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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나의 큰 시누이와 두 조카는 캐나다로 이사를 갔다. 당시 첫째는 중학교 1학년, 둘째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큰 시누이와 두 아이가 캐나다로 이사를 간 이유는 그곳에 친척이 있다는 것과 교육환경이 좋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번에 여름방학을 맞아 두 조카가 여름방학을 맞아 한국에 들어왔다. 그동안 일주일에 한번 꼴로 화상전화를 통해 서로의 얼굴을 보며 안부를 전했던 터라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두 아이에게 1년간의 생활을 물어보았다. 1년간의 외국생활 어땠을까?

6개월 만에 말문이 열릴까?

학교 친구들과 함께한 조카아이
 학교 친구들과 함께한 조카아이
ⓒ 신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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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언어문제. 한국에 있을때부터 계속 영어공부를 했던 터라 적응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알아들을 정도는 돼요. 학교에서 친구들 대화는 어렵지않게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애들도 사용하는 언어가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어서… 하지만 영화나 다큐멘터리 같은 것은 아직 반절밖에 못 알아들어요."

사실, 캐나다로 이사를 간 이유중의 하나도 '영어' 때문이었다. 외국만 가면 금방 영어가 늘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고. 남들이 말하는 '6개월만에 입이 트인다'는 경지는 아직 느끼지 못했다. 아무리 초등학생이라지만 많은 공부와 노력이 필요했다. 물론 '1년'이라는 시기는 영어실력 향상을 이야기하기엔 짧긴하다.

"알아듣기는 하지만 아직 입에서 줄줄 나오지는 않아요. 생각은 머릿속에서 빙빙 맴도는데 안 나와서 답답할 때가 많아요. 처음에는 더듬더듬했지만 지금은 조금 나아졌어요. 그나마 어렸을 때 인도네시아에서 살면서 배웠던 영어로 써먹었던 것 같아요."

5년간 한국에서 배운 영어과외나 1년간 캐나다에 살면서 배운 영어보다 유아시절 5년간 인도네시아에서 살면 배운 영어가 더 기억에 남았다는 것이다.

학교 생활은 어떨까? 두 조카가 다녔던 학교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학생들이 많이 있었다. 우크라이나, 러시아, 몽골. 그러나 한국인은 두 조카가 전부였다고 한다. 서울에서 사립초등학교를 다녔던 두 조카. 캐나다의 학교와 비교해본 결과, 좋았던 점과 싫었던 점을 하나씩 들라고 했다.

"가장 좋았던 점은 시험이 없다는 거예요. 성적은 평소 수업태도나 과제로만 평가해요."

이번엔 둘째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과제가 궁금해진다. 외국학교는 과제가 어렵고 많다고 들었는데 그 강도는 어느 정도일까? 외국에서 온 두 아이가 해내는 데 어려움은 없었을까?

"현지 학생들과 저희 같은 외국인의 숙제가 달라요. 현지학생들이 하는 과제는 되게 힘들고 까다로운데 저희는 아직 영어가 안 되서 그런지 쉬운 숙제만 내주더라구요. 그래서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외국친구들, 깔끔하고 쿨하긴 한데...

막상 도착하면 말문이 곧 트일 줄 알았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았단다
 막상 도착하면 말문이 곧 트일 줄 알았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았단다
ⓒ 신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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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은 주로 도시락을 싸간다. 그러나 집이 가깝기 때문에 집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학교로 간다. 오후 2시면 학교 일과가 모두 끝난다. 그 뒤로는 자유시간이다. 과외나 학원 같은 것은 없다고 한다. 큰 도시도 아니고 교외에 있는 학교다 보니 숙제 이외 별도로 다른 공부를 하지 않는단다.

학교 급우들과의 관계는 좋은 편이라고 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 불이익을 받거나 어려웠던 점은 없었는지 물었더니 '없었다'고 말한다. 오히려 현지 아이들이 먼저 말을 걸고 친절하게 도와주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그쪽 애들은 대부분 친절해요. 대놓고 따돌리거나 못살게 구는 것은 없어요. 대신 앞에서는 생긋생긋 웃으면서 'Hi~' 인사하면서 뒤에서 험담하는 경우가 가끔 있어요. 그럴 땐 '얘네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네'하는 생각이 들죠."

둘째의 대답에 첫째가 덧붙인다. 첫째는 남자아이다.

"어느날은 친구들이 저에게 담배 피울 거냐고 물어보더라구요. 우리나라 같으면 '담배 피우는 학생'이라고 하면 문제아들을 떠올리는데 캐나다는 안 그렇거든요. 어쨌든 저는 싫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그 다음부터는 안 권하더라구요."

아이들 말을 듣고 있던 큰시누이가 거들었다.

"외국 아이들은 사람 사귀는 데 깔끔한 데가 있어. 왕따를 시키거나 린치를 하는 등의 행위는 별로 없거든. 이성간에도 그냥 밥먹고 영화보고 헤어지면 그만이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어. 깔끔해서 좋긴 한데 뭔가가 허전해. 애들은 아직 못느끼겠지만 난 왠지 모를 아쉬움 같은 게 있더라구."

기러기 엄마, '우울증'걸릴 뻔하다

그곳에서는 한번 눈이오면 무릎까지 쌓이는 바람에 날마다 눈을 치우는게 중요한 일과였다
 그곳에서는 한번 눈이오면 무릎까지 쌓이는 바람에 날마다 눈을 치우는게 중요한 일과였다
ⓒ 신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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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시누네는 소위 말하는 '기러기 가족'이다. 영화 <우아한 세계>에서 라면을 냄비째 놓고 먹으며 가족의 모습이 담긴 비디오를 보며 웃던 송강호의 마지막 엔딩신이 가슴을 찡했던 만들었던 그 기러기 가족. 물론 큰시누이 가족은 그 정도의 처절한(?) 기러기 가족은 아니다. 이번엔 큰시누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언어도 안 되고, 아는 사람도 없고 정말 우울증에 걸릴 뻔했어. 삼시 세끼 아이들 밥 챙겨줘야지, 아이들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고. 작년 1년 동안 아이들과 떨어져 있었던 적이 단 하루도 없었던 것 같아. 젖먹이 때 이후 처음이야. 어떻게 보면 좋은 일이기도 하고, 엄마로서는 답답한 일이기도 했지."

개인생활도 없는 데다 언어도 안 통해 설상가상으로 힘들었다. 서울에서 영어공부를 제법 한다는 애들도 더듬거릴 정도니 큰시누이야 오죽 했을까. 처음엔 손짓발짓을 써가며 의사소통을 했지만 이제 '말귀'는 통한다. 학교를 다니면서 큰시누이도 함께 공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어른들은 한계가 있다는 게 큰 시누이의 설명이다. 나이 사십줄에 유창한 영어의 벽을 체험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1년밖에 안되었으니 섣불리 결론을 내기엔 좀 이르다.

먹고사는 데 생활에 큰 불편함은 없었지만 기러기 가족의 '마음의 벽'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났다. 바로 아이들 학교행사 때였다고 한다.

"외국은 학교에서 행사가 있으면 엄마아빠가 모두 참석해. 우리나라처럼 엄마만 오고 아빠는 안 오는 경우가 거의 없어. 거의 모든 행사에 부모가 함께 참석하지. 그 모습이 참 보기 좋고 부럽더라. 우리도 한국에 있었으면 함께 했을 텐데 아이들 행사에 아빠가 참석하지 못할 때마다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어. 하지만 별 수 있니."

기러기 가족이라고 하지만 아주버님(시누의 남편)이 사업차 미국에 자주 가기 때문에 미국에 들를 때는 꼭 캐나다에 함께 들러서 시간을 보낸다. 따라서 다른 기러기 가족에 비하면 가족간의 만남은 잦은 편이다. 그래도 아빠와 처음으로 오래 헤어진 두 아이의 마음은 허전했나 보다. 캐나다에 살 동안 가장 기뻤던 순간을 아빠와 처음으로 만났을 때라고 말했다.

"캐나다에서 아빠랑 헤어지고 난 뒤 3개월 뒤 아빠가 다시 캐나다에 왔을 때 정말 반가웠어요. 엄마도 그랬대요. 그리고 이번에 한국에 온다고 하니까 가장 좋았던 점은 가족들을 만난다는 거예요. 사실 먹고싶은 것도 무지 많았거든요. 특히 매운 낚지볶음하고 딸기우유가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몰라요. 한국에 가면 그것부터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한국에 딱 도착하니까 먹고싶은 마음이 싹 사라져 버린 거예요. 신기하죠? 인천공항에 도착한 것만으로 그냥 다 먹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그리고 가족들이 정말 정말 보고싶었어요."

큰시누이는 내일모레면 다시 외국으로 나간다. 그러나 이번엔 캐나다가 아닌 미국 뉴욕으로 간다. 큰시누 남편의 사업체가 있는 미국으로 가서 이번엔 함께 살 예정이다. 두 조카는 새학년이 시작되는 9월에는 미국 뉴욕에서 학교생활을 시작한다.

캐나다에 처음 갈 때 그랬듯이 이번에도 걱정과 설렘이 반반씩 교차한다. 어렸을 때부터 외국생활을 많이 한 까닭에 낯선환경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지만 그래도 걱정되는 건 마찬가지다.

미국 대학 가려면 한국 입시학원에 다녀라?

작년 크리스마스, 집 근처에서
 작년 크리스마스, 집 근처에서
ⓒ 신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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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들은 내년 여름방학에 다시 한국에 들어온다. 이유를 물으니 강남의 한 외국어 학원에 다니기 위해서란다. 영어공부 때문에 외국에 갔는데 웬 학원? 큰 시누이 말이 미국대학에 가려면 SAT(미국의 대학입학 자격시험)를 공부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학원만큼 그것을 잘 가르치는 곳이 없단다.

하긴 3년 전, 엘살바도르에 사는 큰조카들이 한국에 왔을 때도 그랬다. 영어를 꽤 유창하게 잘 하는데 일부러 강남의 외국어학원을 다녔다. 미국의 대학에 들어가려면 SAT를 공부해놓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외국 학교에서 배운 공부로는 미국 대학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말일까?

"우리나라 영어학원만큼 잘 가르치고 저렴한 데가 없어. 그리고 한국학생들에게 맞게 잘 가르치거든."

큰시누이의 말이다. 영어 때문에 외국 유학까지 갔지만 미국 대학을 가기 위해 다시 한국에서 영어공부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역설적이다.

영어도 영어지만 1년간의 캐나다 생활을 통해 가장 좋은 점은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다는 것. 무엇보다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이나 울렁증이 사라졌다.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 다른 문화들을 접하면서 그만큼 시각도 넓어지고 유연해졌다.

기러기 가족의 1년 외국생활. 그것은 영화 <우아한 세계>의 제목처럼 우아하지만은 않았다. 영어도 생각만큼 술술 나오지도 않았고, 외국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힌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외롭기도 했고 먹고 싶은 것도 많았다.

사실,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없다. 누구도 모른다. 사람마다 가치관과 교육관이 다르듯이 큰시누이 가족이 추구하는 그 무엇가가 있을 것이다. 그 정답을 찾기 위해 큰시누이 가족은 다시 비행기를 타고 떠났다. 1년 후의 인터뷰를 다시 기약하면서. 


태그:#기러기가족, #우아한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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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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