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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에서 처음으로 외화위폐감별사 인증서를 취득한 신도섭 우리은행 차장.
국내에서 처음으로 외화위폐감별사 인증서를 취득한 신도섭 우리은행 차장. ⓒ 남소연

'위이윙~'

요란한 기계음과 함께 100달러짜리 지폐 뭉치가 순식간에 사라지는가 싶더니, 10여 장을 도로 뱉어낸다. 불합격 처리된 지폐들이다. 위폐감별기 앞에 선 신도섭 차장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한 손으로 지폐를 움켜쥔 뒤, 다른 손으로 빠르게 넘겼다. 채 10초가 걸리지 않았다. 그제야 신 차장의 표정이 밝아졌다. '슈퍼노트', 즉 100달러짜리 초정밀위폐가 한 장도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신도섭 차장은 우리은행 수신서비스센터에서 외국통화 출납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의 손을 거쳐가는 외화는 하루에만 300만 장, 금액으로 따지만 200만~300만 달러에 달한다. 신 차장은 그 중에서 이틀에 1장 꼴로 위폐를 잡아내고 있다. 신 차장은 "기계에 집어넣은 화폐 중 10~20% 정도가 리젝트(불합격)된다. 기계로는 감별이 완벽하게 안 된다"며 "그 때 (사람이) 손으로 감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색깔을 보고, 손끝으로 느끼고..."

그럼, 사람은 100% 완벽하다고 할 수 있을까? 신 차장은 "전 완벽하다고 보는데……, 잘 모르겠다"며 웃어보였다. 그러면서도 "은행은 신뢰가 중요하기 때문에 제가 완벽하게 할 자신이 없으면 이 일은 할 수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가 진짜 돈과 가짜 돈을 구별해내는 비결은 바로 돈에 대한 '집중력'이다. 그는 "처음에 색깔을 보고, 손끝으로 느끼고……, 오감이 다 동원된다"며 "화폐를 많이 접해봐야 한다. 그래야 진폐의 특징을 갖지 않은 위폐를 찾아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 차장은 위폐감별을 위한 손끝 감각을 단련시키려고 수백만 원 어치의 달러를 사서 한 두 뭉치씩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다고 한다.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면서도 그의 손은 늘 호주머니 안에 있었고, 반복해서 돈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보니, 주변에 있는 여성들이 그에게 이상한 눈길을 보내며 경계하는 일도 잦았다고 한다.

그렇게 2년여 동안 노력한 끝에 신 차장은 최근 국내 최초로 위폐감별사 자격을 취득했다. 외화 위폐감별 능력에 있어 세계 최고로 평가받는 HSBC 은행에서 실시한 최종 테스트에서 위폐를 정확하게 감별해 내, 위폐감별사 인증서(Certificate of Achievement)를 따낸 것이다.

현재 외환은행을 제외한 국내 대부분 은행은 위폐감별사가 없기 때문에 고객으로부터 수납한 외화를 해외은행에 전량 수출하고 필요한 외화를 다시 수입하는 방식으로 처리한다. 이럴 경우 은행당 연간 수십억 원의 외국통화 수출입 수수료를 지급해야 한다.

국내 최고의 외화 위폐감별사로 인정받고 있는 서태석(66) 외환은행 금융기관영업부장도 HSBC BOA가 운영하는 위폐 감별 교육과정을 이수했지만 인증서는 받지 않았다. 물론 외환은행은 서 부장을 비롯해 3명의 위폐감별사가 있기 때문에, 다른 은행처럼 해외은행에 외화를 수출입할 필요없이, 자체 감별이 가능하다.

신 차장이 이번에 위폐감별사 인증서를 받음에 따라, 우리은행도 자체 감별이 가능하게 됐다. 우리은행은 내달부터 외화 거래가 많은 일부 영업점을 대상으로 위폐감별 및 정사업무를 시범 실시한 후 전 영업점으로 확대 시행할 계획이다. 거액의 외국통화 수출입 수수료를 절감하게 된 셈이다.

신도섭 차장 인터뷰는 지난 28일 서울 중구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 외화출납실에서 1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다음은 신 차장과의 일문일답 요지이다.

"화폐에는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특별한 느낌이 있다"

- 은행에 입사해서 처음부터 위폐감별 업무를 했나.
"처음부터 이 일에 도전한 건 아니다. 영업점이나 관리파트에서도 근무했다. 특히 영업점에 있을 때, 외화출력부에서 위조지폐를 많이 다뤘다. 원래 어려서부터 동전 등 화폐를 모으는 데 취미가 있었다. 나이 먹으면서 별로 생각을 못하다가, 화폐를 많이 만지다 보니까, 자꾸 더 만지고 싶어지더라. 위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초정밀위폐, 중급위폐, 하급위폐로 나뉜다. 초정밀위폐는 거의 똑같고, 중·하급위폐는 누구나 관심 있게 보면 알 수 있다. (일을 하면서) 초정밀위폐를 보니까, 진폐와 너무 똑같더라. 정말 끝까지 비교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오기가 생긴 것이다."

- 위폐와 진폐는 어떻게 다른가?
"진폐에는 (위폐를 막기 위한) 여러 가지의 보안 기능이 숨어있다. 예를 들어, 보는 각도에 따라서 화폐 숫자의 색깔이 바뀐다. 또 화폐를 만지다 보면 오돌토돌한 부분도 있다. 100달러의 숫자 '100'을 자세히 보면 그 속에 작은 크기의 '$100'이 가득 채워져 있다. 또 화폐를 세로로 가로지르는 안전띠도 있다. 이런 게 모두 보안 기능이다. 보통 30가지 정도가 들어간다.

중·하급 위폐는 (보안기능 때문에) 일반인들도 그 차이를 알 수 있지만, 초정밀위폐인 슈퍼노트는 실제 그 차이가 굉장히 미세하다. 중하급 위폐는 그림의 선이 불선명한데, 초정밀위폐는 거의 똑같다. 그런데 화폐에는 약 30가지의 색사를 사용하는데, 실제 그것을 다 넣다보면 비용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위폐에는 다 못 넣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초정밀위폐가 진폐와 색깔이 거의 같지만 약간은 다를 수밖에 없다."

- 색깔을 보고 위폐를 구별해 낼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물론 오물이 묻으면 구분이 잘 안 된다. 처음에 색깔을 보고, 손끝으로 느끼고, 두께로도 알 수 있다. 오감이 다 동원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진폐일 경우 약간 엷은 푸른색을 띠고, 손가락으로 치면 카랑카랑한 소리가 나는데, 위폐는 약간 둔탁한 소리가 나고 느낌이 매끄럽다. 신권은 냄새로도 구별할 수 있는데, 많이 돌아다닌 화폐는 냄새가 소멸된다."

 위폐감별기 앞에 선 신도섭 차장이 취재진에게 위폐감별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위폐감별기 앞에 선 신도섭 차장이 취재진에게 위폐감별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 남소연

- 위폐를 감별해내는 과정은 어떻게 되나?
"일단 각 영업점으로부터 외화가 들어오면 먼저 위폐감별기(PPS200)에 집어넣고 돌린다. 위폐감별기는 시가 2억 원 정도 한다. 기계에 집어넣은 화폐 중 10~20% 정도가 리젝트(불합격)된다. 기계로는 감별이 완벽하게 안 된다. 그 때 손으로 감별하는 것이다. 하루에 300만 장 정도의 화폐를 처리한다. 화폐마다 가치의 차이가 워낙 크기 때문에 가늠하기 힘들지만, 대략 200만~300만 달러 정도 되는 셈이다."

- 감별했을 때 위폐가 나오는 비율은 어느 정도 인가?
"일년 평균 100~200장의 위폐가 나온다. 이틀에 1장 꼴로 위폐를 잡아내는 셈이다. 우리는 수사권이 없기 때문에 발견된 위폐는 경찰에 넘긴다."

- 위폐를 감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화폐가 많이 훼손됐거나 오물이 너무 많이 묻어 지저분할 경우에는 시각이나 촉각만 가지고는 감별하기 힘들다. 그러면 핀셋으로 종이를 약간씩 분해하면서 먼지나 섬유질의 상태를 확인한다. 종이가 찢어지는 강도로도 구별할 수 있다. 화폐 내에 들어가 있는 보안대까지도 꺼내서 본다. 그럼 시간이 좀 걸린다. 그래서 시간은 대중이 없다. 하지만 잘 보존된 것은 빠르면 (1매당) 1~2초 안에 대부분 감별할 수 있다."

- "위폐가 진화한다"고 했는데, 그럼 감별하는 방법도 따라서 진화를 하는 것인가?
"맞다. 특히 진폐도 (위폐를 막기 위해) 추가로 진화돼서 나오니까, 그에 대비해서 진폐의 고유한 속성들을 파악해야 한다. 화폐에는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특별한 느낌이 있다. 깊이 있게 만져보고, 반복해서 판단하다보면 진폐의 속성을 쉽게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 사람에게 달러를 만지게 하면 위폐인지, 진폐인지 잘 모른다. 그런데 원화를 갖다 주면 느낌이 빨리 온다. 위폐감별 전문가도 마찬가지다. 오래하다 보면 어느 정도 감이 온다."

"호주머니에 손 넣고 계속 만지작거렸더니..."

- 감별방법이 진화한다기 보다는 위폐와 진폐의 진화 흐름을 잘 파악해야 하는 일 같은데. 발권국과 정보를 자주 교환하나?
"발권국에서는 화폐에 20~30가지의 보안 기능을 넣지만, 그 중 열 댓 가지만 알려주고, 그 외에는 발권국에서도 절대 안 알려준다. (위폐감별사에게도?) 그렇다. 그걸 알면 위폐제조범들과 공모해서 위폐를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 발권국에서 알려주는 열 댓가지의 보안기능은 위폐 제조범들에게도 노출이 될 것이다. 그럼 그것만 가지고 위폐를 감별하는 것은 어렵지 않나?
"(발권국에서) 알려주는 보안기능과 함께 내가 진폐에 대한 속성을 파악하고 있는 것, 이 두 가지를 가지고 감별한다."

- 일반적으로 기계나 컴퓨터가 사람보다 정확하다. 왜 위폐감별은 기계보다 사람이 더 정확한가?
"기계는 위폐가 발견될 때마다 (위폐의 정보를) 업그레이드 시켜서, 옵션을 새로 설정한다. 그동안은 위폐를 잘 발견했다고 하지만, 위폐가 계속 변하기 때문에 그 정보를 새로 입력해야 한다. 그럼, 위폐제조자들이 '어? 발견됐네?'하면서 또 새로운 위폐를 만들어 유통시킨다. 하지만 기계는 예전 정보만을 가지고 돌아가지 않겠나. 그렇게 되면 기계는 우리가 새로운 정보를 입력시키기 전까지는 더 이상 새로운 위폐를 잡아낼 수 없다. 미국을 포함해 세계적으로 기계는 완벽할 수 없다. 기계가 80~90% 잡아내고, 나머지 부분은 사람이 해야 된다."

- 그럼, 사람은 100% 완벽하다고 할 수 있나?
"전 완벽하다고 보는데(웃음)……, 잘 모르겠다. 은행은 신뢰가 중요하기 때문에 제가 완벽하게 할 자신이 없으면 이 일은 할 수가 없다. 현재도 그렇고 앞으로도 저는 자신 있다."

- 국내 최초로 HSBC 은행에서 실시한 위폐감별사 인증 테스트를 통과했는데, 그 비결이 무엇인가?
"처음에 위폐와 진폐가 너무 똑같으니까, 오기 같은 게 생기더라. 막 화가 났다. 하다보면 그런 오기도 생기고, 국정원에서도 가끔 교육을 받았다. 은행의 배려로 HSBC에서 연수도 했다. 그렇게 정보를 조금씩 모으다보니, 더 큰 정보가 되더라. 어쨌든 가장 큰 것은 스스로 반복해서 진폐를 만지다보면 느낌이 온다는 것이다.

많이 접해봐야 한다. 그래야 진폐의 특징을 갖지 않은 위폐를 찾아낼 수 있다. 수백만 원 어치의 진폐를 내 돈으로 사서, 호주머니에 한두 뭉치씩 갖고 다녔다. 출퇴근 시간이 1시간 20분 정도 소요되는데, 지하철 안에서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계속 반복해서 만지다보니까, 나중에는 편한 느낌이 오더라. 집에서는 밥 먹기 전이나, 여유 있을 때마다 한 번씩 화폐를 들여다보곤 했다."

 계속 진화하는 위폐 감별을 위해 손끝 감각 등 오감을 다 동원하는 신도섭 차장은 "위폐감별은 기계보다 사람이 정확하다"고 말한다.
계속 진화하는 위폐 감별을 위해 손끝 감각 등 오감을 다 동원하는 신도섭 차장은 "위폐감별은 기계보다 사람이 정확하다"고 말한다. ⓒ 남소연

- 화폐 만지는 일을 계속하다보면 에피소드 같은 게 있었을 것 같은데.
"지하철에서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계속 만지작거리는 행동을 했더니, 여자분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같더라. 내가 자기 몸을 만지는 것은 아닌데, 뭔가 이상한 행동을 하니까, (치한으로) 오해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 테스트는 어떻게 하나?
"30~40매의 화폐 속에 초정밀위폐 10매 정도를 섞은 뒤, 돋보기 하나로만 감별하도록 한다. 위폐를 100% 감별해내지 못하면, 불합격이다. HSBC에 3번 연수를 갔는데, 처음에는 보이지 않는 갈등 때문에 정보를 알려주지 않더라. 나중에 슈퍼노트의 특징에 대한 정보 몇 가지를 얻을 수 있었는데, 그게 도움이 많이 됐다."

- 위폐감별 전문가로 일하면서 보안기능 등에 대한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 혹시 본인이 직접 진폐에 가까운 초정밀위폐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칼라잉크나 조판 등 장비가 다 갖춰진다면 구현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질 만하다.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화폐에 쓰인 글자에 암모니아나 마그네틱 성분을 넣는다. 그런 것은 구현해 내기 힘들다."

- 위조지폐 만들 때 일부러 진폐와 조금은 다르게 만든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
"맞다. 진품과 다른 정도에 따라 형량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진품과 다를수록) 형량이 줄기 때문에 아주 미세하게 다르게 만든다. 다른 것은 다 똑같이 구현해놓고, 일부 선을 두껍게 한다거나 더 얇게 한다거나……. 어떻게 보면, 위폐에서 그런 것을 찾아내는 게 더 재미가 있다."

- 탁월한 눈썰미나 섬세함 등이 필요한 직업이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로부터 너무 집착하거나 쪼잔해 보인다는 지적을 받지는 않나.
"그게 전부 은행원들 특유의 특징이다.(웃음) 개인적으로는 하도 돈, 돈, 돈 하면서 만지고 하니까, 가족들이 싫어한다. 외화가 해외에서 들어왔기 때문에 세균 같은 게 많지 않겠나. 그리고 돈에만 정신을 집중하다보면 주말에도 가족들과 함께 외출할 기회가 줄어든다."

-  다음 목표가 무엇인가?
"국내뿐 아니라 세계에서 인정받는 위폐감별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다른 은행에서도 위폐감별 전문가들을 많이 육성했으면 좋겠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김솔미 기자는 오마이뉴스 10기 인턴입니다.



#위폐감별전문가#신도섭#화폐#우리은행#위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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