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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은 무죄지만 일본 제국주의는 유죄
 
바야흐로 만화방창한 꽃 시절이다. 벚꽃도 꽃 잔치에 빠질 수 없는지 앞다투어 피었다. 시방 이 나라 곳곳엔 흐드러지게 피어난 벚꽃을 즐기려는 벚꽃놀이가 한창이다.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에서 쌍계사까지 이어지는  화개10리 벚꽃길은 벌써 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아마도 국내에서 가장 긴 벚꽃 길로 유명한  전주 - 군산 간 100리 벚꽃 길은 지금쯤 절정을 맞고 있을 것이다. 이 전군도로는 1907년 일제가 김제 · 만경 · 옥구 평야의 쌀을 수탈하기 위해 만든 도로다. 길이 46.7km, 폭 7m인 이 도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2차선 도로라는 슬픈 기록을 지니고 있다.

 

봄이면 이 도로를 따라서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그리고 벚꽃의 흥취를 즐기려는 꽃놀이 인파로 북새통을 이룬다. 어찌나 많은 사람이 경향 각지에서 몰려드는지 군산 사람들끼리 모이면 이런 우스갯소리를 나누기도 한다. 횟감이 떨어져서 동태 포를 떠다 줬더니 그것도 횐 줄 알고 맛있게 먹더라는…. 

 

화창한 봄날에 모처럼 가족들과 함께 나들이 나가 벚꽃놀이를 즐기는 것을 마냥 나쁘다고만 할 순 없다. 그러나 벚꽃에서 '사쿠라'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일제하 피땀 흘려 지은 쌀을 강제로 수탈당하던 농민들의 울분에 한 삶을 기억하는 건 역사의 영속성을 믿고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자의 의무가 아닐는지. 과거를 쉽게 망각하는 백성은 치욕의 역사를 되풀이한다는 게 우리가 역사에서 얻는 교훈이 아니던가. 혹 되바라진 식민지 근대화론자들께선 이 벚꽃놀이마저 일제 덕택에 누리는 혜택이라고 말할는지 모르지만 말이다.  

 

물론 지금처럼 냉철한 시대에 비분강개는 유통기한이 지난 덕목이라는 걸 알고 있다. 게다가 나 역시 벚꽃의 아름다움을 싫어하는 편은 아니다. 나라고 해서 유독 다른 사람과 다른 심미안을 가진 건 아니니까(물론 벚꽃을 구경하려고 멀리까지 나들이 나가는 일은 없다). 또 한낱 식물인 꽃에다 거창한 이데올로기를 투영하려는 것도 아니다. 꽃은 무죄지만 일본 제국주의는 유죄라는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거다. 

 

세상의 온갖 아름다움을 찾아내 시로써 노래하는 시인들의 시선도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 것 같다. 벚꽃 혹은 벚꽃 놀이에 유감을 표시하는 시인도 있고, 그것을 살짝 눈 감아주고 정서적 측면에서만 접근하려는 시인도 있다.  안도현 시인의 시 '벚나무는 건달같이'는 후자에 속하는 시다. 

 

군산 가는 길에 벚꽃이 피었네

벚나무는 술에 취해 건달같이 걸어가네

 

꽃 핀 자리는 비명이지만

꽃 진 자리는 화농인 것인데

 

어느 여자 가슴에 또 못을 박으려고….

 

돈 떨어진 건달같이

봄날은 가네

         -  안도현 시 '벚나무는 건달같이' 전문 

 

 안도현 시인은 따로 설명이 구차할 정도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시인이다.  196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난 그는 이리 원광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졸업 후에는 전북 이리중학교 등에서 국어교사로 교편생활을 시작한 그는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되는 등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현재는 우석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의 시에는 군산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아무래도 대학 졸업 후 주 활동지역이 이리를 비롯한 전북지역이다 보니 그럴 것이다. 이 '벚나무는 건달같이' 를 비롯해 '병어회와 깻잎', '금강 하구에서', '숭어회 한 접시' 등 많은 시편이 있다.  

 

건달(乾達)은 건달바의 준말

 

시인은 봄날은 가는 것을 "돈 떨어진 건달같이" 간다고 했다. 그렇다면 건달이 도대체 무어냔 얘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달이라는 말을 하는 일 없이 건들거리며 노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건달이란 본래 그런 뜻이 아니다. 건달이란 말은 불교 용어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인도 신화에서 건달바는 술과 고기를 먹지 않고 오직 향(香)만을 구하여 몸을 보호하는 하늘의 가신(家臣)이었다. 그러나 이 건달바는 불교 성립과 함께 팔부중의 하나로 포섭되어  부처님이 설법할 때마다 나타나 정법을 찬탄하고 불법을 수호하는 존재로 변신한다.

 

<묘법 연화경> '서품'엔 부처가 왕사성의 영산도량에서 설법할 때 사부대중과 더불어 악(樂) 건달바 · 악음(樂音) 건달바 · 미(美) 건달바 · 미음(美音) 건달바 등 네 명의 건달바왕이 참석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서양으로 따지면 그리스 신화 속 음악의 신인 뮤즈(Muse)에 해당하는 셈이다. 또 사람이 죽어서 새로운 육체를 받기 전의 존재인 영혼신 즉 중음신(中陰身)도 건달바라고 부른다. 

 

이러한 건달바가 민간에 내려와서 차츰 건달이란 말로 변이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건달바가 향기를 음식으로 삼아 음악을 즐기는 데서 연유하여, 일하지 않고 놀고먹기를 즐기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된 것이다. 불교용어 사전에는 "건달(乾達)은 건달바의 준말이다"라고 돼 있다.

 

시인 유하는 어디선가 "詩가 나를 건달로 만들었다"라고 쓴 적이 있다. 이 말은 아마도 시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반어법적으로 표현한 말일 것이다. 이러한 건달의 의미는 완전히 퇴색하고 지금은 그저 '건달'은 깡패를 일컫는 말이 돼버렸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우린 너나 없이 건달이다

 

안도현 시인은 군산 가는 길에 꽃 핀 벚나무를 보고 술 취한 건달이 걸어가는 것으로 착각한다.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라더니 시는 단숨에 몇 단계의 진술을 건너뛰어 건달의 가슴속 감정 탐구에 돌입한다. "꽃 핀 자리는 비명이지만 / 꽃 진 자리는 화농"이라고 말하면서 꽃이 진 후를 걱정하는 것이다.

 

화농이란 "외상을 입은 피부나 각종 장기에 고름이 생기는 일"을 말한다. 꽃 피었을 때 누린 감정의 사치가 꽃이 진 후에는 행여 곪아서 상처가 될까 염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이 진정 염려하는 것은 벚꽃 혹은 건달의 사후가 아니다. "어느 여자 가슴에 또 못을 박"을까 봐 그것이 걱정인 게다. "돈 떨어진 건달같이 (터덜터덜) / 봄날은 가"는데 이 노릇을 어이할꼬. 

 

언필칭 시인이란 존재는 오지랖이 넓은 존재다. 신이 이 세상 사람들을 다 챙겨주지 못해 어머니라는 존재를 대신 보내고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시인이란 존재를 만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돈 떨어진 건달같이 봄날이 가고 나면 "술에 취해 건달같이 걸어" 가는 저 벚꽃은 어찌 살까 걱정하는, 저 태평양보다 너른 시인의 오지랖을 보라.   

 

아무렴 시인이 할 일 없이 벚나무의 일을 걱정했겠는가. 분명 벚나무 건달이란 벚꽃놀이에 취한 우리들에 대한 환유(換喩)일 터. 시인은 그 환유에 의지해 벚꽃에 취한 군상들인 우리에게 "벚꽃 지고나면 어떻게 이 봄날을 견딜 것인가?"라고 묻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이여, 걱정이랑 꽉 붙들어 매시라. '너'나 잘 하시라니깐. 세상 어느 건달이 돈 떨어졌다고 해서 자살하는 거 보았는가. 세상 사는 데 있어 우린 너나 없이 건달이다. 우린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다. 지난해 봄에도 그랬듯이 끈질기게, 악착같이 살아갈지니.


태그:#봄날 , # 벚나무 , #건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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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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