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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근 조각
▲ 봄날 김원근 조각
ⓒ 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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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을 걷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린다. 그곳을 보니 눈길을 끄는 조각이 서 있다. 익살맞은 표정이 어디서 많이 본듯한 이웃 사람 모습이다.

꽃 남방, 금도금 목걸이, 새빨간 구두를 신었으니 나름 멋을 한껏 부린 셈이다. 호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고 옆구리엔 다이어리를 끼고 있다. 불룩한 배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째려 보고 있으니 뭔가 시비를 걸고 싶은 건달로 보이기도 하고, 매혹적인 여성이라도 걸리면 추파라도 보낼 심사가 얼굴에 묻어난다.  표정과 몸짓이 익살맞게 살아있는 작품에 이끌려 지하 계단으로 내려갔다.

또 다른 작품들이 연극 조연배우들처럼 조명을 받고 있었다. 관객은 없었다. 대신 기역자로 꺾인 공간 한쪽에서 인기척을 듣고 건장한 사람이 나오더니 인사를 했다. 덩달아 인사를 나누면서 말을 건넸다.

"작가신가봐요?"
"네."
"아! 반갑습니다."

김원근 조각
▲ 늦여름 김원근 조각
ⓒ 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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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여름, 저녁 출근하고 돌아올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와 어린 딸의 모습이다. 몸은 풍부한 양감을 살려 따뜻하고 푸짐하게 보인다. 약자, 없는자, 억눌린 자, 빼앗긴 자들에 대한 믿음과 희망이 튼실하게 나온 것일게다. 비록 알게 모르게 당하더라도 연연하지 않는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바람보다 빨리 눕고 바람보다 빨리 일어나'리라는 믿음이 있는 탓이다.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사는 사람들이니까. 작가를 늦여름 옆에 세워 사진을 찍었다.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그의 가족들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 

원광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2001년 첫 개인전을 가졌다. 이때 주제는 할아버지 할머니같이 가족을 형상화 했단다. 대리석과 폴리코트 재료를 썼는데 주로 두상 부분을 강조해 표현한 작업들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작품에 질 보다 학력 경력을 따지고, 거대 화상의 입김, 평론과 언론, 마케팅의 영향이 드센 미술계에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선뜻 사고 팔리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생계가 막연했다. 장남으로서 가정 경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노릇이다. 직장을 구했다. 가구점에서 가구를 배달하는 일이다. 거의 막노동 수준이다. 그리고 치킨집도 직접 운영해 보기도 했다.  생계를 해결하기 위한 생활전선에 몰입할 수 밖에 없었다. 5년 작업을 못했다. 그러나 안 한 것이 아니었다. 우물을 파고 물을 찾은 셈이다. 삶에 우물에 두레박을 던져 서민들의 삶과 느낌을 생생하게 길어 올린 두번째 개인전을 열게 되었으니 말이다.

제목을 '선수'로 붙인 조각은 작가와도 많이 닮았다. 두발로 우뚝 선체로 두팔은 늘어 뜨리고 있다. 손에는 권투장갑이 끼워져 있다. 그러나 권투선수라면 훈련으로 단련된 모습일 텐데 목욕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저씨들 몸이다. 어떻게 보면 처연하기도 하고 비장한 느낌도 든다. 공격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쳐들어오면 받아치거나 뚝심으로 버틸 자세다. 어디 칠 테면 쳐보라? 그러나 호락호락 쓰러질 기세는 아니다. 그에겐 본능적으로 보호해야할 가족이 있고 뚝심으로 뭉쳐져 있으니까.

김원근 조각
▲ 선수 김원근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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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에서  빈부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서민들 삶은 더욱 팍팍해지고 있다. 셀러리맨들은 실적과 경쟁으로 생존의 링에서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 이기느냐 쓰러지느냐. 비정한 승부가 그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현실이 그렇다. 죽기 살기로 버텨야 한다. 불합리하고 모순된 사회에 굴하지 않고 맞서려면 불굴에 의지도 필요하다. 그러므로 그는 '선수' 일 수 밖에 없다.

김원근
▲ 길 김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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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모녀가 목도리를 하고 가방을 든 채 어디론가 떠나는 모습이다. 작가는 이 땅에 여성들이 겪는 고단한 삶을 담으려고 했다고 한다. 겨울은 차갑게 내몰린 현실을 무겁고 단촐한 가방과 길은 고단한 여정을 상징하고 있다. 모녀는 이 땅에서 대를 물려가며 여성이라서 겪어야 하는 사회적 불평등과 비인간적 대물림을 조각에 담아 내고 있다. 그것도 서정을 잃지 않으면서..

"영향을 받은 작가가 있다면 누구죠?"

부루델, 로댕, 권진규라고 했다. 아름답게 치장된 겉모습을 떠내는 것이 아니라 슬픔과 고통, 인간의 내면적 영혼과 정신을 담아내는 것이 조각의 역할이라고 느꼈단다. 김원근의 조각은 서민들의 일상적인 모습에 담긴 삶의 기분을 단순하고 절제된 덩어리로 주무르고 있다. 슬픔덩어리, 분노덩어리, 연정덩어리... 같다.

김원근 조각
▲ 하루 김원근 조각
ⓒ 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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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작업으로 채색은 낡고 남루하면서 자연에 가까운 질감을 살리고 있다. 마치 연극 무대에서 조명을 받으며 자기 역할을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는 조연 배우들 같기도 하다. 그래서 회화 같기도 하고 일러스트 같은 느낌이 드는 조각이기도 하다. 그만큼 삶을 솔직하고 야멸차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감정을 서사적으로 닮고 있다는 뜻이다.

작가 근성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전시기간중에도 미술관 한쪽 모퉁이 작업대에서 다음 전시를 위한 작업 스케치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떠오른 것이었을까. 팸플릿 봉투 뒤면에 그리고 있었다. 오히려 스케치북에 그리는 그림보다 순발력과 현실감이 높아 보였다.

김원근 작가 스케치
▲ 밑그림 김원근 작가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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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장전시중이다. 관훈동 수도약국 지하에 '코사스페이스'라고 있다. 6월 8일까지다.

덧붙이는 글 | moovi.net 에도 실렸습니다. 갤러리 코사스페이스(KOSA space) 02-720-9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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