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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우화를 보면, 자전적인 이야기인 '무거운 짐, 가벼운 짐'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행단의 짐꾼이었던 이솝이 모두가 가벼운 짐을 들고 싶어할 때 무거운 짐을 스스로 들었다는 이야기다. 모두들 스스로 무거운 짐을 든 이솝을 놀렸으나, 실은 이 제일 무거운 짐은 음식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짐은 가벼워지고, 다른 짐꾼들은 그제서야 이솝의 현명함을 깨달았다는 이야기다.

 

남들 고생할 때 짐을 함께 나누어 든다는 훈훈한 공동체 이야기도 아니고, 얌스럽게 굴면 남들이야 어떻든 혼자 편하게 산다는, 애들에게 권해주고 싶지 않은 우화다. 또한 이솝이 자본주의 사회에 태어났다면, 짐이 줄어 일이 없어지는 순간 노동 효율성 운운하는 경영자와 조중동의 십자포화를 맞고 해고되었을테고, 이렇게 일량이 유동적인 직종이라면 예의 경영자와 조중동으로부터 '유연성이 최고'라는 슬로건아래 비정규직으로 강등당해 평생 노동빈곤층으로 살았다는 비극이 될 만한 이야기이기도 하니, 요즘 애들이 따라하면 큰일날 우화기도 하다.

 

아무튼, 여행내내 이 이야기가 머릿속을 맴돈 것은, 무엇 하나 버리지 못하고 바리바리 싼 끝에 등골이 휘게 만들었던 무거운 여행짐 때문이었다. 지금 가벼운 짐도, 나중에 가벼워질 짐도 아닌 '내내 무거울' 짐을 꾸린 멍청함에 대한 후회가 저 이솝의 얌스러움마저도 부럽게 만든 것이다.

 

이번 여행의 주된 목적중 하나인 사진을 위한 장비만도 카메라와 렌즈 두 개. 그마나도 눈물을 머금고 렌즈 하나, 스트로보, 트라이포드를 포기했음에도 카메라 장비로만 6kg 가까운 무게가 나갔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사진과 여행을 병행하는 것은 정말 어렵디 어려운 일이다.

 

넷북을 챙겼다. 주된 목적은 사진저장과 확인, 그리고 미뤄뒀던 '미드(미국 드라마)'를 좀 보고 여행 중간중간의 감상도 기록할 목적이었기 때문에 넷북을 선택했다. 넷북 무게는 1.1kg이지만, 아답터를 포함하면 1.5kg정도 되니 만만치 않은 무게다.

 

이런 중장비들에 사색을 위한 책 두 권, 각종 충전기, 여벌 옷 등을 집어 넣으니 10kg가 훌쩍 넘어가는 짐이 꾸려졌다. 짐을 다 싼 직후부터 이것들을 다 들고 돌아다닐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나, 욕심이 제시한 최종 리스트를 이성이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 했다.

 

담양 목포 보성을 거쳐 완도에 들어 섰을 때 일이 터졌다. 등산용 배낭도 아니고 배낭형 일반 가방에 저 무거운 짐을 다 넣었더니 가방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가방끈의 실밥이 뜯어져 거의 떨어질 지경에 처했다.

 

결국, 여행 중간에 가방수리를 위해 세탁소로 향하는 일이 벌어졌다. 세탁소에서 가방 수선을 위해 꺼내놓은 수많은 짐을 보시고, 세탁소 아저씨는 '짐을 저리 많이 넣으니 가방이 찢어지지'라며 혀를 차셨다. 그럼에도 두꺼운 등판 때문에 쉽지 않은 가방수선을 꼼꼼하게, 그것도 2000원이라는 싼 가격에 해주셨다.

 

수선은 했지만 여전히 불안한 마음에 책 한 권과 입었던 옷, 선글라스를 포함한 사치품들은 완도에서 택배로 집으로 보냈다. 결국 택배로 다시 보낼 짐을 3일간 업고 다녔던 셈이다.

 

하지만, 이동할 때마다 멍청한 짐싸기를 한 자신에게 욕을 퍼붓고, 중간에 저런 사고까지 겪으며, 업고 다닌 무거운 짐 덕분에 호사스런 여행이기도 했다.

 

전남 곳곳을 돌아다며 찍은 1000장이 넘는 사진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고, A.L.바라바시의 '링크'는 정말 오랜만에 독서의 즐거움을 흠뻑 느끼게 해주었다. 오래전부터 보고 싶었던 미드 '배틀스타 갤럭티카'는 솔직히 기대에는 못 미쳤지만, 그래도 남자들이 갖는 이런 SF에 대한 로망을 충족시켜 줬다. 정말 무거웠지만, 사진과 함께하는 여행, 책과 영상이 있는 휴식을 동시에 이루게 해준 것이 저 무거운 짐 덕분인 것도 사실이다.

 

걷고 싶으면 가벼운 짐을 챙기고, 편함과 다양한 목표가 있다면 차를 먼저 준비해야 할거다. 하지만 걷고 생각하고 사진찍고 쉬고 싶다면, 무거운 짐을 피할 수 없다. 물론 다시는 저런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닐 마음은 없다. 게으름이 평소의 지향인 나로서는 한번의 일탈이면 충분하다.

 

나는 절대로 다시 안할거다. 하지만 아직 어깨가 튼튼하다면, 한번쯤 해볼 만한 것이 무거운 짐 여행인 것 같다.


태그:#여행, #짐싸기, #여행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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