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국가경쟁력위원회가 '40만~50만 개의 어휘가 실린 현재 <표준어국어대사전>을, 2012년까지 100만 어휘를 담은 새 한글사전으로 만들어 펴내겠다'고 발표했다.

 

국어사전은 어려운 말부터 자주 쓰는 쉬운 말까지 낱낱이 다 담았을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은가보다. 3년만에 50만 개나 되는 어휘를 새로 싣는다니? 말도 생명이니 새로 생기기야 하겠지만 이렇게 많은 단어들이 3년 안에 갑자기 늘어날리는 없을 것 같은데… 사전 만드는 쪽에서 그동안 많은 말을 알게 모르게 빠뜨린 것은 아닐까. 국어사전 몇 쪽을 펼쳐보자.

 

서기(庶幾), 유우(惟憂), 조잡(嘈雜), 자두지미(自頭至尾)...'거의''걱정''가슴앓이''처음부터 끝까지'란 뜻이다. '푸른 하늘', '제비집'은 쉬운 단어 같지만 국어사전에서는 찾아볼 수없다.

 

새로 만들기에 앞서 알아야 할 일... 우리 사전, 제대로 된 것일까?

 

100만 어휘를 담으려는 새 한글사전 편찬작업은, 우리가 겨레말을 오랫동안 만들고 정성껏 벼리어 써 온 제대로 된 사전을 지금 한 권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그리 큰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새로운 세대가 만든 새말과 인터넷이나 문학, 영화, 패션, 건강 따위에서 새로 생긴 말만 잘 가다듬어 보태면 되니 말이다. 그러나 형편은 그렇지 않다.

 

사전을 펼쳐보면 '서기', '유우', '조잡', '자두지미'처럼 생활 속에서는 거의 죽은 말이지만 사전 속에만 살아있는 말들이 숱하다. 아직까지 펄펄 살아 입에서 맴도는 '푸른 하늘'이나 '제비집' 같은 우리 말은 '창천(蒼天)'이나 '연와(燕窩)'처럼 단번에 알아들을 수 없는 낯선 한자말로 바뀌었다.   

 

 

지난 7월 18일(토), 한글회관에서는 '정책이 바로서야 말글이 선다'는 주제로 토론발표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한말글연구회 정재도 회장은 "지금 국어사전은 중국에서도 쓰지 않는 한자말 투성이가 되었다"며 이는 "우리 말글살이가 모두 한자말에서 나온 듯이 꾸민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조선어사전'과, 이를 생각 없이(어떤 이는 '일부러') 좇아간 우리사회 유식쟁이 짓"이라고 꼬집었다.

 

총독부 조선어사전은 우리말 '곤두박질'은 근두박질(筋斗撲跌)에서, '잠깐'은 잠시간(暫時間)에서, '골똘하다'는 골독(汨篤)하다란 한자말에서 나왔다며 한글 존재 자체를 부인해왔다. 사정이 이런데도 사전을 만드는 사람들을 비롯한 지식인들은 지금껏 '汨篤하다 - [형용사] '골똘하다'의 원말'이라는 총독부 사전 풀이를 부끄러운 줄 모른채 버젓이 따라가고 있다.

 

이러니 '강우하다(降雨-)'는 얼토당토 않는 말까지 올라있는 판이다. '비 온다'고 하지 누가 '강우하다'고 할까? 사전에 올려서는 안 될 말이다.

 

어휘수를 20만, 30만으로 줄이더라도 우리네 삶과 상관없는 말은 털어내고 솎아내서 비뚤어진 말글살이를 바로잡을 때다.

 

기절(氣絶), 몰(歿), 불귀(不歸), 사(死), 사망(死亡), 운(韻), 장서(長逝), 절명(絶命), 귀천(歸天․歸泉), 귀토(歸土), 낙명(落命), 명몰(命沒), 명종(命終), 몰세(沒世), 몰신(歿身), 불기(不起), 불휘(不諱), 사거(死去), 사멸(死滅), 사몰(死歿), 사절(死絶),신고(身故), 실명(失命), 영면(永眠), 운수(隕首), 원서(遠逝), 입몰(入歿), 잠매(潛寐), 장명(戕命), 절맥(絶脈), 절식(絶息), 조사(徂謝), 종명(終命)… 모두 우리말 "죽음"이란 이름에 걸맞는 한자말이다. 몇몇을 빼고는 거의 쓰지 않는 말이다.

 

사전에서 '푸른 하늘'은 사라졌지만 창천, 벽천, 벽공, 천공, 궁창, 벽락 따위 한자말은 16가지나 된다. 끝, 여름, 겨울 따위 우리말은, '끝'을 대신하는 한자말 종료, 종막, 종언, 종극을 비롯해 '여름'의 한자말 하절기, 하계, '겨울'의 한자말 '동절기', '동계'가 대신하니 사전에서 그 모습을 감출 날도 얼마남지 않은 듯싶다.

 

어렵고 낯선 한자말, 말이 안되는 어휘를 솎아내고 나면 국어사전 두께가 지금보다 거의 반으로 줄 텐데 국가경쟁력위원회는 오히려 3년 안에 100만 어휘 사전을 만들어내겠단다. 사전 만드는 데 100억 원이나 되는 돈까지 들인다니 그 근거가 무엇인지 자세히 밝힐 일이다. 

 

3년이란 시간은 어떻게 셈했을까. 국어사전은 교육의 밑돌이자 우리 말글살이를 잡아주는 틀거지다. 10년도 긴시간이라고 할 수 없을 터인데 겨우 3년? 2012년이면 현 정권 임기와 맞물려있다. 설마 국어사전을 퇴임기념품으로 가져갈 생각은 아닐 테지만, 어설프고 준비되지 않은 사업이란 뒷말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100만 어휘는 더 생뚱맞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학자와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잘 쓰지않는 한자말, 어법에 맞지 않는 말 따위를 빼면 오히려 30만 개 정도의 어휘수만 남을 텐데 여기서 어떻게 100만 어휘 사전을 만들겠다는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100만 어휘를 자신하며 믿는 구석이 케케묵어 '한국' 사람들이 찾지도 않고 쓰지도 않는 한자말은 아니어야 한다. '오륀지' 따위 어중간한 영어도 끼일 자리가 아니다. 이는 모든 한자말이나 외래어를 빼자는 소리가 아니다. 쉽고 생동감 있는 우리말을 바탕으로 삼으면서 쓰임새가 요긴한 한자말, 외래어도 담아야 우리 말글살이를 제대로 잡아주는 사전이 되지 않겠는가.

 

우리말을 죽여가면서까지 어렵고 낯선 한자말를 앞세우는 못된 버릇은 고치고 시작해야, 비로소 제대로 된 국어사전 한 권 책꽂이에 꽂을 수 있으리라.  

 

토론회에서 알게된 정보

중국말은 한자로 적지않는다. 중국은 1986년 병음자모를 유엔(UN)에 등록하여 낱말마다 로마자로 음을 단다. 사전도 복잡하게 부수로 찾지 않고 ABC순서대로 찾는다.

                                                           <토론발표 자료: 우리 '사전' 새롭히기-정재도-에서> 


태그:#한말글문화협회, #국어사전 편찬, #한글날을 공휴일로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나무와 숲 그리고 조경일을 배웁니다. 1인가구 외로움 청소업체 '편지'를 준비 중이고요. 한 사람 삶을 기록하는 일과 청소노동을 합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