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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닭실마을에서 영양 주실마을로 갈 때 국도를 버리고 봉성-명호-재산을 거쳐 가는 918번 지방도로를 이용하였다. 예전과 달리 국도는 큰길로 변하여 이렇다 할 감흥을 느낄 수 없다. 구불구불한 산길도로변 밭엔 봉화도 영양 곁인지라 고추는 물론이고 잎담배며 밭수박이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밭만 대충 보고 무슨 밭인지 금방 알아채는 걸 보고 옆에 있는 아내는 신기해 한다. 20년을 같이 살았는데 아직도 신기해 하는 걸 보면 농촌에 살아 보지 않고서는 백날 알려 줘도 모르는 건 매한가지인 것 같다.

우체국 앞만 봐도 이 지역의 특산물을 알 수 있다. '봉화고추박스'는 상품으로 보내지는 것 같고 다른 '사과박스'나 '라면박스'는 아들·딸에게 보내지는 것 같다
▲ 재산면 우체국 우체국 앞만 봐도 이 지역의 특산물을 알 수 있다. '봉화고추박스'는 상품으로 보내지는 것 같고 다른 '사과박스'나 '라면박스'는 아들·딸에게 보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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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호에 이르면 낙동강을 만나게 된다. 처음으로 만나는 낙동강 본류다. 강변을 따라가는 길은 항상 기분을 좋게 한다. 영양으로 가려면 잠깐 만난 낙동강을 아쉽게도 버려야 한다. 지금부터 청량산 동쪽길을 가게 된다. 구불구불 굽은 일월산 산등성을 넘으면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주곡리 앞을 흐르는 장군천 너머 산자락에 포근히 들어앉은 마을이 보인다. 주실마을이다. 주실은 한양조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다.

주실의 자존심과 닭실의 자부심

주실은 한양조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다. 380년전 호은(壺隱) 조전(趙佺)이 기묘사화를 피해 이 곳 주실에 자리잡았다. 주실마을엔 조지훈 생가가 있고 이 생가는 조전의 호를 따서 호은종택이라 불린다. 안타깝게도 호은종택은 한국전쟁 때 불에 타 1963년에 복구되었다. 마당은 부석거리고 집안 한 바퀴 돌아오는데 왠지 윤기가 흐르지 않는다. 사람이 거주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한양조씨와 주실에 대한 자존심은 대단하여 알리고 싶어하고 꾸미고 싶어한다. 닭실마을은 구태여 스스로를 높이려 하지 않는다. 누가 와서 보더라도 자신의 가치를 인정할 거라는 자신감이 있다. 주실은 자존심이고 닭실은 자부심이다. 닭실이 질리지 않는 맨 얼굴이라면 주실은 옅은 화장을 한 세련된 얼굴이다.

마을 제일 높은 곳에 커다란 콘크리트 교회가 마을과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서있다
▲ 주실마을 전경 마을 제일 높은 곳에 커다란 콘크리트 교회가 마을과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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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나온 말이니 봉화와 영양을 비교해 보자. 봉화와 영양은 문화적으로 우열을 가리기 쉽지 않다. 봉화에는 청암정과 북지리마애불이 있다면 영양에는 서석지와 봉감모전오층석탑이 있다. 봉화에는 안동사람들도 부러워한다는 청량산이 있다면 영양에는 일월산이 있다. 모두 안동에 인접해 있으면서도 봉화는 안동과 다른 독창적인 문화가 존재하여 나름의 자신감을 갖고 있다면 영양은 안동문화권에 속해 있고 안동과 비교를 하여 스스로 높이는 마음이 강하다.

조씨 일가인 문화해설사 한 분이 종택에서 많은 얘기를 들려주었다. 60가구 밖에 안 되는 이 마을에서 박사가 15분이 배출되었고 이 집안은 3불차라 하여 사람, 재물, 글을 빌리지 않았다고 한다. 일제시대 때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고 새로운 사상, 문물, 제도를 빨리 받아들여 영남에서 제일 빨리 상투를 잘랐다며 자랑스러워 한다. 여기서 그치면 좋았을 걸, 일본 유학을 많이 보내 모두 한자리에 모일 수 있게 음력설을 쇠지 않았다는 대목에선 냉소적 웃음이 나왔다.

아무튼 이런 연유로 교회가 빨리 들어왔다고 한다. 그러나 정도가 지나쳤나 보다. 마을에서 제일 높은 곳에 커다란 콘크리트 교회가 마을과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서 있다. 멀리서 보면 공사를 하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 용을 그린 다음에 눈동자를 너무 크게 그린 꼴이다. 작은 눈동자를 그렸어야 했다.

마을 숲은 숲만 봐서는 안 된다. 숲과 마을사람들의 정성과 정신을 함께 봐야한다
▲ 주곡숲 마을 숲은 숲만 봐서는 안 된다. 숲과 마을사람들의 정성과 정신을 함께 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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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리병같은 마을 길을 따라 주곡숲으로 향했다. '지훈 시공원', '지훈 문학관'을 지나게 된다. 조지훈 시인에 대한 대접은 대단하여 잘 꾸며 놓았다. 시인에 대한 대접이 이 정도는 돼야 한다는 생각 끝에서 부여의 신동엽 시인이 머리 속에 맴돈다. 가난하게 태어나서인지, 지역적인 문제인지 너무 다른 대접을 받는 신동엽 시인이 자꾸 생각나는 건 왠지 모르겠다.

주곡숲에 다다랐다. 마을숲은 나쁜 기운은 못 들어오게 하고 좋은 기운은 나가지 못하게 하여 마을을 지키는 마을 지킴이다. 주곡숲은 2008년 아름다운 숲 대상을 수상하였다. 숲만 봐서는 대상감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마을사람들과 숲과의 '공존'이 상을 타는데 한몫 했다 한다. 아름다움은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일부 눈에 거슬리는 주실마을 정경은 버리고 보이지 않는 주실사람들의 생각을 담아 연당마을로 떠났다.

담양엔 소쇄원, 영양엔 서석지

주곡숲이 짧다고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다. 여기부터 서석지가 있는 연당마을까지는 반변천이 함께 한다. 한참 가면 반변천 옆에 불쑥 솟아 있는 선바위가 연당마을에 다다랐음을 알리고 반변천의 지류인 동천이 연당마을로 이끈다.

영양과 함께하는 반변천은 때론 기이한 풍광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바위 뒤쪽으로 동천이 흐르고 동천을 따라 얼마가지 않아 연당마을에 닿는다
▲ 선바위공원에서 본 선바위와 정자 영양과 함께하는 반변천은 때론 기이한 풍광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바위 뒤쪽으로 동천이 흐르고 동천을 따라 얼마가지 않아 연당마을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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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아래로 흐르는 동천과 마을 뒷산인 자양산을 보고 토담길 따라 마을 한 바퀴 돌고 나서야 서석지 안으로 들어갔다. 서석지는 풍광이 화려한 곳에 지은 정자와는 다르다. 소쇄원처럼 계곡과 숲을 집터로 끌어들여 만든 원림과는 거리가 있고 공간이 집안으로 한정되어 있는 정원에 가깝기 때문에 자양산과 동천 그리고 고풍스러운 마을과  함께 할 때 그 빛이 난다.

토담으로 이어진 마을 길은 주실마을 길보다 낫다
▲ 연당마을 토담길 토담으로 이어진 마을 길은 주실마을 길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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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지는 370여 년 전 정영방이 조성한 민가 정원이다. 주실마을에 처음 들어온 조전과 같은 시대에 들어온 셈이다. 화를 면하기 위해서건, 벼슬길을 마다하고 어지러운 세상을 등지기 위해서건, 유배길 같은 이 곳 영양에 자리잡았다. 지금 우리가 이럴 때가 된 것 같다. 주실이 배출한 박사와 연당이 자랑하는 '일류대 출신 교수나 연구원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어디서 살고 있나? 그분들 중 일을 그만두고 대도시에 살고 있다면 주실·연당으로 돌아가 양심적 시민, 건전한 시민으로 남아 지역발전과 건전한  지방문화를 만드는 데 힘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석지는 그냥 보여 주지 않는다. 동향으로 나 있는 입구는 담으로 방향을 틀어 문을 남향으로 만들었다. 담을 절묘하게 쌓아 바깥에서 바로 서석지가 보이지 않게 하고 서석지에서도 바깥이 바로 보이지 않게 하였다. 담이 서석지와 바깥영역을 나누고 있다. 이 담도 토담으로 쌓아 마을담장과 어울리게 했다.

담으로 만든 것 중 가장 극적인 창작물이다
▲ 병산서원 화장실 담으로 만든 것 중 가장 극적인 창작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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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 바깥이 차단되는 게 제일 중요한 시설물이 화장실이라 생각되는데 담을 절묘하게 쌓아 이런 효과를 낸 화장실이 병산서원에 있다. 담을 달팽이처럼 쌓아 극적 효과를 냈다. 이런 생각을 응용하여 시골에서 간단하게 샤워부스를 만든 것도 보았다. 우물 옆에 6개 정도의 굵은 막대기를 나선형으로 세우고 막대기에 천만 두르면 끝이다.

사우단 때문에 주일재가 바로 보이지 않는다. 사우단을 쌓아 네모 반듯한 연못에 변화를 주어 밋밋함을 피했다
▲ 주일재와 사우단 사우단 때문에 주일재가 바로 보이지 않는다. 사우단을 쌓아 네모 반듯한 연못에 변화를 주어 밋밋함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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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들어서면 앞에 정자인 경정(敬亭)과 오른쪽에 서재인 주일재(柱一齋), 마당에 해당하는 부분에 연못이 있다. 주일재 앞엔 일종의 화단인 사우단(四友壇)을 만들어 놓았다. 서석지도 우리 정원의 정서를 그대로 담고 있다.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을 조화롭게 하였다. 연못 안에는 연꽃을 심었고 여러 가지 서석(瑞石)을 그대로 두어 자연미를 살렸다. 생김새에 따라 이름까지 붙여 줬다. 바위틈에서 나는 샘물과 연못 옆이나 밑에서 흘러 들어오는 물로 연못은 마를 때가 없다.

소박하게 지어지고 사우단으로 앞이 가려진 주일재와 달리 경정은 좀 화려하게 지어졌고 앞이 가려진 게 없어 툇마루에 오르면 마을이 훤히 보인다
▲ 경정 소박하게 지어지고 사우단으로 앞이 가려진 주일재와 달리 경정은 좀 화려하게 지어졌고 앞이 가려진 게 없어 툇마루에 오르면 마을이 훤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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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적절하게 인공을 가하여 자연미가 더 살도록  만들었다. 연못은 처음부터 이렇게 깊지 않았을 것이고 얼마 정도는 파서 만들었을 것이다. 연못 주변은 잡석으로 말끔히 쌓았고 주일재 앞에만 사우단을 만들어 변화를 주었다. 사우단에는 소나무, 대, 매화, 국화를 심어 서재의 분위기를 아늑하게 하였다. 서재인 주일재는 아담하고 소박하고 단아하게 짓고 대신 경정은 조금 화려하게 만들었다. 툇마루를 두어 마을을 훤히 볼 수 있게 하였다. 사우단을 만들어 앞이 잘 보이지 않게 만든 주일재와는 사뭇 다른 맛이 난다. 찬찬히 살펴보고 음미하면 왜 서석지가 민간 정원의 백미라 불리는지 알만하다.

북지리마애불은 봉화의 국보, 봉감모전오층석탑은 영양의 국보

봉감마을을 가기 위해선 연당마을을 빠져 나와 다시 선바위쪽으로 되돌아 나와야 한다. 반변천을 따라 청송 방향으로 얼마 가지 않아 고구령재에서 우측으로 접어 들어간다. 그리 급하게 흐르지 않던 반변천도 이 곳에선 반달모양으로 크게 휘어져 흐르는데 봉감마을은 반달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봉감마을을 지나 강변으로 가다 보면 반변천 강가에 탑 하나가 우뚝 서 있다. 봉감모전오층석탑이다. 봉감은 봉감마을에서 왔고 모전석탑(模塼石塔)은 돌을 벽돌처럼 본떠서 만들어져서 붙여진 이름이다. 벽돌 형태로 다듬었을 뿐 석탑은 석탑이다.

퇴적물이 쌓여 가듯 모전은 쌓여 가고 주변 풍광과 어울려 명품석탑이 탄생한다
▲ 봉감모전오층석탑 퇴적물이 쌓여 가듯 모전은 쌓여 가고 주변 풍광과 어울려 명품석탑이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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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석탑은 퇴적암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퇴적물이 쌓여 암석으로 굳어지듯 퇴적암이 모전이 되고 모전이 퇴적되어 석탑이 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인고의 세월을 견뎌야 한다. 모든 농삿물은 농부의 정성과 고생한 것을 감안하면 비싼 게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모든 석탑은 만들어진 과정을 생각하면 위대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반변천의 제방이라도 되듯 강가에 바짝 붙어 솟아 있는 절벽산을 배경 삼아 늠름하게 서 있다. 바짝 다가 있는 산봉우리 위세에 눌리지 않고 오히려 벗삼아 서 있다. 탑은 절 안에 있을 때보다 너른 벌판, 강가 혹은 산골 오지에 오롯이 서 있을 때 더 큰 감동을 준다.

봉감마을 반변천가에 이 탑이 없었다고 상상하면 이 지역이 얼마나 외로운 곳으로 남았을까? 예전에 왔을 때는 보수 중이어서 완전한 모습을 보지 못하였다. 그 때도 이 지역 풍광이 좋아 그리 허망할 일도 아니었을 텐데 마음 한구석이 빈 휑한 느낌은 감출 수 없었다. 보수 중이었는데도 그랬으니 없었다면 더 했을 것이다.

감나무가 심어져 있는 곳은 집터나 밭이었을 가능성이 많다. 동떨어져 있는 감나무 한 그루는 가끔 마음을 슬프게 한다
▲ 감나무와 봉감탑 감나무가 심어져 있는 곳은 집터나 밭이었을 가능성이 많다. 동떨어져 있는 감나무 한 그루는 가끔 마음을 슬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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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감탑 주변은 예전엔 밭이었는데 지금은 잔디가 심어져 있다. 분위기는 이상하지만 상수원보호를 위해 국가가 매입해 놓은 것이라 한다. 봉감탑 옆에 서 있는 감나무만이 이 터가 밭이나 집터임을 말해주고 있다. 봉감탑이 유명해지면서 답사객 수는 늘어나는데 봉감탑과 마을은 멀어지는 것 같다.         


태그:#주실마을, #서석지, #봉감모전오층석탑, #연당마을, #영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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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不自美 因人而彰(미불자미 인인이창),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무정한 산수, 사람을 만나 정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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