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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초, 아들 연우와 집사람을 데리고 경북 봉화군의 승부역으로 눈꽃열차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승부지역은 봉화군에서도 가장 눈이 많이 오는 산간 오지다.  

태백산과 낙동강의 계곡이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승부역은 눈은 많고 평탄한 도로는 없어서 기차를 타지 않으면 접근이 어려운 곳이다. 또한 땅은 좁아 '하늘도 세평, 꽃밭도 세평'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농토가 좁아, 회전민의 후예들이 약초 채취와 약간의 밭농사로 생계를 유지해가는 전형적인 시골마을이다.
               
승부역 방문 기념엽서
▲ 승부역 승부역 방문 기념엽서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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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가 아니면 접근하기 어려운 승부역은 '육지의 섬' 혹은 '한국의 시베리아'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산간오지에 위치하고 있는 험한 지역이라 겨울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는 한다.

승부역 맞은 편 비룡산까지 연결되어 있는 눈 쌓인 산속을 걸어 보는 15분 정도의 산책 코스는 소복이 쌓인 눈을 밟는 재미와 함께 겨울정취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계곡의 눈썰매장은 주민들이 예전 방식으로 만든 눈썰매를 경험할 수 있어 어른들에게는 향수를, 아이들에게는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다. 이외에도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이 적힌 '영암선 기념비'와 '출렁다리'도 볼거리이다.

거기에 추가를 하자면, 강원도와 경계를 이루는 지역이라 감자, 옥수수, 메밀묵 등 산골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다양한 먹을거리도 충분히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봉화군에서는 지난 연말 승부역을 찾는 관광객들을 위해, 설경과 먹을거리와는 별개의 이벤트로 깜직하고 예쁜 빨간 우체통을 설치했다.
        
소통의 우체통
▲ 승부역 소통의 우체통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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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플랫폼에 자리 잡은 '소통의 우체통'은 멀리서 찾아온 도시민, 고향을 다시 방문한 사람들, 산행이나 하이킹 중 잠시 들른 사람들 등 방문객들에게 추억을 선사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또한 이번 추석에는 이벤트를 하나 더 추가하여, 최근 승부역을 찾은 여행객들은 손에 쥔 자물쇠에 뭔가를 써 꽃잎 조형물에 정성스럽게 걸고 있다. 자물쇠에는 '사랑해'라고 예쁘게 적혀있다.

사랑고백을 하고 나서 열쇠를 걸어두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입 소문이 퍼지면서, 승부역에는 연인들의 발길이 서서히 늘어나고 있다. 연인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구에 대한 갖가지 사랑과 약속 등 저마다의 사연과 바람들이 꽃 모양의 철제울타리에 하나 둘 채워진다.

봉화군이 감성마케팅의 일환으로 설치한 빨간 우체통과 '사랑의 자물쇠'가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사랑의 자물쇠
▲ 승부역 사랑의 자물쇠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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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군이 작년 빨간 우체통과 기념엽서를 비치해 잔잔한 화제를 불러모은 데 이어, 최근 방치돼 있던 역 대기실을 연인들의 사랑고백 장소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이번에 기획된 '사랑의 자물쇠'는 설치미술가 김초희씨의 작품이다. "꽃을 통해 행복한 순간의 기억과 약속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김 작가는 "꽃잎이 떨어지는 순간과 자물쇠가 채워지는 그 짧은 순간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도록 하기 위해 '순간의 영원성을 기록한다'는 주제로 이번 작품을 진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거대한 플라스틱으로 화석화 된 꽃잎은 행복한 순간을 기억하고 담아두는 장치로, 감동의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고 기념하고자 하는 의미로, 자물쇠 설치와 그것을 거는 행위 자체에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고 삶 속에서 느끼는 행복한 순간이나 감동적인 기억들을 영원히 기억하고 담아두는 의미로, 제작됐다"라고 했다.
                      
사랑의 꽃잎 조형물
▲ 승부역 사랑의 꽃잎 조형물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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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꽃잎을 주제로 활발하게 작품 활동 중인 김초희 작가는 승강장 대기실을 거대한 화분과 꽃잎으로 추상화하고, 철재구조물과 목재를 활용해 꽃이 피고 떨어지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승강장 대기실에서 떨어져 나온 듯한 또 다른 꽃잎 조형물에는 연인들의 사랑고백과 함께 사랑의 영원함을 소원하는 자물쇠들이 걸려있다.

이번 설치미술은 작품이 설치되는 것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승부역 주변의 주민들과 승부역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저마다의 사연과 사랑의 약속들로 자물쇠를 채우며 꽃잎을 하나씩 피워나가면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내는, 일종의 진화하는 형태의 공공설치미술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승부역 프로젝트를 담당한 봉화군청 관계자는 "시골은 농촌 특유의 촌스러움을 간직할 때 비로소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승부역의 멋진 자연풍광과 이곳에 설치된 빨간 우체통과 엽서, 그리고 사랑의 자물쇠는 바쁘게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잠시나마 잊고 지내던 추억과 삶의 여유, 사랑고백의 공간을 마련해줄 수 있을 것이다"고 말하며 이번 가을에는 승부역에 꼭 한번 방문해줄 것을 당부했다.

한편 이번 작품을 주도한 김초희 작가는 1978년 서울 출생으로 현재 동덕여대 회화과에 강사로 출강하고 있다. ENK교육컨설팅 강평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꽃잎을 주제로 한 <COME INTO FLOWER> 연작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개인전 2회 <2008  'COME INTO FLOWER' 展>(쿤스트독 갤러리) <2006  'The Petal' 展> (갤러리 더 스페이스)와 그룹전 50여 회 출품 경력을 가지고 있다.


태그:#봉화군 , #승부역, #사랑의 자물쇠, #소통의 우체통, #사랑의 꽃잎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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榴林 김수종입니다. 사람 이야기를 주로 쓰고 있으며, 간혹 독후감(서평), 여행기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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