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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일찍 현관의 벨이 울렸습니다.

"오늘은 매우 일찍 왔습니다. 책입니다."

 

평소 저희 집을 드나드신 부드러운 택배아저씨는 경쾌한 톤의 말씀과 함께 커다란 박스를 제게 내밀었습니다.  저는 그 책을 보낸 분이 누구일 지를 송장을 보지 않아도 금방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가족과 함께 모티프원을 다녀가시고 나면 꼭 한통의 편지와 함께 우리가족의 처지를 고려한 책을 골라 보내주시곤 하셨습니다. 그분은 바로 대전의 윤성중선생님입니다.

 

윤 선생님 가족은 7번이나 모티프원을 다녀가시면서 저희 가족 모두와도 모두 막역한 사이가 되어 모든 것을 터놓고 지내는 사이가 되었고, 특히 윤 선생님 부부의 외아들 석진이는 저의 아들 영대와 정이 들어 형제의 정을 나누고 있습니다. 영대가 애지중지하는 모티프원의 트라이콜리 헤모와도 뗄 수 없는 사이이지요.

 

 

이번에는 보내주신 택배박스는 예전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습니다. 박스를 열자 무려 11권의 책이 담겨있었습니다. 영문 소설과 한국어 소설, 동화와 철학, 예술과 인문학 책까지 독자층과 책의 장르도 모두가 달랐습니다.

 

윤 선생님께서 이번에는 우리 가족뿐만아니라 모티프원을 드나드는 다양한 사람들을 고려한 배려임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많은 책을 이 시점에 보낸 그 연유에 대해서는 어림도 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책갈피 속에 끼워져 오던 윤 선생님의 편지도 동봉되지 않았습니다.

 

그 사유는 차치하고 저는 우선 그 책들을 통독하는 일에 하루를 보냈습니다. 이날 늦은 저녁 저는 모티프원의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게시판에 윤 선생님께서 남긴 사연을 읽고서야 그 책이 보내진 사연을 알았습니다.

 

모티프원에서의 하룻밤 예약입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대전의 윤성중입니다.

 

오랜만에 저희 가족 소식을 전합니다.

낯선 동네, 낯선 학교, 낯선 친구를 맞이하느라 지친 마음과 낯선 체력훈련으로 지친 몸의 석진이는 잠시 장염으로 입원을 하기도 하였지만, 오늘도 신나게 자신의 꿈을 향해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축구부원끼리의 우스갯소리로 얼굴검기가 실력을 판단한다는데, 석진이의 하얀 피부가 증명하듯 아직은 후보 선수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올 여름이 지나면 검게 그을린 만큼 실력도 자라겠지요. 

 

이제 겨우 한 달을 조금 넘긴 축구부 생활이지만, 방과 후엔 2~3시간씩 계속되는 축구연습(경우에 따라서 야간 연습도 있습니다)과 주말에 어김없이 치러야 하는 다른 축구팀과의 친선경기로 개인시간이 많이 없어진 석진이의 유일한 불만은, 힘들어서가 아니라 영대 형을 만나 수다를 떨 시간이, 헤모를 껴안고 헤이리를 누빌 시간이 줄었다는 것입니다.

 

'병명도 없이 까닭 없이 아플 땐 고향땅 흙을 밟아 보라'는 선생님의 글처럼, 검고 딱딱한 아스팔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석진이에게는 이미 또 하나의 고향으로 자리 잡은 모티프원에서의 시간이 늘 그립겠지요. 그 그리움은 석진이만의 것이 아니라 이미 저희 가족 모두의 그리움이 된지 오래입니다.

 

그리움의 마음을 조금 덜고자 오늘 하룻밤의 숙박을 예약합니다.

 

(추신 : 오늘 하루도 현실을 핑계로 몸은 대전에 있을 예정입니다. 대신 하룻밤 숙박비만큼의 책을 구입하여 헤이리의 모티프원으로 보냅니다.)

 

저는 윤 선생님의 글을 다 읽기도 전에 심장박동 소리가 서너 배는 커졌습니다.

 

윤 선생님 가족이 모티프원을 고향으로 여기고, 그 고향땅을 밟고 싶은 마음에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 몸이 오는 대신 책을 보낸 것입니다. 저는 모티프원 하룻밤 체류비를 책으로 받고 윤선생님 가족의 간절한 마음을 재운 것입니다.

 

모티프원이 누군가의 가슴에 고향으로 남았다는 기쁨 외에도 윤 선생님의 깊은 배려와 마음씀은 저를 감동으로 잠 못 이루게 했습니다. 저는 이날 밤 윤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책을 넘겨보면서 윤 선생님 가족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밤을 보냈습니다.

 

윤 선생님은 제게 11권의 책을 보낸 것이 아니라 땅과 하늘을 다 채우고도 남을 기쁨과 행복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홈페이지 www.motif1.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태그:#윤성중, #모티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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