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길목에서 정신없이 너무 졸리는 나날이 지속되고 있다. 어제는 졸리다 못해 아무 담벼락에 차를 세워놓고 졸았다. 졸았는지 정신을 잃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외근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연구실에 가서 다시 15분간 정신을 놓았다. 퇴근하자 마자 집에서도 일단은 누웠다. 그리고 잠들었다. 그리고 30분 후 깨어났다.

 

오늘도 상황은 비슷하다. 강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오기 전에 주차장에서 20분 동안 졸았다. 몇 년 전 다른 도시의 대학교의 대학원을 만학으로 다닐때 빨리 가면 2시간 30분 늦게 가면 3시간 걸리는 거리를 운전한 적이 있다. 올라 갈때는 중간에 1번 쯤 휴게소에서 졸고 갔다. 그래서 11시 30분이나 12시에 강의를 부랴 부랴 끝내고 올라가면 중간에 조느라 항상 2시 30분에 시작하는 첫 강의에 지각하곤 했다.

 

대학원 강의는 7시 무렵에 끝났다. 끝나고 동료와 밥을 먹고 오거나 안 먹고 오거나 내려올때는 3시간 거리에서 무려 평균 3-5번을 휴게소에서 쉬어야 했다. 왜냐하면 눈치코치 온 신경을 교수들의 입모양에 집중해서 대학원강의를 소화시켜야 했으니까 말이다. 거의 신경소진상태였던 모양이다.

 

부모님 살아계신 슬하에서도 이렇게 졸렸던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가면서 몇 달 안가서 이상하게 코피가 날마다 터져나왔다. 그리고 얼마 안가서 두 시간 단위로 졸음이 쏟아졌다.

 

"엄마! 왜 이렇게 졸리지요?"

"너는 원래 신경장애라서 그래! 그러니 그냥 책보지 말고 밥먹고 자! 학교에선 쉬는 시간에 무조건 엎드려서 눈 감아!" 

 

학교 갔다와서 엄마한테 질문을 하니 엄마가 그냥 그렇게 말해주었다.

 

그리고 다시 몇 달 지나 엄마와 아버지는 내가 도보로 5분만 걸어서 학교로 갈 수 있게 이사를 했다. 집이 가깝다 보니 왕복 이동시간에 잠을 더 잘 수 있었고 학교생활이 왕따되고 감성적으로 고통스러웠지만 신체상으로는 그냥 버틸만 했다. 

 

인문계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버스를 타고 통학을 하면서 다시 코피가 터져나오고 핼쓱해지기 시작했다. 엄마와 아버지는 다시 학교 바로 앞에 이사를 했다. 걸어서 정확히 2분거리였을 정도로 가까웠다. 

 

부모 아래 있을때는 그렇게 내가 졸리거나 코피를 흘리면 부모님이 우산처럼 되어서 모든 것을 내 중심으로 생활을 맞춰주셨다. 개인서화실을 운영할 때는 한 구석에 재래식 마루방을 만들어 시도 때도 없는 이러한 졸음이 쏟아질 때 유용하게 이용했다. 내 졸음의 시간은 평균 15∼25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 수면시간이 다른 사람보다 긴 것은 아니다. 긴 잠을 자지는 않는 것이다. 

 

긴 잠을 자고 낮에 졸음을 벗하지 않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세상이지만, 나는 자다가 두 세시간만에 깨어난다. 왜 깨는지는 잘 모른다. 아마 그래서 재활원이나 시설에 사는 신경장애인들에 약을 복용시키는 것일까?

 

졸음만은 병원과 약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오래 깨어 있는 어떤 때는 책 한 권을 독파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다큐를 보기도 하고, 누군가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때는 별을 보면서 울기도 하고....그렇게 모두들 깊이 잠들 때 나는 생생이 깨어 살아있는 시간들이 소중하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 옛날처럼 코피는 터지지 않지만 다른 곳에 이상징후가 많이 생긴다. 그러나 나의 보호자는 나 스스로이기에 그 이상징후에 알아서 대처한다. 이 병원 저 병원을 주기적으로 가서 나름대로 열심히 관리하지만 졸음만은 병원과 약으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나의 졸음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말하길 춘곤증이라던가 또는 노화현상이라고 말하고 언니는 사상체질에 안맞는 음식이야기를 한다.

 

그러니 나는 이제 주변사람들에게 쏟아지는 졸음에 대해서 말할 수가 없다. 그래서 가끔 오해도 받는다. 2시간 이상이 걸리는 회식이나 여러 날 걸리는 연수에 참석할 때면 나는 중간에 사라지기 때문이다.

 

상근하는 직장에서는 두 세시간 일하고 주차장 차안에서 15분 자거나 1시간 일하고 빈교실이나 계단참에 기대서 5분간 눈감고 쉬거나 하며 나름대로 요령껏 일한다. 집에서 티비를 보다가 졸때는 아이들은 나를 향해 웃으며 놀린다.

 

"엄마 그렇게 우리 눈치 보며 앉아서 애쓰지 말고 안방 가서 지긋이 눈 붙이는 게 좋겠어!"

 

어릴 때는 엄마의 배려를 받던 아이가 나이가 드니 이제는 딸의 배려를 받는다. 그렇게 배려를 받으니 떠 오르는 상상이 있다. 옛날 외할머니가 우리집에 오래 머무실때 툇마루에서 꾸벅꾸벅 졸으시면 나는 졸랑 졸랑 달려가서 베개를 갖다 드렸다. 

 

날마다 열심히 조는 여자로 이렇게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딸의 아이들이 그렇게 내게 쿠션을 갖다주는 상상이 그다지 싫지가 않다. 밤에 쳐다보는 어제의 별과 다름없고 지는 석양도 사춘기 때 젖은 눈으로 바라보던 석양빛과 크게 다를 바 없는데  집중하는 시간은 짧아지고 졸음은 점점 많아진다. 사람들은 세월이 간다고 하지만 세월이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엄마를 따라서  열심히 걸어가다가 이제는 딸의 앞에서 부지런히 걸어가고 있다.


태그:#졸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삶과의 소통 그리고 숨 고르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