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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는 지나가는 자들이다. 물론 그 여행자들은 천양천색 만양만색의 개성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 풍경을 읽는 방식도 그만큼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여행자와 여행지의 거리가 가까워지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여행자들이 쓴 현지 여행서는 한없이 가벼울 수밖에 없다. 물론 상처가 깊은 사람은 그 풍경에 깊숙이 파고들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더 좋은 여행기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사적인 감정을 대상에 너무 몰입시키면 독자와 여행지와의 거리는 오히려 더 멀어질 뿐만 아니라 너무 주관적으로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한성호의 '몽골 바람에서 길을 찾다'를 읽었다. 바깥세상 10년을 했는데, 7년 전부터는 고비사막에 꽂혀 몽골에 정착해버린 사람이다. 따라서 작가에게 몽골은 여행지의 선을 넘어서는 제2의 고향 같은 곳이다. 이런 작가들에게 여행지는 여행지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데 그 역시 마찬가지다. 거기에 그는 몽골인 아내를 얻고, 딸도 낳았다. 책 내내 길을 열망하는 자신과 삐걱이는 가족을 말하지만 그의 핏속에는 이미 지울 수 없는 몽골의 인자들이 들어간 것 같다.

 

이런 깊은 이해는 그의 책이 단순한 여행서를 넘어서 문학의 경계까지 넘어왔다는 인상을 준다. 그 깊이는 단순히 오래 살아서가 아니라 깊은 사랑으로 몽골을 알아가려는 작가의 치열한 노력의 결과 같다. 나 역시 중국에 속해 있는 네이멍구를 적지 않게 여행했기에 몽골의 풍습이나 문화를 조금 접했지만 그가 책 속에서 풀어내는 몽골 이야기는 결코 지나가는 여행자들이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다양하게 소개되는 몽골의 이야기, 풍습, 생활 습관 등은 작가가 얼마나 치열하게 몽골을 알았는지를 느끼게 한다.

 

책의 구성은 조금 난삽한 것 같지만 구성물들의 하나하나가 밀도가 있기 때문에 그런 단점을 극복하고도 남는다.

 

책은 흡스골, 고비사막, 항가이 산맥 등 세 곳의 여행기다. 공중에 뜬 신의 호수라는 흡수골은 울란바토르에서 1004킬로미터 거리에 있다. 이 길은 자동차로 다녀선지 그다지 깊은 맛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이 글보다는 글의 후미에 있는 '나는 그런 유목민을 본 적이 없다'라는 단상글이 재미있다. 그는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목민들에 대한 인상을 정리한 후 자신의 견해를 담는데, 상식적인 수준이지만 공감할 부분도 많다.

 

흡스골 여행기보다는 첫 자전거 여행으로 떠난 고비사막 여행기는 좋은 글이다. 중간 중간 체크한 글 가운데는 좋은 문장이 많다. "솔개의 정지 비행은 전생의 기억을 간직한 연의 혼이 하늘에 떠 있는 모습인지도 모른다. 어젯밤 그토록 참혹했던 바람 속에서도 솔개는 유유히 날고 있었을까?"(104페이지)나 "그(식물학자)는 몽골에 있는 식물들은 자기 몸에 비해 뿌리가 깊고 넓은데 그 이유는 긴 겨울을 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긴 겨울을 나기 위해서 몽골 초원의 식물들은 여름이 저물어갈 무렵이면 서둘러 녹색을 털어내고 빛으로부터 얻은 양분을 뿌리 깊숙이 저장한다는 것이다. 사람 또한 보이지 않는 몸속에 깊은 마음의 뿌리를 내리고 살아간다는 걸 나는 그때 알았다"(116페이지) 등의 문장은 공감이 갔다.

 

작가는 수년전부터 울란바토르 대학에서 한국관광을 강의한다고 한다. 그가 몽골에서 느끼는 한국은 한국을 경유한 노동자들의 인상 등을 통해서다. 예외도 있지만 아마도 많은 이들이 한국에 가서 고생하고 모멸 받았던 것을 기억하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그가 130페이지부터 풀어내는 독수리에 관한 글은 인상적이다. 그는 몽골에서 사체를 먹다가 그마저 얼면 한반도로 가는 독수리들의 몰살에 주목해서 한 문장을 쓴다.

 

"1997년과 98년에는 농약 친 볍씨를 먹고 떼죽음 당한 오리들을 다시 독수리들이 우르르 몰려와 먹고 죽었다... 전 세계에서 멸종 중인 독수리는 우리나라까지 날아와 이처럼 허무하게 죽는다. 겨울에 몽골 들판에서 독수리들은 굶주림과 추위 때문에 죽고 한반도 땅에선 인간들 때문에 죽는다. 몽골의 가난을 벗어나고자 한국행을 택한 가난한 몽골인들이 버티고 버티다가 다시 몽골 땅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끝내 죽지 않고 살아남은 독수리들은 봄에 다시 몽골 땅을 향해 날아간다.(131페이지)"

 

그는 어떻든 정주하지 못하는 역마살이 있는 게 틀림없다. 때문에 "나는 살기 위해 길을 떠나야 했다. 남들이 살기 위해 머무는 것과는 조금은 다른 인생길이었다. 그런 나를 두고 세상은 방랑이라 하였으며 방황이라고 하였다. 나는 길을 보낼 때마다 삶의 버거움을 오롯이 홀로 겪어내야 했다. 그것은 무척이나 괴로웠고 힘든 일이었다. 같은 길 위에서 같은 배낭을 멨건만 나는 길 위에서조차 그들과 다른 길을 택해야 했다"(에필로그에서)고 술회한다. 어떻든 나처럼 어쭙잖은 여행 기록자들을 넘는 깊은 내공을 가졌다.

 

사실 나 역시 이곳저곳에서 '노마디즘'을 흘리고 다니지만 아직은 그 깊이를 잘 모른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한성호는 노마디즘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길을 열망하지만 그에게는 성격차로 갈등하는 아내가 있고, 항상 그리워하는 딸이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진정한 노마드인지 모른다.

 

고로 자신이 역마살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 안될 일이다. 아마도 이 책을 읽는 순간 길을 떠나고 자신도 남미나 아프리카의 한 땅에 필이 꽂힐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몽골 바람에서 길을 찾다

한성호 지음, 멘토프레스(2009)


태그:#한성호, #몽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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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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