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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스러움 쟁탈전- 짝퉁 한나라로 진짜 한나라랑 겨루기

환장의 매치가 시작되었다. '평생 한나라를 찍어온 사람들'을 놓고 벌이는 '한나라스러움 경쟁'이다. 평생 동반자로 알고 살아 온 한나라의 충실한 지지자들(즉 경상도 사람들)은 특별히 새로운 매력을 보여주지 않는 한 한나라의 손을 놓을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다.

당연히 새로운 매력을 보여주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더 한나라스럽다'는 증거를 제시해 확인시키는 방법 말고는 없다. 짝퉁 한나라지만 진짜보다 더 진짜같은 짝퉁임을 과시해야 한다. 진짜를 두고도 굳이 짝퉁에 눈을 돌리게 할 이유를 만들어야 했다.

'전혀 새로운 상품'을 내밀면서 이들이 지금까지 구매해 온 한나라가 최악의 불량품이었음을 인식시키는 아주 긍정적인 노선이 있었으나, 노무현은 불가능한 방법이라고 치부하고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오래 걸리지만 옳은 길,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다져나가는 길, 이성과 양심에 호소하는 길(김대중이 오랫동안 추구해 온 노선)을 거부하고 편하고 곧바로 효과가 나타날 근시안적 노선을 택한 것이다.

혐오를 승인하고 편승하기. 명분도 없지만 무엇보다 큰 문제는 실패가 예정된 아주 어리석기 짝이 없는 전략이라는 점에서 돌이킬 수 없는 망책을 쓰고 말았다. 가치론적으로도, 방법론으로도, 전략으로도 완벽한 실패작이다. 민주세력을 침몰시킨 최하책.

한나라보다 더 한나라스럽게

평생 한나라를 찍어 온 사람들을 가장 잘 만족시킬 수 있는 정당이 어딘가? 한나라당이다. 그런 한나라당을 상대로 한나라스럽기를 놓고 '한나라당만 찍어온 사람들' 쟁탈을 벌이다니. 결국 김대중 혐오경쟁, 민주당 모욕경쟁, 개혁세력 파괴경쟁, 호남 물먹이기 경쟁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모든 민주적 기반은 와해되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무조건적 혐오증을 치유하라는 지상명령을 받고 출범한 정권이 정면으로 이 엄중한 명제를 거부하고, 되려 바로 그 혐오증에 편승해서 겨우 '경상도 표'나 몇장 얻으려고 설쳤던 것이 이 사태의 본질이다. 논란의 여지가 없다. 긍정의 대기획이 부정의 계략으로 전락해버린 대비극이었다.

경상도 눈높이에 맞춘 정치가 몰고 온 비극적 퇴행들

'김대중'이라는 이름은 40년째 이어져 온 한국 정치의 화두다. 경상도에게는 평생 입에 넣고 씹어 온 심심풀이 오징어 땅콩이기도 하다.

인터넷 포털에서 '김대중'을 치면 입에 담을 수 없는 증오와 혐오의 언어들이 한도 없이 쏟아져 나온다. 온갖 부정과 비리설, 노벨상 매수설, 상상할 수 없는 자금을 북한에 지원했다는 설, 해외에 어마어마한 비자금을 숨겨 놓았다는 둥, 하여튼 경상도의 김대중 혐오를 어떻게든 정당화 시키기 위한 처절한 절규들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얼마전 신문기사 댓글에서 노무현을 김대중이 암살했다는 글까지 봤다. 치유 불가능한 정신병자들.)

김대중이 누구의 원성을 살만큼 험한 일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평생을 용서하고, 화해를 위해 노력한 기록은 많이 봤지만, 다치게 하거나 해코지를 했다는 이야기는 본적도 들은 적도 없다. 하지만 이들의 혐오는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이다. 나이의 많고 적음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유전자에 새겨지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끔찍하고도 집요하다. '밥상머리 교육'의 성과인지.

왜 그들은 김대중을 원수로 삼았을까? 이유를 궁리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경상도의 독점을 반대한 것 말고는 떠오르는게 없다. 경상도 정권 내내 충족시켜온 그 배타적이고 게걸스러운 식탐을 인정하지 않은 유일한 정치인이었다는 점이 아마 그들을 분노케 한 모양이다. 민주당은 그런 신념을 뒷받침한 정당이었으니 당연히 동일선상에서 증오의 대상이 되었고, 이들을 지켜내는 든든한 기반 노릇을 한 전라도가 그리도 미웠던 모양이다.

열심히 성원했던 정권들이 지독한 독재를 하던 끝에 나라를 완전히 말아먹은 상태에서도 정권의 교체를 기를 쓰고 막았던 사람들. 망한 나라를 인수해서 일으켜 세우려고 피눈물을 쏟는 동안에도 비토로 날을 세운 사람들. 그러나 김대중은 그런 그들까지도 미워하지 않고 용서했다. 품으려고 노력했다. 이런 성과가 반영되고, 충심이 통했는지 차츰 분위기가 바뀌어 가고 있었다.

이인제가 아니라 노무현을 밀어 올린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노무현의 착각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유일한 이유였을 수도 있다. 조금씩 긍정적으로 변화해 가는 경상도의 비이성을 더욱 더 설득해서 완화시키고, 이성을 회복하도록 애써주라는 눈물겨운 요청이었다. 한국사회의 평균적인 정치의식, 사회의식을 높여 한나라당이 발 붙일 데 없을 정도로 높여 놓자는 바람들.

'전라도의', '김대중이라서' 할 수 없었던 일을 당신이 대신 이뤄 달라는 그 눈물겨운 마음들. 깨인 경상도인으로서 경상도를 깨워 달라는 간절한 요구들.

경상도의 절대적 김대중 혐오를 수긍, 추인하고, 이에 편승한 대북송금특검

이 바람들은 그러나 노무현에 의해 보기좋게 거부당했다. 아니 조롱당했다. 비이성의 편, 이유없는 혐오의 편, 알 수 없는 증오의 편에 그가 서버린 것이다. 그리고는 정권을 이용해 마음껏 유린해 갔다. 한때 같은 방향을 보며 걷고 있다고 믿고 있던 사람들을 향해 포문을 열었다. 지지해 대통령을 만들어준 사람들을 향해.

대선은 끝났다. 노무현이 이겼고, 민주당이 이겼고, 민주화세력이 이겼다. 연이은 두번의 선거패배로 한나라당은 정신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뚝이터져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지지율 격차는 두배에 육박했고, 더이상 발붙일 곳이 없을만큼 사회가 진화해 버린게 아닌가 공포에 떨던 한나라당 사람들의 표정들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런 시절이었다. 한발만 더 나가면 되는 순간이었다.

별 기대 없이 툭 던진 한나라당의 특검법안(또다른 음모론-내부의 작품이었다는-은 여기선 그냥 제껴두자.)을 웃으면서 받아버리던 순간 또다시 운명의 추는 반대편을 향해 기울어져 버렸다. 한나라당조차 받지 않는 것을 상정하고 대책을 논의하고 있던 때에 한나라에는 왕대박 로또를, 민주당과 민주세력에게는 핵폭탄을 안겨버렸다. '평생 한나라를 찍어온 사람들'을 위해서. 그들의 혐오를 정당화시켜주기 위해서.

우리 이제는 솔직해지자. 다른 핑계를 가져다 대지 말자. '외교의 투명성'이니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도 하지 말고, 솔직하게 말하자. 특검은 '경상도와 한나라에 준 선물'이었다. 그것일 뿐이다. (한나라당 사람들 앞에서 유인태가 자백한바 있다.)

평생 한나라를 찍어 온 사람들을 위해 죽어야 했던 대북정책과 정몽헌

국무회의 전원일치(경상도 허성관만 제외), 청와대 초청 원로 전원일치(대구의 류강하만 제외)는 노무현의 영남표 정벌 의지를 꺾지 못했다. 민주화 세력과 주요 지지기반인 호남의 절대적인 반대 여론을 보기 좋게 비웃으며-실제로 그는 특검 수용 회견을 하며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영남을 향해 뜨겁게 프로포즈 했다. (한겨레 21 기사 제목- 영남을 향항 뜨거운 프로포즈.)

'이쪽에서는 반대하고, 저쪽에서는 찬성하는데, 반 반입니다. 이번에는 특검 법안을 받자는 의견에 손을 들어 주기로 했습니다. '외교의 투명성'을 위해서도 한번은 털고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꼭 그대로는 아니지만 이쯤으로 요약할 수 있는 회견문을 남기고 그는 총총히 자리를 떴다. 난 멍하니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쪽 vs 저쪽?

그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그에게는 민주화를 위한 투쟁의 역사와 목숨을 걸고 지켜낸 숭고한 가치가 그저 '이쪽'과 '저쪽'으로 나뉜 것들 가운데 '한쪽'일 뿐이었다. '영남표'와 '머리수 계산'이외에 그를 지탱하는 가치는 없다는 자백이나 마찬가지였다. '외교의 투명성'이라는 어이없는 핑계를 앞세우면서.(하지만 그의 집권기 내내 이런 허망한 약속은 지켜진 적이 없다. 애초에 가능하지 않다.)

외교도, 대북정책도 그에게는 한낱 경상도 표와 의석 보다 못한 가치를 지닐 뿐이다. 그렇게 시작된 특검은 마침내 대북정책기조를 흔들어 화해와 통일의 미래를 죽였고, 이 땅의 끊어진 허리를 잇는 일에 사리를 희생하며 불철주야하던 정몽헌을 죽였다.(나는 정몽헌 자살사건을 현대사 10대 사건 안에 반드시 꼽는다. 최대의 비극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진중권과 노빠들에게 모욕을 당했을 뿐 애통해 하는 여론조차 형성되지 못했다.)

특검 지속의 요구를 물리치고 검찰로 넘긴 노무현

애초에 특검을 절대 반대하던 민주세력의 일치된 여론은 다시 특검기간 끝날 때를 기해 다시한번 한 목소리로 '이번에는 특검지속'을 요구했다. 특검이 끝까지 사건을 마무리하게 해 달라는 어쩌면 소박하기까지 한 요구였다. 그러나 노무현은 다시한번 이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특검을 끝내고 검찰에게 수사권을 넘겨버렸다.

수사권을 넘겨받은 검찰은 악랄할 정도로 집요하게 정몽헌을 물고 늘어졌고, 결국 정몽헌 현대그룹 이사회 의장은 비운의 생을 자살로 마감하고 말았다. 그의 거룩한 헌신과 봉사에 대해 아무도 눈물을 뿌리지 않는 가운데, 쓸쓸하게 저 세상을 향해 가야 했다.

다른 대그룹 회장들에게는 그리도 너그러운 검찰은 왜 유독 정몽헌 의장에 대해서만 가혹수사를 펼쳤던 것일까? 이 의문에 대한 대답은 아마 '한나라당을 찍어온 사람들을 위해' 정치를 하던 사람들이 알고 있지 않을까? 앞뒤 안맞는 이익치의 증언만을 바탕으로 박지원에게 돈을 건냈다는 자백이 검찰이 요구한 모든것이었다고 기억하고 있다.(대법원 무죄.)

(참고삼아 밝혀 두자면, 당시 수사책임자인 중수부장 안대희는 노무현이 대법관으로 임명해 재직중이다. 수사기획관으로 활약한 문효남은 부산고검장으로 차기 검찰총장 후보군 가운데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의미는 독자들이 각자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이 후 계속 됩니다.

덧붙이는 글 | 블로그(blog.ohmynews.com/zagnbyul)에 동시에 올립니다.



태그:#김대중, #노무현, #유시민, #정몽헌, #특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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