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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기대했다가 크게 실망하며 허탈해 하고, 다시 한번 희망을 품어보는 하루였다. 19일 오후,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발사체인 '나로호'가 하늘로 솟구치는 모습을 먼발치에서라도 보기 위해 고흥 남열해변에 모인 지역주민과 관광객들이 그랬다.

 

고흥군 영남면 남열해변은 나로우주센터에서 16㎞가량 떨어진 곳. 눈앞에 장애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이 바다가 펼쳐지는 남열해변은 날씨만 좋을 경우 나로우주센터가 한눈에 바라다 보이는 최적의 포인트. 이른바 나로호의 발사장면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명당자리였다.

 

발사 당일, 지역주민과 관광객들이 많이 모여든 것은 당연지사. 남열해변으로 가는 2차선 도로 가운데 한쪽은 주차장으로 변했다. 발사 예정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선 해변에서 5㎞가량 떨어진 곳에서 차량의 진입을 통제하고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셔틀버스를 기다리다 지쳐 먼 거리를 서슴없이 걸어가는 사람들도 꽤나 많았다. 그 걸음에도 활기가 넘쳐 보였다. 그건 우주발사체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었다. 그 대열에는 젊은이들은 물론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많았다.

 

남열해변은 말 그대로 북적거렸다. 하루 이틀 전부터 텐트를 쳐놓고 휴가를 즐기며 발사 예정시간을 기다리는 피서객들도 부지기수였다. 인파는 해변에도, 소나무 숲에도 빽빽했다. 어림잡아 2만여 명에 육박할 정도였다. 가슴에 검은 리본을 달고 있는 사람들이 많긴 했지만, 적어도 국상(國喪)의 분위기는 겉으로 크게 느낄 수 없었다.

 

발사 예정시간이 가까워오면서 소나무 숲에서 느긋하게 앉아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해변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해변에 설치된 무대에서 공연을 관람하던 사람들도 의자를 털고 일어섰다. 나로호의 발사 광경을 한 뼘이라도 더 가까이서 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해변에 모인 사람들은 함성을 질러댔다. 저만치 보이는 나로우주센터에까지 보내는 응원의 목소리였다. 금방 떠오를 나로호의 모습을 떠올리며 팔짝팔짝 뛰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어린이들도 보였다. 바다에선 모터보트가 힘찬 물살을 가르며 분위기를 북돋았다.

 

방송과 신문사 카메라맨들은 그 모습을 담는데 여념이 없었다. 관광객들의 손에 든 카메라도 부산하긴 마찬가지였다. 감격의 순간을 좀 더 생생하게 보려고 망원경을 꺼내 든 이들도 보였다. 심지어 휴대폰 카메라에 담으려고 촬영모드를 매만지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햇살이 강렬했지만 모두들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발사 15분 전, 대형 스크린을 통해 자동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는 소식이 전달되자 관람객들의 흥분은 절정을 이뤘다. 불과 몇 분 뒤면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하늘로 치솟을 나로호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드디어 10분 뒤면 발사가 된다. 이제 9분 남았다. 8분….

 

그 순간, 잠시 발사중지 사인이 들어왔다는 소식이 전달되자 일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모두들 숨을 죽인 채 현장상황이 중계되던 대형 스크린에 눈과 귀가 쏠렸다. 그러나 그 누구도 발사가 연기될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잠시, 아주 잠시 지연될 것으로만 여기는 것처럼 보였다.

 

추진체의 연료배출이 시작됐다는 말이 전해지자 모두들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 말이 곧 넣었던 연료를 다시 빼내기 시작했다는, 그래서 발사가 연기될 것으로 이해하는 순간 모두들 힘이 쭈-욱 빠지는 듯 했다. 이보다 더 허탈할 수 없다는 표정들이었다.

 

한동안 그 자리에 굳어버린 듯이 가만히 서있던 사람들이 한숨과 탄식을 쏟아냈다. 그리고 삼삼오오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에이! 이게 뭔 일이야? 쏘아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허무하고, 허망할 때가 있나?" "어제 리허설도 완벽하게 했다면서 이게 뭐야?" "발사를 여러 번 연기할 때부터 알아봤다." "다른 나라에서 우리나라를 어떻게 볼까 걱정이다." "다음에 쏜다고 할 때는 절대 안 오겠다"

 

어린 아이들은 영문을 몰라 부모한테 묻는 모습도 보였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던지 눈물을 글썽이는 아이도 눈에 띄었다. 그렇게 발걸음을 돌리는 사람들의 표정은 허탈, 그 자체였다.

 

"그렇지 않아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나라가 초상집인데, 차라리 발사가 연기된 게 다행일지도 모른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서둘러 발사했다가 잘못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낫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이런 시국에 가수들까지 불러 쇼를 벌이며 법석을 떤 것이 문제"라며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한 것"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이도 있었다.

 

충격이 컸는지 한동안 멍-하니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하며 장탄식을 뱉어내면서도 "발사 전에 문제점을 발견한 것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드러난 문제점을 철저히 확인해서 다음번엔 꼭 성공했으면 좋겠다"는 기대심을 비치는 관광객도 있었다.

 

"어느 나라는 발사 후 2초 만에 폭발한 곳도 있다고 들었다. 우리나라는 이제 시작인데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너무 아쉽다. 앞으로 더욱 철저하게 준비해서 다음에는 우주로 날아가는 나로호를 꼭 봤으면 좋겠다" "발사를 연기시킨 문제가 뭔지는 모르겠으나 큰 문제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첫 경험인데 그럴 수 있다. 용기와 희망을 갖고 더 분발했으면 좋겠다"며 다시 희망을 품어보는 이들도 여럿 있었다.

 

지역주민들은 나로호의 발사 연기가 자신들의 잘못이라도 되는 양 더 죄스러워했다. "발사장면을 못 보고 돌아가는 분들한테 정말 미안하다." "오늘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왔는데, 다음 발사일에도 이렇게 많은 분들이 찾아올지 모르겠다."며 우려 섞인 말을 하기도 했다.

 

허탈한 마음을 안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길.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발사체인 나로호의 발사 중단에 대한 아쉬움이 크기만 하다. 그러나 실망하거나 낙심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우주관련 기술이 약한 나라가 한번은 겪어야 할 과정이라 생각하면 한 번 더 기다릴 수 있지 않을까. 발사 중단의 원인은 확실하게 분석, 미비점을 보완해서 우리 땅에서 우리의 우주발사체가 우주로 쏘아 올려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태그:#나로호 발사, #남열해변, #고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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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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