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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교사들이 다양하고 역동적인 수업방식으로 영어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높이고 영어구사능력을 키워주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 수업실연 장면 많은 교사들이 다양하고 역동적인 수업방식으로 영어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높이고 영어구사능력을 키워주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 안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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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요일(15일)은 데모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연수원에서의 데모란 연수과정의 꽃이라고도 할 수 있는 수업실연(Demonstration)을 의미합니다. 아직 1개월간의 호주 해외연수 과정(7월 25일~8월24일)이 남아 있긴 하지만, 지난 3월 2일부터 시작된 5개월 동안의 국내연수과정에 마지막 화룡점정(畵龍點睛)을 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수업실연은 8명으로 구성되어 있는 한 팀에서 50분 분량의 수업을 만들어 듣기(Listening), 읽기(Reading), 말하기(Speaking), 쓰기(Writing)의 4영역에 걸친 수업기술을 고루 선보이는 팀티칭의 형태로 진행되었습니다. 지난 5개월 동안 8명의 원어민교사들에게 배운 내용도  바로 그 네 가지 수업기술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송미희(순천매산중)교사가 유려하고 열정적인 몸짓으로 수업실연을 선보이고 있다.
▲ 수업실연 장면 송미희(순천매산중)교사가 유려하고 열정적인 몸짓으로 수업실연을 선보이고 있다.
ⓒ 안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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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교사가 영어직무연수를 받는 목적은 매우 간명합니다. 학생들에게 영어를 잘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가르치는 것이 잘 가르치는 것이냐고 누군가 되묻는다면 그 대답이 간단치만은 않습니다. 우리나라 고등학교(특히 인문고)에서 진행되는 영어교육의 현실적인 목표는 대학입시에 있습니다. 그것이 영어구사능력 향상이라는 영어교육의 본질적인 목표와 배치될 수 있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듣기(Listening), 읽기(Reading), 말하기(Speaking), 쓰기(Writing)의 네 가지 기술은 다시 두 가지, 즉 생산적(Productive Skills) 기술 영역과 수용적(Receptive Skills) 기술 영역으로 나뉘어집니다. 가령, 말하기와 쓰기가 언어를 생산하는 단계의 기술인데 반하여 듣기와 읽기는 주어진 텍스트를 읽거나 듣고 이해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하느냐는 질문은 우문에 가깝습니다. 영어에서 듣기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영어회화의 기본이 되기 때문입니다. 영어구사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대체로 듣기 능력도 뛰어납니다. 상대방의 말을 듣지 못하면서 말을 잘 할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듣기를 잘 한다고 꼭 회화능력이 뛰어난 것은 아닙니다. 듣기 능력 시험에서 만점을 받은 학생이 외국인과 만나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것이 한국 영어교육의 현주소이기도 합니다.

전남교육연수원 국제부에서 전임으로 근무하는  8명의 원어민 강사의 훌륭한 교수법은 32명의 연수생들에게 고스란히 전수되었다. 존(우)과 캐빈(좌)이 다른 원어민 강사들과 함께 수업실연 심사를 하고 있다.
▲ 수업실연 전남교육연수원 국제부에서 전임으로 근무하는 8명의 원어민 강사의 훌륭한 교수법은 32명의 연수생들에게 고스란히 전수되었다. 존(우)과 캐빈(좌)이 다른 원어민 강사들과 함께 수업실연 심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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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외국어 영역은 언어의 수용적 기술 영역인 듣기와 읽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영어구사능력이 제로에 가까워도 영어시험에서 만점의 성적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모순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영어교육은 공염불에 불과할 것입니다.

지난 5개월 동안 32명의 영어교사들이 잠시 학교현장을 떠나 연수원에서 한솥밥을 먹으면서 함께 공유했던 고민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과연 이곳에서 배운 화려한(?) 수업기술들을 과연 학교 현장에서 써먹을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소박하면서도 진지한 물음에 대한 답을 쉽게 내리는 교사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개인교사의 남다른 열정만으로 쉽게 해결된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지난 5개월간의 국내 연수는 그 답을 찾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수업기술을 습득하는 것이 오히려 정신적인 부담이 되기도 했습니다. 입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인문고 교사들의 사정은 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함께 연수를 받은 한 교사의 고백은 제가 듣기에 참담하기조차했습니다. 

"학교로 돌아가면 100%로 다시 옛날 방식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어요. 영어구사능력을 키워준답시고 시험에도 안 나오는 말하기, 쓰기 수업을 하다 보면 아마도 학부형들이 먼저 난리칠 거요."

다행스러운 것은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동료교사의 태도가 차츰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학교로 돌아가면 이것만은 꼭 해보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뭔가 희망이 있는 쪽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것이 6개월 장기연수의 효과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제 나름대로도 답을 찾았습니다. 제가 내린 잠정적인 결론은 '준비된 교사가 되자!', '조금씩 학교 현장을 변화시키자!'라는 두 가지으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학교가 전문계 학교이다 보니 조금은 쉽게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우리 교육의 현실에 대해서 비교적 비관적인 편입니다. 비관적이란 말은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열망을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희망적입니다. 아무리 현실적인 여건이 힘들고 가파르더라도 희망이 있는 쪽으로 한 걸음 더 내딛고 싶습니다. 그것이 저에게는 이번 영어교사직무연수의 소중한 의미이기도 합니다.

지난 3월 2일부터 오는 7일 22일까지 32명의 전남지역 영어교사들과 8명의 원어민들이 함께 동고동락한 보금자리.
▲ 전남교육연수원 국제부 지난 3월 2일부터 오는 7일 22일까지 32명의 전남지역 영어교사들과 8명의 원어민들이 함께 동고동락한 보금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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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영어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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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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