의 파르테논과 견줄 수 있는 위치에까지 오르게 했으며,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자 세계기록유산에 오르게 된 원동력이다. 유학의 종주국인 중국에서 이미 끊어진 모습,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조상들의 치열한 삶과 그 정신 속에서 면면히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정전과 영녕전이 만들어내는 지극히 장엄하고 엄숙하며 위대한 모습에 세계인들도 격찬하고 반하는 것이다. 궁궐과 궁중문화의 진정한 가치, 진면목, 무한한 매력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 참 고 문 헌 ♧

김동욱,「종묘」,『한국사시민강좌』제23집, 일조각, 1998.
오주석,『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솔, 2003,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엮음,『서울』, 돌베개, 2004.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종묘, 사직, 왕릉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생각해보자는 차원에서 여러 참고문헌을 바탕으로 나름대로 쓴 글입니다. 이를 통해 지금의 우리 사회, 우리 정치 현실도 한번 돌이켜보는 의미도 있지 않을까 싶어 현실 이야기도 약간 가미하였음을 이해바랍니다. 이 글은 제가 운영하는 클럽에 썼던 글을 다시 고치고 다듬어 쓴 것입니다.



태그:#궁중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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