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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황대권이라고 합니다. 세상에는 군부독재 시절 조작 간첩사건의 희생자로 또는 <야생초편지>의 저자로 알려져 있지요. 출소 이후 저는 한 사람의 농부로, 생태운동가로, 비폭력평화주의자로 살아왔습니다.

한 달 전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이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회원들에 의해 폭행 당했다는 기사를 접하고 몹시 놀랐습니다. "아니, 우리 어머님들이 어떻게 국회의사당에서 그런 일을!"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지만 연이은 보도를 살펴보니 '집단적 폭행사건'으로 결론이 나는 듯했습니다. '폭행가담자'에 대한 체포령이 떨어졌고 서울 민가협 상임의장을 지냈던 조순덕 어머님께서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보수언론들이 연일 민주화 운동단체들을 불법폭력집단으로 매도하는 바람에 민가협은 창립 이래 24년 동안 국가폭력에 의해 늘 당하기만 하던 피해자에서 졸지에 가해자로 낙인찍히고 말았습니다. 험한 꼴을 당한 전 의원도 억울하겠지만 오랜 세월 교도관과 전경의 군홧발에 채이면서 인권투쟁을 벌여왔던 어머님들의 심정도 참담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24년간 피해자였던 어머니들이 졸지에 가해자로

어떤 어머님은 "그동안 내가 양심수 석방운동을 하면서 공권력에 의해 두들겨 맞고 길바닥에 내동이 쳐진 일이 헤아릴 수도 없거늘 오만방자한 국회의원의 머리채를 한번 잡았다고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한다니…" 하면서 분을 삭이지 못했습니다.

저는 어머님들의 몸사리지 않는 투쟁 덕분에 다시 세상에 나왔지만 '비폭력과 자기성찰'을 통해 세상을 바꾸어 보자고 주장하는 사람으로서 참으로 곤혹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런 글을 쓰고 있느니 차라리 제가 대신 감옥에 들어가서 온갖 매도에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어머님을 쉬게 하고 전 의원에게도 사과를 하는 것이 훨씬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법률적 적법성 여부를 묻지는 않겠습니다. 대신 저는 사법당국의 양심에 대고 정중히 요구합니다. 부디 조순덕 어머님을 불구속 수사해 주십시오.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부당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제가 살펴본 당시의 정황은 일부 신문에서 묘사한 '폭행'과는 거리가 멉니다. 어머님은 그날 시민사회단체 대표들과 함께 야당 대표를 만나러 국회에 갔다가 우연히 전여옥 의원을 발견했고 그야말로 충동적으로 전 의원의 머리채를 잡은 것이 전부입니다. 그것도 극히 짧은 순간에.

저는 내면에 잠재된 분노를 이런 식으로 표출하는 것에 대해 반대합니다. 비폭력주의자는 때리면 맞아야지 쫓아가서 때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완전한 비폭력은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니까요.

어머님의 구속소식을 들었을 때, 작년 말 이라크에서 기자회견 중인 부시 대통령에게 신발을 던져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한 젊은 기자가 생각났습니다. 미국의 통제 아래 있는 이라크 법정에서 3년형을 선고받은 그 기자는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그가 만면에 웃음을 띠며 이라크가 아주 좋아졌다고 말하는 순간 미국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사망한 수백만의 무고한 이라크 백성과 처참하게 파괴된 이슬람 사원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신발을 벗어 던졌다."

말하자면 평소에 쌓여 있던 분노가 우발적으로 폭발한 것이지요. 진짜 한 나라의 대통령에게 테러를 하려 했다면 겨우 신발을 벗어 던졌겠습니까?

조순덕 어머니를 굳이 구속까지 해야 합니까

<야생초편지>의 저자 황대권씨
 <야생초편지>의 저자 황대권씨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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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조순덕 어머님의 행위도 그와 똑같은 맥락에서 이해합니다. 정치인들 가운데 가장 모나게 민주화 운동과 민주인사들을 폄훼해 온 전여옥 의원에 대한 불만이 가득 차 있다가 우연한 장소에서 자신도 모르게 그런 행동이 나왔다고 봅니다.

어머님도 사람인지라 때로 실수를 합니다.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하기에 앞서 어머님의 가슴 속에 쌓인 분노를 풀어 드리지 못한 제 자신의 게으름과 무관심에 대해 반성하면서 다시 한 번 사법당국에 요청합니다.

설사 피해자의 신분이 국회의원이라 할지라도 의도하지 않은 '폭행'을 두고 가해사실을 순순히 인정한 피의자를 굳이 구속까지 해야 합니까? 더군다나 어머님은 고령에 도주 우려가 전혀 없는 시민사회의 대표적 인사입니다. 일벌백계식의 법집행이 효력을 발휘하는 경우도 있지만 지나치게 남용하면 법이 국민들로부터 멀어질 수 있음을 말씀드리며 이글을 맺습니다.


태그:#조순덕, #황대권, #전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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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연대는 1999년 7월 2일 창립이후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에 따라 국내외 인권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인권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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