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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길 경남대 교수가 30일 오후 현장설명회에서 진주시 문산읍 상문리 진성고개에서 발굴된 유해를 설명하고 있다.
 이상길 경남대 교수가 30일 오후 현장설명회에서 진주시 문산읍 상문리 진성고개에서 발굴된 유해를 설명하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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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시 문산읍 상문리 진성고개에 있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에서 나온 유골.
 진주시 문산읍 상문리 진성고개에 있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에서 나온 유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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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유골 54구가 나왔다. 60여 년만에 집단학살된 민간인 유골이 나온 것이다. 당시 21살이던 남편을 잃었던 팔순 할머니는 유해발굴 현장에 앉아 통곡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실화해위)와 경남대 박물관(발굴팀장 이상길)은 30일 오후 경남 진주시 문산읍 상문리 '진성고개'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학살 유해발굴 현장 설명회'를 가졌다.

진주 문산읍에서 진성면으로 넘어가는 진성고개에는 집단매장지가 3곳으로 추정된다. '웃법륜골'과 '아랫법률골'(가늘골), '까치골'이다. 경남대 박물관은 감나무 과수원 안에 있는 가늘골의 매장지를 발굴해 이날 현장설명회를 가진 것.

유해 최소 54구 나와 ... 9열로 손 묶여 묻혀

진주시 문산읍 진성고개 유해는 두 사람씩 손을 묶어 학살된 게 특징이다. 사진에서 보면, 왼쪽 사람의 오른쪽 팔이 오른쪽 사람의 오른쪽 팔과, 왼쪽 사람의 왼쪽 팔이 오른쪽 사람의 왼쪽 팔과 묶여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진주시 문산읍 진성고개 유해는 두 사람씩 손을 묶어 학살된 게 특징이다. 사진에서 보면, 왼쪽 사람의 오른쪽 팔이 오른쪽 사람의 오른쪽 팔과, 왼쪽 사람의 왼쪽 팔이 오른쪽 사람의 왼쪽 팔과 묶여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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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시 문산읍 진성고개 유해는 두 사람씩 손을 묶어 학살된 게 특징이다. 사진은 학살된 채 묻혀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진주시 문산읍 진성고개 유해는 두 사람씩 손을 묶어 학살된 게 특징이다. 사진은 학살된 채 묻혀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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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과수원 소유자 이봉춘(74) 할머니가 1980년대 초반에 과수원을 조성하기 위해 산을 매입했는데, 이전 산 주인으로부터 매장지라는 이야기를 듣고 지금까지 원상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관리해 오고 있었다. 매장지에는 수풀만 우거져 있었다. 또 이곳은 비탈져 있었는데, 길이 13.5m, 폭(최대) 4m 범위 안에 유해가 확인되었다.

유해는 54구(최소)가 나왔다. 전체적으로 2명씩 짝을 지어 열을 이루고 있는 게 특징이다. 모두 9열로 되어 있는데, 경사면에서 맨 위부터 1열 8명, 2열 7명, 3열 4명, 4열 4명, 5열 6명, 6열 6명, 7열 8명, 8열 6명, 9열 5명(?)으로 확인되었다.

유해의 자세는 2명씩 뒤로 묶여서 엎드린 것이 기본이며, 간혹 고개를 조금 옆으로 돌린 경우도 있으나 엎드린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2구를 제외한 모든 유해는 2명씩 짝을 지어 뒤로 묶여 있었는데, 두 사람이 팔이 서로 교차되도록 하여 손목을 묶은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손목을 묶었던 재료는 출토되지 않았지만, 증언에 의하면 죄수복을 찢어서 만든 천으로 묶었다고 한다.

유해의 자세와 탄피 등을 종합해 볼 때, 구덩이에 사람을 엎드리게 한 상태에서 학살이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학살된 순서는 1열부터 9열로 한 줄씩 차례대로 진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탄피는 모두 44점(M1 41개, 권총 3개)이 나왔는데, 그 숫자로 보아 1명당 1발씩 정조준하여 쏜 것으로 추정된다.

이상길 교수는 "현장에서 유해를 노출하는 과정에서 확인된 유해들은 대체로 20~30대의 남성들로 파악되고 있으며, 여성이나 어린 아이는 보이지 않는다"며 "보다 자세한 사항은 감식을 거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탄피와 함께 M1 클립(탄창) 4개, 탄두(다수)가 나왔는데, 모두 군용품이다. 또 유류품으로 의복에 사용되었던 허리띠(버클) 11개와 고무줄 4개, 지퍼 1개, 신발 38짝(구두, 작업화 등), 단추(다수), 칫솔 4개, 빗 1개, 병(약병?) 3개), 깡통 3개가 나왔다.

이상길 경남대 교수가 30일 오후 진주시 문산읍 상문리 진성고개 유해발굴 현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상길 경남대 교수가 30일 오후 진주시 문산읍 상문리 진성고개 유해발굴 현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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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시 문산읍 진성고개 유해발굴 현장에서는 고무줄아 나왔다.
 진주시 문산읍 진성고개 유해발굴 현장에서는 고무줄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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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는 예비검속 소집된 보도연맹 관련자로 추정

피해자는 진주형무소 재소자가 아니라 보도연맹과 관련하여 예비검속된 민간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학살이 일어났던 1950년 7월 당시 진주형무소에 있던 사람은 그 이전부터 수감되어 있었던 재소자와 한국전쟁 발발 이후 예비검속으로 소집된 보도연맹 관련자의 두 부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발굴에서는 11점의 허리띠와 38짝의 구두(작업화) 등이 나왔는데, 적어도 25명 이상은 민간인 복장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상길 교수는 "출토된 의복 관련 자료로 보아 이곳에 매장된 사람들은 당시 시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민간인임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가해자는 누구일까? 가해자의 성격을 알 수 있는 단서는 군용품이다. Mq 소총과 권총의 탄피가 나왔다. 한국전쟁 발발 당시 M1 소총은 제한된 군인 또는 그 관련자가 소지하고 있었다. 이것으로 볼 때 이곳 가해자는 군인으로 추정된다.

경남대 박물관은 "1950년 7월 하순(25일?) 진주형무소를 출발한 3대의 차량에는 각각 50여 명의 민간인과 다수의 군인들이 타고 있었다"면서 "그들은 모두 민간인들이었으며, 그 중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도 몇몇 섞여 있었다"고 밝혔다.

경남대 박물관은 앞으로 정확한 위치 확인 과정을 거쳐 '웃법륜골'과 '까치골'의 매장지도 발굴할 예정이다. 당시 3대의 차량이 50여 명씩 태우고 와서 학살했다는 증언이 있어, 그 증언이 맞다면 이들 2곳에서도 50여 구의 유골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상길 교수팀은 이곳을 발굴하기에 앞서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 2곳을 발굴했는데, 유골을 찾지 못했다. 진실화해위는 올해 2월 '부산경남지역 형무소 재소자 희생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을 결정했고, 명석면 용산리와 관리리, 우수리 등 총 8곳에 걸쳐 발굴하기로 했다.

진실화해위는 "1950년 7월 중순부터 하순까지 최소 1200여 명의 진주형무소 재소자와 국민보도연맹원들이 진주지구 CIC(특무대)와 헌병대, 진주경찰서 경찰들에 의해 집단 살해되었으며, 이들 중 신원이 70명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진주유족회 회원으로 21살의 남편을 잃었던 이해기 할머니가 30일 오후 진주 문산 진성고개 유해발굴 현장에 나왔다가 울고 있다.
 진주유족회 회원으로 21살의 남편을 잃었던 이해기 할머니가 30일 오후 진주 문산 진성고개 유해발굴 현장에 나왔다가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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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유족회 "명예회복 등 앞으로 할일 많아"

이해기 할머니가 30일 오후 진주 진성고개 유해발굴 현장에서 주저 앉아 통곡하고 있다.
 이해기 할머니가 30일 오후 진주 진성고개 유해발굴 현장에서 주저 앉아 통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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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현장설명회에는 진실화해위 김동춘 상임위원과 김덕현·김준형 경상대 교수, 진주유족회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진주유족회는 매장지 입구에 임시분향소를 설치해 놓기도 했다. 또 국토해양부와 진주시청 관계자들도 참석했다.

김태근 진주유족회 상임대표는 "유골을 보면 20~30대로, 피워보지도 못한 청춘들이 학살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면서 "그동안 부모형제들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해 왔는데, 앞으로 고인의 명예회복을 위해 정부와 자치단체 등이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주유족회 회원 전용기(70)씨는 "선친을 잃었는데, 이 매장지에 나온 유골이 선친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유골을 찾게 되어 다행이다"면서 "국가기관이 나서서 유골을 발굴했지만 앞으로 지역사회가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결혼한 지 3년 만에 21살이던 남편을 잃었다고 한 이해기(80·진주 사봉) 할머니는 발굴현장에 도착한 뒤 한동안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이 할머니는 "당시 6개월 된 아들이 있었는데, 남편을 억울하게 잃어 평생 한이 되었다"고 말했다.

진실화해위 김동춘 상임위원과 이상길 경남대 교수가 30일 오후 진주 문산읍 진성고개 유해발굴 현장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진실화해위 김동춘 상임위원과 이상길 경남대 교수가 30일 오후 진주 문산읍 진성고개 유해발굴 현장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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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근 진주유족회 상임대표가 진주 진성고개 유해발굴 현장 옆에 마련된 임시 분향소에서 술을 올리고 있다.
 김태근 진주유족회 상임대표가 진주 진성고개 유해발굴 현장 옆에 마련된 임시 분향소에서 술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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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문산읍 상문리 진성고개 유해발굴 현장에서 나온 유골.
 진주 문산읍 상문리 진성고개 유해발굴 현장에서 나온 유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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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시 문산읍 상문리 진성고개에 있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에서 나온 유골. 사진은 위에서 아래로 바라본 모습.
 진주시 문산읍 상문리 진성고개에 있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에서 나온 유골. 사진은 위에서 아래로 바라본 모습.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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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고개에는 모두 3곳에 걸쳐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매장지가 있는데, 사진은 진주시 문산읍 상문리 과수원 안에 있는 매장지다.
 진성고개에는 모두 3곳에 걸쳐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매장지가 있는데, 사진은 진주시 문산읍 상문리 과수원 안에 있는 매장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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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 유해발굴 현장을 알리는 펼침막.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 유해발굴 현장을 알리는 펼침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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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유족회 김태근 상임대표가 진성고개 유해발굴 현장에서 유골을 살펴보고 있다.
 진주유족회 김태근 상임대표가 진성고개 유해발굴 현장에서 유골을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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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문산읍 진성고개 유해 발굴 현장에서 나온 고무줄과 허리띠.
 진주 문산읍 진성고개 유해 발굴 현장에서 나온 고무줄과 허리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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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시 문산읍 상문리 진성고개에 있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에서 나온 허리띠.
 진주시 문산읍 상문리 진성고개에 있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에서 나온 허리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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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시 문산읍 상문리 진성고개에 있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에서 나온 신발.
 진주시 문산읍 상문리 진성고개에 있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에서 나온 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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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시 문산읍 상문리 진성고개에 있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에서 나온 빗.
 진주시 문산읍 상문리 진성고개에 있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에서 나온 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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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대 박물관은 30일 진주시 문산읍 진성고개 유해발굴 현장에서 54구의 유해를 발굴했다고 밝혔다.
 경남대 박물관은 30일 진주시 문산읍 진성고개 유해발굴 현장에서 54구의 유해를 발굴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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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민간인학살, #진성고개, #진주유족회, #이상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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