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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7 정전협정일 56주년을 맞이하는 소회

 

내가 어렸을 때 전쟁이 일어났고 정전이 되던 해는 1953년이었다. 그런데 반세기가 넘어서까지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에 민족사의 아픔이 서려 안타깝다. 정전협정만으로는 잠시 전쟁을 멈추는 것이나, 종전이 된 것은 아니어서 항시 총부리를 겨루는 대치상태의 계속이었다. 그래서 협정 당사국은 고위급 정치회담을 90일 이내에 열어 한반도 평화체제를 수립해나가는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왜 이것이 빈말이 되어 버렸을까? 이제 와서 정전도 평화도 아닌 상태가 왜 이토록 위협받고 있을까? 이는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가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지 못한데 원인이 있음을 느끼게 됐다. 남쪽은 정전협정이 맺어진 지 석 달도 못 돼서 1953년 10월 1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다. 이것부터 쌍방에서 조속히 외국군대를 철수키로 한 정전협정 자체에 위배되는 것이 아닌가?

 

이 같은 상황은 세계의 냉전 체제와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1980년대 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서 냉전체제 해빙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한반도에서는 한소 수교, 한중수교가 이루어졌다. 이는 남북에 대한 미,소의 교차승인을 전제로 하는 건데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미.소 간 냉전은 해소됐지만 한반도는 새로운 냉전이 예고되고 있었던 것이다.

 

냉전 상태의 해소에 따라 1990년대 초반 미국은 해외에 배치한 전술 핵무기를 철거한다고 선언을 했고, 미소 간 군비축소회담을 획기적으로 진전시키면서 남북 사이에도 1991년~1992년 사이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과 '남북 사이의 화해와 교류, 불가침에 관한 기본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가) 맺어졌다.

 

그런데 북미 관계는 진전이 안 됐다. 북이 (아버지) 부시 정부에 직접 대화를 요구했지만 미국은 묵살했다. 한반도 냉전 해소는 북.미 사이에서 긴절하게 논의됐어야 하는 것인데, 미국은 당시에도 NPT체재 의무시행이므로 '북에게 어떤 보상도 해줄 수가 없다'고 했다. 이것이 90년대 초반 이른바 '1차 북핵위기'로 나타났다.

 

한반도 정세, 왜 이렇게 되고 있나?

 

클린턴 아닌 정책(ABC)으로 북,미제네바합의를 뒤집어 엎었던 미국은 북,미직접대화를 거부했다. '악의 축'인 북쪽과 '대화는 없다'고 했으며, '대화는 해도 협상은 없다'고 했던 부시가 미중간선거의 수세를 계기로 북미가 들어가는 6자틀 대화(6자회담)가 나왔으나 한 단계의 합의 성명이 나오는 데로 역전을 거듭하다가 결국 2008년 12월, 결정적인 결렬 고비에 들어섰었다.

 

9.19공동성명은 '한반도 비핵화'를 목적으로 하며, 북미는 서로의 자주권을 존중하고 평화. 공존한다는 정신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있다. 또한 상대방에 대해 핵무기로던 재래식무기로던 공격이나 침공을 가하지 않는다는 것도 재확인 돼 있다.

 

흔히들 북핵폐기라고 하는데 9.19성명대로 하면 '한반도 비핵화'를 말한 것이며 이는 쌍방이 한반도에서 핵을 포기하는 것을 말한다. 북핵'폐기'가 아니라 '한반도의 비핵화'(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r)이다. '포기'는 쌍방 사이 전제가 충족되어 자발적으로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명에는 '공약' 대 공약, 행동 대 행동에 따라 핵포기가 관계 정상화와 병렬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되어 있다.

 

이 성명의 정신은 이미 제네바 합의 때도 나온 것을 다시 확인한 것에 불과한데, 이를 대하는 자세가 북과 미국이 다르다는 데 회담 결렬의 원인이 있다. 서로 합의해서 2.13합의, 10.3합의가 나온 것이라면, 이를 벗어나는 것은 회담이 결렬로 가는 것을 자초하는 것이다. 원래 2007년 12월 31일에 6자회담 2.13합의, 10.3합의에 의한 2단계 조치가 마무리되기로 되어 있었다. 10.3합의는 그 다음 단계가 예정되어 있는 2단계조치를 담은 것이며 2.13합의에 따른 현존하는 핵시설의 불능화와 핵프로그램의 신고를 담고 있다.

 

그런데 이후 1년을 끌면서 10.3합의에 포함되어 있지 않고, 명시되어 있지 않은 것을 미국이 요구하고 나오면서 결렬 위기가 조성되었다. 쌍방이 병렬적으로 이행해 가기로 한 것을 이행치 않으려고 한다면, 미국은 9.19공동성명과 그 이행 방도를 처음부터 거론하지 말았어야 한다.

 

2단계조치는 핵포기로 가기 전의 병렬적으로 취해져야 할 과정을 합의한 행동의 단계조치를 말한다.

 

되돌이킬 수 없는 것의 요구는 다음 단계 핵포기의 과정에서 다루어질 단계조치에서 쌍방이 병렬적으로 취해야 할 조치가 취해지면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진즉에 2단계가 불능화의 단계이므로 일방적으로 굴복을 요구하게 된다면, 2단계 불능화(무력화)의 합의 자체를 무시하는 것으로서 되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해 왔다.  2단계 불능화의 대상이 합의되었고, 그 시설의 냉각탑까지 폭파했는데 그에 대한 상응조치는 미루면서 어떻게 신고하지 않은 핵시설에 대해서 통고 없이 사찰한다거나, 우라늄을 농축시키지 않았냐고 붙들고 나올 수 있나.

 

최근 미국은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가 패키지 딜 조건이라고 하는데 이는 미국의 억지에 불과하다.

 

미국이 내 놓을 것은 생략한 채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되돌이킬 수 없는 검증'(CVID)을 요구하는 것은 관계 정상화가 되기 전에 적대하고 있는 나라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나. 그래서 다시 자주권 존중, 주권 평등의 정신에 따라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다음으로 불가침 정신에 위배된 것을 들어 보기로 해 보자. 핵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로 공격하거나 침공할 의사가 없다면 9.19공동성명으로 보아도 그렇다. (또 남북기본합의서로 보아서도 그렇다.) 적어도 증강된 병력으로 한미합동군사훈련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2007년, 2008년에도 합동군사훈련을 했다. 핵무기를 싣고 오는 미군이 남쪽에 들어오는 것이다. 2009년 올해는 키-리졸브 훈련을 2배 증강된 병력으로 했다. 전술핵무기도 2배 만큼 더 실어 와서 합동군사훈련 한 것으로 봐야 한다.

 

정전협정에 의하더라도 밖에서 새로운 무기와 군대는 들어올 수 없게 되어 있다. 진즉에 정전협정 규정이 사문화되고 있어서 평화냐, 전쟁이냐 이렇게 일촉즉발의 지경에 민족의 운명이 놓이게 되는데 느끼는 이 아픔이 언제 가서나 끝날 것인가. 이것을 민족사의 입장에서 보아야 한다.

 

그런데도 한미동맹의 미래비전은 가치관마저 한미가 같아야한다고 하는데 무슨 의미가 되겠는가?  노무현 정부 때까지는 개념계획 5029였는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 작전계획 5029로 바뀌었다. 북한 유사시를 대비한 계획이나 다름없다. 이런 것들이 6자회담 결렬의 근본 배경이고 원인이 된다.

 

아까도 말했지만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 등이 '북이 되돌릴 수 없는 포기를 하면 딜(deal)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미 90년대 초반에도 또 6자회담 당시에도 처음에 말은 그랬던 것이고 새로운 것이 하나도 없다.

 

90년대 이래 되풀이되는 과정을 다 겪고 난 북으로서는 도무지 신뢰할 수 없는 얘기인 것이다. 오죽하면 미국 언론인 워싱턴포스트가 '그렇게 한다면 주권을 가진 어떤 나라도 응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겠나.

 

평화냐, 전면 대립이냐-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

 

힐러리에서 캠벨까지, 미국 오바마 행정부 동북아 외교팀이 '되돌릴 수 없는 핵포기를 하면 포괄적 패키지로 딜할 수 있다'고 되풀이 하면, 이는 6자회담이 결렬된 지점에서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더 키워서 말하는 것이다. 왜냐. 핵폐기 뿐 아니라 미사일도 내놓아라, 재래식 무기도 줄여서 내놓아라, 이렇게 몽땅 내놓고 되돌릴 수 없는 것이 검증되어야 보상해주고 그 다음에 관계 정상화 할 수 있다고 하면 무슨 말이 되겠는가?

결렬 원인을 알면서도 결렬의 진정한 원인에 대해서는 감추고 선전만 해대는 것과 같다. 무엇보다도 이처럼 선후 관계로 말하는 것은 국제관계에서 쌍방이 서로의 주권을 존중해야한다는 기본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포괄적 패키지론'에 대해 남쪽 일부 언론이 북쪽이 '대화에 나올 것'이라고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북.미 사이에 지켜야 할 기본정신이 다시 확인되지 않고 있는데, 상실된 신뢰가 그렇게 쉽게 회복될 수 있을까. 어려울 것이다.

 

대화를 위해 남북관계의 안정적 상황이 필요하지만 남북관계가 2008년 이래 거의 중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금강산 관광, 개성관광이 중단되어 있고, 인적 교류가 거의 막혀 있다. 흔히 북에서 남쪽의 방북을 거절하는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은 남쪽 정부가 정세를 이유로 들어서 웬만하면 인적 교류를 불허하고 있다. 최근에도 6.15남측위 학술본부 교류가 거절됐다. 심지어 인도적 지원도 중단됐다. 북에 대해 인도적으로 지원해야 될 돼지사료 같은 것도 그 일례이다.

 

천 마리 돼지를 키울 사육장을 만들었는데 사료는 스무 마리 분밖에 보내지 않는다면 '돼지를 죽이라'는 얘기 아니냐. 교류 관계자들이 북에서 듣고 온 바에 따르면 '안 도와줘도 좋으니 방해만 말았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이렇게 남북관계가 경색되어 있는데 어떻게 한반도 정세를 풀기 위한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겠나.

 

우선 남쪽 정부부터 막힌 남북관계를 잘 터야 한다. 북이 바라지도 않는다는 패키지를 지난번 한미정상회담 때 대통령이 먼저 제안했다고 자랑을 하는데, 참 답답한 얘기다. 교류나 인도적 지원까지 막아놓고 무엇을 받으라는 거냐. 당국자 사이 대화도 거의 다 중단돼 있다.

 

북이 곧 패키지 접근에 대답해 올 것이라는 식으로 일부 언론이 흘리고 있는데 전혀 잘못 본 것이다. 쉽지 않다. 한반도 정세 경색이 풀리기 위해서는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가 북쪽에서 거듭 되풀이하고 있는 자주권 존중, 평화공존, 주권 평등의 정신을 다시 돌아봐야 한다. 이 같은 정신을 훼손해 버린 채 계속 밀어 부치면 마이웨이는 돼도 대화는 안 된다. 상대방에게 굴복이나 투항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과 북 사이에서는 공리공영과 유무상통의 정신에 의해 민족이 함께 공동 번영을 이루자고 하는 6.15 공동선언, 10.4선언 또는 남북기본합의서 정신조차 망각되고 있다. 이러한 정신을 정부가 잘 돌아볼 것을 당부하고자 한다.


태그:#정전협정 , #6.15공동선언 , #10.4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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