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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이란 무엇일까. 또 꼭 기록해야만 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사실 사람들 가운데는 기록이 습관이 된 이들이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김광웅 초대 중앙인사위원회 위원장의 '통의동 일기'는 의미있는 책이자 중요한 가치를 지닌 책이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행정통인 김광웅 교수는 1999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후 '공무원의 정실임용 방지, 인사행정의 공정성과 중립성 유지'를 위해 대통령 직속으로 설립된다. 인사위가 하는 업무는 각 부처의 장관이나 기관장이 대통령에게 인사를 제청하는 사람들의 적격성을 심사하는 것이다. '인사가 만사다'라는 말을 떠나서 인사가 한 정부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불문가지다.

 

김대중 대통령은 당선된 지 1년여가 지난 시점에서 적절한 지역 안배 등은 절대적인 문제였을 것이다. 어떻든 김 대통령은 서울 출신에다 행정통 학자인 김 위원장을 초대 위원장으로 정한다.

 

그리고 김 위원장은 자신의 재직시 업무와 관련된 것들을 하나하나 기록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떠난 지 8년여가 지난 올 초 이 책을 펴냈다.

 

이 책은 딱딱한 공직의 기록일 것이지만 잘 읽어보면 김대중 정부의 인사 형태, 인사 방향, 당정청 간의 권력 구도 등을 자세히 살필 수 있다. 거기에 김 위원장의 정치관이나 인사관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기록이다.

 

내부에 들어가 보자. 73페이지의 기록에서 통일부 기획관리실장이나 통일연수원장의 무례를 꾸짖는 것을 보면 필자의 스타일이 그대로 보인다. 134페이지 네크로폰테 강연을 듣고 '앞으로 인터넷 언어는 중국어'라는 말에 공감하는 것을 보면 흥미롭다. 146페이지에서 만 28살을 맞는 아들 재원씨의 생일에 소회는 아버지가 아들에 갖는 염려의 깊이를 볼 수 있어서 좋다. 169페이지 "몇 가지 원칙을 스스로 만들어 지켰다… 나는 장관 행세를 절대로 하지 않겠다, 였다. 권력은 남용될 때 부패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어기지 않으려고 철저히 노력했다"는 말은 책 전반에서 가장 강하게 드러나는 생활 모습이기에 신뢰가 간다.

 

김 위원장은 재임기간에 내부 시스템 개선에도 많은 공을 들인다. 가령 정부부처가 업무 보고를 할 때 각 부서별로 수천만원씩 들여서 장비를 렌탈하는 모순도 지적한다. 지금은 없어졌는지 모르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각 부서별로 장비나 시설을 준비해 가서 정부 보고 비용만도 수천만 원에 달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언론과의 관계도 볼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다만 제자들에 대한 긍정적인 선입견이나 자신의 애호가 너무 드러나는 것은 읽기에 껄그럽다. 그럼에도 공직을 맡거나 특히 인사에 관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읽어야할 소중한 책이다.

 

참고로 중앙인사위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행안부에 편입되어 껍데기만 남게 됐다. 이제 공직으로 가려는 사람들을 클리핑해줄 최소한의 장치도 사라진 셈이다. 그러니 인사가 사판이 되고, 결국 이 정부의 뿌리부터 썩어가는 것은 자명한 일이 됐다.


통의동 일기

김광웅 지음, 생각의나무(2009)


태그:#김광웅, #통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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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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