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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누구는 사서 고생하더라'라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자신이 꼭 해야 하는 일인 줄 모르고 나서는, 분별력이 부족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겠지요. 하지만, '사서 고생'도 남에게 배려하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선물 얘기를 하려니까, 5년 전 부산에 살면서 겪었던 에피소드가 생각나는데요. 당시 아내는 남편에게 선물하고서도 이듬해까지 사서 고생한다는 얘기를 들었고, 저는 아내에게 선물을 받고도 고생했던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좋아졌지만, 아내는 못된 버릇이 하나 있었는데요. 외출을 하면 들어올 때까지 전화를 안 하는 버릇입니다. 은행에 갔다가 늦도록 소식이 없어 다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하루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아침을 먹고는 허겁지겁 나가더니 얼마 되지 않아 전화를 해왔습니다.

 

"여기 엘지마켓인데요. 자기 생일선물로 신형 캠코더를 할부로 구입했어요. 지금 가지고 갈 테니까 기다리세요···."

 

아내 목소리는 약간 흥분돼 있었고, 기대하라는 뉘앙스가 풍겼습니다. 생일이 한 달도 넘게 남았고, 살림도 어려운데 고가의 선물을 할부로 사들이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과한 것 같았습니다. 기쁘기보다는 마음이 불편했으니까요.

 

전화를 끊고 처음에는 황당했지만, 곰곰이 생각하니까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생각했으면 그런 비싼 선물을···"하는 생각과 함께 볼품없는 남편 생일을 잊지 않고 챙겨주는 정성이 한편 고맙기도 했습니다. 

 

아내 지갑이 얇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캠코더를 갖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없고, 필요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생일선물이라니, 캠코더에 대한 신문기사를 관심 있게 읽는 제 모습을 보고 오버를 한 모양이었습니다.

 

20년도 더 된 13평 아파트에서 그것도 전세로 살면서 남편의 생일선물로 1백만 원이 넘는 캠코더를 할부로 구입하다니, 여간한 배짱이 아니면 행하기 어려운 일을 저지른 아내를 꾸짖을 수만도 없었습니다.

 

'해외관광'가자고 해도 싫다던 아내

 

결혼하던 해에 저 혼자서 15일 일정으로 대만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80년대 초라서 시국이 시끌시끌했고, 서류심사가 까다로워 '해외관광'이란 말조차 생소하게 들리던 시절이었지요. 관광비자 발급은 특권층이나 가능했으니까요. 

 

서민들은 외국여행을 꿈도 못 꾸던 시절에 혼자서 다녀오니까 아내에게 미안하더군요. 해서 언젠가는 부부동반으로 다녀와야겠다고 마음먹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마음의 빚을 갚는 방법은 그 길밖에 없었으니까요.

 

결혼기념일이나 아내 생일에는 작은 거라도 잊지 않고 정성을 표시해왔습니다. 결혼기념일은 2월에, 아내 생일은 10월에 들어 있거든요. 그런데 결혼 20주년이 되는 해에는 이사하느라 정신이 없어 그냥 지나갔습니다.

 

해서 아내 생일에는 무슨 선물을 해야 좋을지 몇 달을 고민하다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일본에 다녀오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부산항을 출발, 대마도를 거쳐 일본 시모노세키 항을 다녀오는 무박 2일 배낭여행코스가 당시 금액으로 10만 원 남짓이면 되겠더라고요.

 

마음을 정하고 아내에게 일본관광 스케줄을 설명해주었습니다. 기뻐할 줄 알았지요. 그런데 아내는 무슨 맘을 먹었는지 다음에 가자고 하더군요. 좋은 선물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는데 다음으로 미루자는 아내가 그렇게 야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앉아서 고생' 시작

 

캠코더를 들고 들어온 아내에게 감사의 표시는커녕, 10%-20% 정도 손해를 보더라도 물리는 방법을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무척 서운해 하더군요. 언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고, 결국에는 고맙다는 말을 건네면서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캠코더를 사온 날부터 며칠 비가 내렸는데요. 싫다고 해놓고도 비가 내리니까 캠코더를 들고 밖으로 나가고 싶은 충동이 일더라고요. '조석(朝夕)으로 변하는 게 사람 마음'이라는 옛말이 떠올라 쓴웃음이 나왔습니다.

 

 

며칠 내리던 비가 멎기에 캠코더 가방을 챙겨들고 거리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30년 가까이 순간을 포착하는 카메라에 익숙해져 있던 눈과 손으로 움직이는 물체를 파인더에 담는다는 게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밝히기 창피하지만, 80년대 초부터 한국사진작가협회(사) 회원으로 활동할 정도로 사진에 취미가 있었거든요. 

 

무거운 수동카메라에 익숙해 있던 손에 작고 가벼운 캠코더가 쥐어지니까, 무거운 연장으로만 일하다 갑자기 작은 핀셋을 들면 손이 떨리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 발이 아프도록 돌아다니며 포커스만 맞추다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앉아서 고생이 따로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왕에 시작했으니까 추억에 남는 영상을 하나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캠코더 작업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했습니다. 편집하는 방법도 모르면서 마음만 앞섰던 것이지요. 아내에게 받은 생일선물은 날이 갈수록 고민 덩어리이자 애물단지가 되어 갔습니다.

 

알파벳이 깨알처럼 적힌 사용설명서를 일일이 해석할 수가 없으니 편집은 물론, 사용 방법이 서투를 수밖에요. 그렇다고 아내가 사준 선물을 내팽개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문명의 혜택을 받은 취미생활이 아니라 고역이었습니다.

 

그래도 아내는 매달 할부금을 부어나갔고, 저는 손에 익숙하지 않은 캠코더와 보기만 해도 멀미가 일어날 것 같은 사용설명서와 씨름을 해야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내는 할부금을 넣느라 1년 가까이 사서 고생했고, 저는 앉아서 고생했던 것이지요. 

 

시간만 있으면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가던 제가 집에만 있는 게 안타까워 비용을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캠코더를 사왔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생각해주는 아내 마음은 고맙기 이를 데 없지요. 하지만, 캠코더는 결국 두통거리가 되었고, 그해 겨울에는 대학생이던 딸에게 넘겨졌습니다.

 

당시 제게 필요했던 것은 캠코더가 아니라 디지털 카메라와 스캐너였는데 말도 못하고 있었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그때 디지털 카메라와 스캐너가 필요하다고 할 것을 그랬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내와 제가 사서 고생도, 앉아서 고생도 안 했을 것이니까요.

덧붙이는 글 | <잊을 수 없는 선물> 응모글


태그:#아내, #생일선물, #캠코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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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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