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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이 깊다. 끝없는 늪이다. 밑천 들여 사업을 하거나 장사를 하는 사람은 오죽하랴. 매기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사는 게 힘들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월급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지갑이 얄팍해졌다. 선뜻 과일 한 소쿠리 사지 못한다. 맘먹고 고기 끊는 일은 더욱 힘들다. 자연 동문회 동창모임마저도 구실거리를 찾게 된다.   

 

그런데도 지금 대한민국은 리스트 공화국이다. 자그마치 50억 원이 인사 사례금이란다. 통이 크다. 그래서 불똥이 튀었다. 검찰은 조만간 여야 중진급 정치인들을 소환조사한단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마는 이번에도 떡고물이 단단히 먹혀들었는가 보다. 도덕 불감증이 심한 만큼 치도곤도 달게 받아야지. 

 

대한민국은 리스트공화국

 

화톳불이 단단히 붙었는데도 이래저래 힘이 빠진다. '백' 없는 말단 공무원은 단 백만 원에도 오랏줄에 꽁꽁 묶이는 세상인데, 하기야 먹어본 사람이 체하지 않고 더 잘 먹는다. 박연차-천신일 유착관계는 어디까지 갈까. '형님' 손을 덥석 잡은 중진의원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곱지 않은 일들에 눈이 시리다.

 

 

<프레시안>과 <한겨레>에 따르면, 강희락 청장은 지난달 30일 '경찰 기강 확립, 비리 척결 대책'을 발표한 뒤 기자 간담회 자리에서 '청와대 행정관 성 접대 의혹 사건'의 수사 진행 상황을 묻는 질문이 나오자 그는 "성매매 문제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난감해 기자들에게 조언이라도 구하고 싶다, 여기서도 노총각 기자들 조심해야지 재수 없으면 걸린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체 이게 무슨 얘긴가. 성매매는 재수가 없으면 걸린다고? 그러면 재수 있는 사람은 늘 그 짓을 해도 걸리지 않는다는 얘긴가. 단순한 가십거리가 아니다. 아무리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지만, 아둔한 머리로는 이해가 안 돼 머리만 아파온다.

 

그러고도 그는 이어 "나도 공보관 하면서 접대 많이 했다"며 "공보관 끝나고 미국 연수 준비하면서 기자들이 세게 한 번 사라고 해서 기자들 데리고 2차를 갔는데, 모텔에서 기자들에게 열쇠를 나눠주면서 '내가 참, 이 나이에 이런 거 하게 생겼나' 별 생각이 다 들더라"고 밝혔다고 한다.

 

무슨 일이든 재수 없으면 걸린다

 

이것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물론 이날 간담회에서 나온 강 청장의 발언은 언론에 보도를 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일파만파의 된서리를 맞지 않고 있다지만, 강 청장의 발언이 알려지자 민주노동당은 곧바로 성명을 내고 "성매매는 재수 없으면 걸린다는 생각을 가진 경찰 총수가 어떻게 청와대 행정관의 성 매매 사건과 장자연씨 리스트를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공보관 시절 언론사 기자들과의 잘못된 관행에 입각해 성매매 문제 참 난감하다고 푸념하는 강 청장은 경찰총수로서 그 자격을 상실했다"고 거칠게 퍼부었다.

 

이렇듯 인터넷으로 뉴스를 서핑하다 보니 마뜩찮은 이야기로 넘쳐났다. 급기야 저녁 먹은 게 매슥거렸다. 그래서 읍내를 한 바퀴 돌고 왔다. 두어 시간 가까이 걸으면서 요즘 지역 사정을 살폈다.

 

대충 훑어보아도 심각하다. 숫제 문을 닫은 가게가 많다. 그나마 활기를 띠고 있는 가게는 돼지국밥집이나 감자탕, 막창구이집 정도다. 주머니가 얇은 서민들이 싼값에 취기에 절을 수 있는 곳이어서 그럴 거다.

 

"요즘 굶어 죽을 판입니더. 이래가지고는 '쎄가 빠지도록' 일해 봤자 가게 세 주고나면 남는 게 없는 기라예.

 

퇴근하면서 들러 한 잔 걸치고 가는 사람들로 장사를 하는데 손님이 없어예. 앉아도 소주 한 병 마시며 세상 욕지거리로 안주 삼다가 그냥 갑니더.

 

보이소. 옆집 사정도 마찬가지아입니꺼. 사흘 전엔 해물구이집이 문을 닫았습니더. 더 버텨낼 재간이 없는 거지예. 차라리 있는 사람들처럼 돈지랄이라도 실컷 해봤으면 원도 없겠습니더." 

 

오천 원 안주를 전문으로 내놓는 선술집 아줌마의 간단없는 얘기다. 언뜻 보니 불이 꺼졌다. 항상 웃는 얼굴로 손님맞이에 괄괄했던 그들 부부는 가게 문을 닫으며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골목 안에서 떼거리 손님들로 가장 북적였던 가게였는데 무슨 곡절이 있었단 말인가. 아무리 불황기라도 되는 집은 장사가 된다고 하던데….

 

돈지랄이라도 실컷 해봤으면 원도 없겠다

 

창녕군은 2월말 현재 2만 7천여 세대에 인구가 6만여 명 정도의 작은 지자체다. 그 중 창녕 읍의 인구는 만 6천여 명. 유동인구는 극히 적은 편이다. 그러니 제 살 제 베어 먹기로 하루 매상은 극히 일천하다. 그런데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화왕산 억새 태우기 참사로 인해 지역경제는 꽁꽁 얼어붙은 상태다.   

 

한데, 연일 뉴스로 불거져 나오는 리스트의 돈벼락 이야기는 아득바득 살고자 하는 지역민들에게 심히 욕지거리가 나오는 일이다. 달갑잖은 이야기가 많을수록 열악한 처지에 내몰리는 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무엇으로 위안받나? 아무리 쪼들릴수록 깡다구로 악바리로 산다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닌지. 아무리 '자빡댄다'한들 변방의 북소리뿐인데. 홧김에 서방질 한다고 이참에 나도 그들처럼 돈지랄이라도 실컷 해봤으면 원도 없겠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불황기, #돈지랄, #리스트공화국, #인사사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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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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