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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세 생일날, 축하하러 온 가족들에게 할머니가 말씀하신다. "이제는 더 이상 나이도 없다! 생일도 없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매일 생일처럼 행복하고 즐겁게 살겠다고 한다. 

 

그런데 가만 보니 할머니가 이상하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눈을 맞추기도 한다. 다른 사람 눈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혹시 치매인가 의심하면, 오히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호통을 친다.

 

그러다가 갑자기 만 원씩만 달라고 손을 내민다. 자식들은 어이 없어 하며 돈을 모아 손에 쥐어 드린다. 그러자 할머니는 자식들을 한 명씩 옆으로 불러 몹쓸 병을 내놓으면 돈을 주고 사겠노라 하신다.

 

예쁜 손녀의 손과 발을 붓게 하는 약한 신장, 고생하며 사느라 심해진 작은 아들의 무좀, 아이들 키우느라 고생하는 딸의 아프고 힘든 마음...이 모두를 할머니는 당신이 죽으면서 갖고 가겠다며 돈을 주고 산다.

 

그것은 바로 할머니의 죽음준비. 먼저 하늘나라에 간 남편을 향해 '하늘에서 백년해로하자'는 할머니는 지금 당장 떠나도 여한이 없다. 다만 자식들이 걱정일 뿐. 그래서 할머니는 자식들의 '아픈 것, 못된 것, 병든 것'을 가지고 가겠다는 것.

 

자식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저승사자와 다정하게 춤을 추는 할머니에게 죽음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니다. 당장이라도 따라 나설 수 있는 준비가 되었기에 더 이상 거리낄 그 무엇이 아니다.

 

<춤추는 할머니>라는 제목의 20분 짜리 짧은 연극이 끝난 다음 약 10분 동안 '각당복지재단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 홍양희 회장의 웰다잉 특강이 이어졌다.

 

홍 회장은 죽음은 우리들 삶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기에 죽음에 돌연변이는 없으며, 따라서 죽음은 우리의 일상이며 자연의 순리라고 강조했다. 또한 죽음을 응시하고 성찰할 때 비로소 죽음은 우리 생의 마지막 성장 단계가 된다는 것을 모두가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두 번째 연극은 <립스틱 아빠>. 노년에 이른 아빠는 어디에 쓰려고 하는지 여자 옷과 분홍색 립스틱을 고르고 또 고른다. 까다로운 아빠의 요구에 판매원들은 무척 힘이 들고, 자식들 또한 아빠가 왜 그러는지 몰라 어리둥절 하기만 하다.

 

알고 보니 아빠는 오래 전에 세상 떠난 아내를 매일 같이 창가에서 만난다며, 저 세상에 갈 때 아내에게 가져다 줄 예쁜 색깔 옷과 고운 빛깔 립스틱을 고르고 있는 것. 

 

살아 생전 예쁜 옷 한 벌, 고운 빛깔 립스틱 하나 사주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한 아빠는 아빠 눈에만 보이는 아내를 향해 말한다. "천국에서 못다한 사랑 듬뿍 나눕시다!" 그러면서 목이 메도록 소리친다. 그것은 아빠의 처음 고백이기도 하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의 웰다잉 지도 강사 양성 과정에서 공부를 마친 웰다잉 강사들인 배우들은 여름 내내 땀흘려 이 연극을 준비했고, 어제(8/21) 첫 공연을 한 것.

 

첫 연기의 미숙함은 그들의 열정이 대신하고 있었고, 단순한 이야기 구성은 웰다잉 교육과 알림이라는 연극의 목적을 감안할 때 어쩔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객석의 조명이 어둡지 않아 집중력이 떨어진 점과 배우들의 목소리 전달이 잘 안 되었던 점이 아쉬웠다. 그래도 객석의 반응은 무척 뜨거워 박수와 웃음으로 무대 위와 아래가 서로 소통하는 데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죽음을 이야기하고, 죽음준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잘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리는 데 연극이야말로 훌륭한 도구일 것이다. 거기다가 죽음준비 강사 활동을 하기 위해 공부한 사람들이 배우로 참여했으니 그 진지함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연극에 죽음과 죽음준비 이야기를 끼워 넣은 것이 아니라 아예 죽음과 죽음준비를 이야기하기 위해 연극을 만들었으니 그 파급 효과를 기대해 볼 만한다. 마침 이 연극은 서울시 소재 노인 관련 기관과 단체, 복지관 등의 요청이 있을 경우 찾아가서 공연을 한다고 하니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회를 거듭할수록 배우들의 연기는 조금 더 안정될 것이고, 다만 어르신들을 찾아가 공연하게 될 것이므로 소리 전달에 좀 더 신경을 쓰면 좋겠다. 

 

정말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변화는 물론 지극히 당연하고도 반가운 것이다. 내가 강사로 참여해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어르신 죽음준비학교'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현수막을 붙이니 재수없다고, 어디 어른 앞에서 죽음 얘기를 하느냐며 항의 전화가 걸려오던 때가 불과 3년 반 전이다.  

 

이제 누구나 예전보다는 죽음을 자연스럽게 입에 올리고, 죽음준비에 대해 서로 이야기 나눈다. 물론 올 한 해 우리가 다함께 겪은 몇몇 죽음이 그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으나, 보이지 않게 죽음과 죽음준비를 쉬지 않고 이야기해온 노력이 그 바탕이 되었다고 확신한다.

 

나같이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죽음준비교육 전문 강사와는 또 다르게 기관 차원에서 교육과 알림에 헌신하고 있는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 역시 그런 노력의 맨 앞에 서있기에 이번 웰다잉 연극단 창단과 공연이 반갑기만 하다. 

 

앞으로 연극 내용과 그 표현이 더 무르익고 깊어지고, 여기저기서 여러 차례 공연되기를 소망한다. 질을 이야기하려면 우선 양이 담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첫 시도는 조금 부족할지라도 늘 신선하고 풋풋하면서 또 뜨겁다.       

덧붙이는 글 | 웰다잉 연극 <춤추는 할머니> <립스틱 아빠> (장두이 작, 연출) 창단 공연은 8월 21일 오후 3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있었습니다. 앞으로 서울 소재 노인 관련 기관과 단체, 복지관 순회 공연을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초청 공연 요청은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02-736-1928)로 하시면 됩니다.    

  


태그:#웰다잉 연극, #춤추는 할머니, #립스틱 아빠, #죽음준비교육, #죽음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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