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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군것질과 반찬거리를 가장 가까이서 제공해주던 동네슈퍼가 아사 직전에 몰려있다. 이름하여 기업형슈퍼의 등장 때문이다.

 

지금 전국의 동네 골목에는 대기업의 기업형슈퍼가 무지막지하게 진군하여 기존의 동네슈퍼를 고사시키고 있다. 동네 코흘리개 돈이나 주부들의 기본소비에 의존하든 동네슈퍼가 이제 명맥마저 유지하지 못할 위기에 봉착한 채 생존 투쟁을 벌이고 있다. 지금 동네슈퍼의 운영상태는 생각 이상으로 심각한 상태다. 그도 그럴 것이 대자본에 의한 물량공세와 시스템에 의한 조직관리를 동네 골목슈퍼가 당할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몇 십 년간 동네에서 이웃만 바라보고 장사를 하던 슈퍼는 이제 조직화되고 자본화된 선진형태의 체인슈퍼에 카운터펀치를 얻어 맞고 비실거린다. 경기에서는 심판이 경기를 중단시킬 수도 있고 코치가 응원이라도 해 주지만 치열한 삶의 경쟁속에서는 누구 하나 동네슈퍼를 도와주지 않는다.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것이 이슈가 되는 것은 이제 재벌이나 대기업이 해도해도 너무한다는 공감대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나 정책형 비지니스로 꾸려가야 할 대기업이 이제 실적 위주로 틈새시장을 노려 동네골목까지 진출하여 영세상인의 목줄을 조여오자 성난 민심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이미 소리 소문없이 동네골목에 진출한 기업형슈퍼는 기존시장을 상당부분 잠식하며 무서운 기세로 주부들의 돈을 긁어 모으고 있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나 GS슈퍼마켓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무심코 들렀던 동네어귀의 깔끔한 슈퍼가 동네슈퍼를 몰아낸 장본인이라고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상당수의 동네슈퍼들은 질식한 채 보따리를 싸고 있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남자들이야 슈퍼나 공산품 가격에 별 관심이 없지만 주부들은 10원 한 장에 민감하다. 조금이라도 가격이 싸면 가차없이 동네슈퍼를 버리고 기업형슈퍼에 몰려든다. 이제 동정이고 인심이고 그런 감상 젖은 생각으로 장사를 하긴 어렵다. 그저 자기에게 얼마나 이익이 돌아오는가가 관점이다. 그건 누굴 탓할 일도 아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고 자본주의의 속성은 처절하게 경쟁에서 살아 남는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동네슈퍼가 없어지든 말든 그저 사람들은 싼 값에 질좋은 제품을 구매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데 있다. 처음에는 미끼상품으로 원가 이하에 팔던 기업형슈퍼가 점점 시장을 장악한 후 일정수준에 오르면 그간의 손실을 일거에 만회하기 위해 정상적인 가격을 제시하고 그 이후에는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적정마진을 챙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소비자만 봉이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것은 그대로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온다.

 

기업이 자기들의 방식대로 어떤 아이템을 비지니스 품목으로 하느냐는 전적으로 기업의 선택에 달려있다. 그러나 소위 민생시장의 대표격인 재래시장과 동네슈퍼를 모조리 고사시키는 기업형 슈퍼의 동네진출을 그저 자본주의의 논리로 방치해야 하는가?

 

우리는 미국이 값싼 농산물을 개방하라고 할때 죽기살기로 쌀 만큼은 안된다고 막아섰다.

물론 소비자는 값싼 쌀을 구매해야 할 권리가 있지만 그 쌀은 곧 우리의 대표적 농산물이자 농민의 젖줄이요 국익을 지켜내는 마지막 보루다. 값싼 쌀을 대규모로 공급하는 미국이 한국시장을 장악했다고 느끼는 순간 가격조작을 통해 식량을 무기로 삼을 수도 있다는 가정이 공포스럽게 다가오면서 농민들은 온몸으로 쌀 개방에 반대하고 나섰다.

 

우리는 그래서 농민의 대표적 생산품인 쌀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하고 우리 식탁을 지키기 위한 피나는 투쟁도 불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자본의 논리나 가격경쟁의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민생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동네슈퍼 역시 마찬가지다.

 

대기업이 슈퍼를 개설하지 못하도록 막을 법적 근거가 없다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사회적 윤리와 약자의 배려를 바탕에 둔다면 그토록 무모한 확장으로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노리는 저인망식 슈퍼 확장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그 템포를 늦추어 가야 할 것이다.

 

공존·공생을 외치지만 동네슈퍼와 기업형슈퍼는 애당초 경쟁이 되지도 않을 뿐더러 자본이나 조직면에서 상대할 대상이 아니다. 어린아이와 어른이 아무리 공정경쟁을 한다고 하더라도 달리기에서 누가 먼저 골인하겠는가? 애당초 어른과 아이들이 달리기 경주를 동일선상에서 해야 한다는 것은 공정경쟁이 아니다.

 

지금 한국 사회의 생활패턴이 급속도로 선진화 되고 마이카시대의 도래로 이제는 소비자도 동네슈퍼에 매달리지 않고 전국을 돌며 조금이라도 값싼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기업 역시도 이익을 내기 위한 것이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틈새시장을 노린다. 동네슈퍼도 사력을 다해 살아남기 위한 전략을 구사하고 가격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비법을 구상 중이다.

 

그러나 이미 결과가 뻔한 게임에서 끝까지 내기를 해보자고 우기는 건 강자의 비겁함이요 약자를 배려히지 않는 무력시위다. 아무리 법적근거나 자본주의의 속성이 그렇다 치더라도 동네의 사랑방 구실을 하는 동네슈퍼나 재래시장 옆에 무차별적으로 자본을 살포하여 기존시장을 잠식하는 무례함은 조금은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어차피 문화생활의 변화로 구매패턴과 이동동선이 크게 달라진 요즈음 엉성하고 소비자의 기호에 부응하지 못하는 가게는 슈퍼나 시장을 막론하고 모두 소멸되고 끝없이 폐업과 개업을 되풀이하며 살아 남는 자를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재삼 강조하거니와 애당초 게임도 되지 않는 약자와의 싸움으로 기존의 기업 이미지마저 흐리는 것보다는 더 큰 규모의 더 큰 정책적 판단을 전제로 하는 기업형 비지니스를 창출해 나가는 것은 어떨까?

 

이미 상당 부분 죽어있는 동네슈퍼를 향해 마지막 확인사살을 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여유를 갖고 대기업답게 그들이 회생할 수 있는 시간을 주면서 같이 살아날 수 있는 길은 정녕 없는 것일까?


태그:#동네슈퍼, #기업형슈퍼, #S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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