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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탄현면의 '이주단지'라는 주거지의 이름은 바로 옆 동네에서 옮겨 앉아 새롭게 마을을 이룬데서 비롯된 이름입니다. 1991년부터 통일동산 개발촉진지구로 지정되어 어쩔 수 없이 토지개발공사의 뜻에 따라 원래의 집을 내어주고 받은 보상금으로 그 옆에 새로운 마을을 이룬 것입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의 기억이 있는 원래 삶의 터를 내준 쓰린 기억을 자꾸 들추는 듯한 이주단지라는 명칭을 계속 사용하는 것이 의아스럽습니다. 헤이리를 거쳐가는 200번 버스들도  '이주단지-영어마을-출판도시-교하택지지구'등 도대체 정이 가지 않는 마을이름들을 달고 서울과 파주를 고가고 있습니다.

 

이 이주단지는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라는 행정명외에도 약산골이라는 아름다운 본래 이름이 있습니다. 이 약산골의 검단산 아랫자락은 다시 빌딩이 지어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누리던 한적한 전원의 맛은 점점 키를 키우고 있는 콘도 빌딩들이 완전히 스카이라인을 바꾸어 버릴 것입니다.

 

 

하지만 그 약산골 아래의 갯마을 들판에서는 5월 6일 올해도 첫모내기를 했습니다. 통일동산지역의 1080세대의 유승앙부와즈아파트의 주민이나 이 이주단지의 주민들도 대부분 서울이나 일산에서 생업을 구하는 베드타운인 셈이지만 아직 농사를 생업으로 삼는 원주민들이 있습니다.

 

동네 이장을 중심으로 영농조합을 만들어 농지를 통합하고 농기계를 사들여 지평선 대신 일산의 아파트 빌딩 스카이라인을 보면서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한강과 맞닿은 곡릉천 하류에서 인조와 인열왕후의 합장릉인 장릉자락까지 펼쳐진 이 갯마을 들판이 언제까지 농지로 남아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개발업자들이 갖은 노력과 수단으로 농지를 택지로 바꾸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기때문입니다. 양쪽에서 협공해오는 이 콘크리트 빌딩의 위협에 맞서 올해도 이앙기가 바쁘게 모를 내고 있습니다.

 

 

올해의 첫 모내기는 저녁 어스름이 내리는 시간까지 계속되었고 덩달아 농부들의 발걸음도 부산해졌습니다. 자신의 논에 벼가 심어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주인도 기대에 부풀고, 물고를 손질하기 위해 자전거 페달을 밟는 사람도 다리에 힘이 들어갑니다. 모판을 나르고 경운기에 부인을 태우고 마을로 향하는 농부 부부와 밑거름을 마치고 귀가하는 아주머니의 모습을 올해도 볼 수 있음이 퍽 다행입니다.

 

 

물을 가득 담고 있는 논의 경관이 한 폭의 그림입니다. 이 약산골 아래 갯마을 들판은 논두렁을 바쁘게 오가셨던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기억이며, 할머니의 등에 업혀 새참을 나르는 어머니를 뒤따랐던 우리 유년의 기억입니다.

 

 

이 농지가 택지로 바뀌는 때는 단지 하나의 서정적인 경관이 우리 눈에서 사라지는 것뿐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과거의 기억들이 그 실마리를 잃어버리는 일입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에도 포스팅됩니다.


태그:#모내기, #갯마을, #약산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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