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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기차게 여행을 즐기던 하나가 배탈을 만나서 하룻밤 지독하게 앓았다. 야즈드 올드시티에 있는 여학교 앞에서 만난 아이들과 함께 놀이터 시소 위에서.
 활기차게 여행을 즐기던 하나가 배탈을 만나서 하룻밤 지독하게 앓았다. 야즈드 올드시티에 있는 여학교 앞에서 만난 아이들과 함께 놀이터 시소 위에서.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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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헬소툰 궁전 가는 길에 한 차례 배앓이를 했던 작은 애의 증상이 심상찮았습니다. 그때 우리는 이스파한 번화가를 걷고 있었는데 작은 애는 괴로워보였습니다. 말도 없고 표정에 그늘이 가득했습니다. 조금 아파서는 표가 나지 않을 정도로 긍정적이고 씩씩한 아이인데 이 정도로 표를 낸다는 건 상태가 심각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얼른 숙소로 돌아가서 쉬게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갔던 작은 애는 축구공이 배 안에 들어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축구공이 배 안에 들어가다니, 아픈 와중에도 유머가 나오나, 하고 생각했는데 곧 축구공이 배 안에 들어갔을 때의 불편함과 아픔이 이해가 돼서 그 말의 뜻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몹시 아프다는 의미였습니다.

하나에게 배탈 약을 먹였습니다.  여행 올 때 많은 약을 챙겨왔습니다. 배 아플 때 먹는 약, 두통 약, 다쳤을 때 바르는 소독약과 연고, 근육통이 생겼을 때 붙일 파스 등 약을 한보따리 챙겨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배탈과 관련한 약을 많이 가져왔습니다. 해외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물이 바뀌면 배앓이를 많이 한다고 해서 특히 신경을 썼던 것입니다.

하나의 배탈이 단순한 소화불량인지, 아니면 식중독인지, 그것도 아니면 감기로 인한 합병증인지는 병원을 가봐야 알 수 있지만 우선은 챙겨온 배탈 약을 먹이기로 했습니다. 배가 아플 때 먹으면 좋다고 약사가 추천해준 유산균 약도 함께 먹였습니다.

그런데 하나가 아픈 것은 난이라는 빵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하나를 재우고 배가 고파서 뭐 먹을 걸 찾다가 식탁 위에 있는 난을 먹으려고 봉지를 열었습니다. 난에 곰팡이가 핀 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 빵은 아침 일찍 일어난 하나와 내가 식탁에 앉아 사이좋게 뜯어먹었던 빵입니다. 그때는 분명 곰팡이를 발견하지 못했었는데 지금 보니까 곰팡이가 피어있었습니다. 아침에는 곰팡이 균이 잠재해 있다가 따뜻한 실내에 있으면서 저녁 무렵 피어난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하나가 아픈 것은 난이라는 빵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이 난은 산 지 꽤 여러 날이 지났는데 아깝다고 들고 다니다가 오늘 아침까지 먹었던 것입니다. 거기다 냉장고에 보관하지 않은 꽤 지난 버터까지 발라 먹었으니 하나가 아프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집에서는 유통기한이나 냉장보관 이런 것에 철두철미한데 여기 와서 여행에서는 뭔가 정신이 좀 나갔는지 어떻게 그런 빵과 버터를 애에게 먹였는지 모르겠다고 자책했습니다.

여행을 현실과 유리된 걸로 생각했는데 이런 사소한 일상조차도 다른 시간 속에 머무는 걸로 착각한 모양입니다. 하나의 배탈은 나의 부주의에서 생긴 결과인 것입니다.

배가 아픈 하나가 가장 먼저 찾은 음식인 라면. 한국인의 힘은 라면인가?
 배가 아픈 하나가 가장 먼저 찾은 음식인 라면. 한국인의 힘은 라면인가?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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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에 하나가 화장실 가는 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여전히 아프다고 했습니다. 날이 밝으면 병원에 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몹시 걱정을 했습니다. 병원에 입원하는 상황이 올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정말 많이 걱정이 돼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무엇이든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여행 가방에 챙겨온 금강경을 독송했습니다.

아무리 자식이지만 하나의 아픔에 난 그냥 방관자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축구공이 들어간 것처럼 아프다고 하는데 내 배는 안 아프니까 그 아픔에 공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내가 하나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습니다. 배가 아파서 자주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가는 하나에게 그저 "좀 괜찮니?"하면서 묻는 것 이외에는 달리 할 게 없어서 난 금강경을 읽어 기도의 힘이라도 빌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알라의 기운이 강한 이 나라에서 부처님의 말씀인 금강경을 읽어도 되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상황이라서 그런지 다른 어떤 때보다도 열심히 금강경을 독송했습니다. 금강경을 읽는데 집중이 잘 되고 마음이 안정되는 게 느껴졌습니다.

작은 애는 아침 해가 밝아올 때 화장실 간다고 다시 일어났습니다. 다행히 어제 아픈 것의 5분의 1만 아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배가 고프다고 해서 미역국 끓여서 밥 주겠다고 했더니 컵라면이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배 아파서 토한 애한테 맵고 느끼한 컵라면을 주는 게 걸려서 미역국 먹는 게 어떻겠냐고 재차 물었더니 느끼한 걸 많이 먹어서 맵고 얼큰한 게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먹든 자기가 좋아하는 걸 먹는 게 건강에는 좋은 것 같아서 컵라면 한 개와 햇반을 데워서 주었더니 맛있게 다 먹어치웠습니다. 밥을 먹고 다시 배탈 약을 먹였습니다.

밥을 먹고 난 작은 애는  다시 자겠다고 침대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는 창문으로 강렬한 해가 쏟아져 들어오는 한낮이 됐을 때 일어났는데  무슨 기적이라도 일어났는지 목소리 커지고 활기찬 하나로 돌아왔습니다.

어제 몹시 아파하던 하나의 모습으로 봐서는 오늘 병원으로 가야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았는데 평소 워낙 건강하고 에너지가 넘쳐서인지 하룻밤을 앓고는 거뜬하게 털고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가 건강해진 모습을 보니까 오늘의 태양은 더 밝고 빛나게 느껴졌습니다. 여행도 더욱 즐겁게 여겨졌습니다.


태그:#이란여행, #배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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