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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춘화 '춘란'이라고도 부른다.
보춘화'춘란'이라고도 부른다. ⓒ 김민수

몇 년 전인가, 남도에 사는 후배 교회에 들렀다가 난 화분 한 점을 선물로 받았다. 그런데 그해 겨울인가 관리를 잘못해서 이파리가 다 죽어버렸다. 그래서 난 화분은 옥상 구석에 처박힌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봄, 사순 절기를 보내고 있을 때 버려진 화분에서 난 새싹이 한 촉 올라왔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며 부활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시기에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난이 '나 죽지 않았어!'하고 피어났으니 얼마나 대견스러운 일인가!
그에 대한 글을 쓰고, 죄스러운 마음에 그가 잘 자랄 수 있을 것 같은 야산 양지바른 곳에 심어 자연의 품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났다.

출장길, 남도의 간벌하는 산에 올랐다가 뿌리째 뽑힌 난을 하나 주워왔다.

이파리나 보자는 마음으로 화분에 심어두었는데 올봄에 꽃대가 올라왔고, 마침내 꽃을 피웠다. 봄을 알리는 꽃 춘란, 보춘화였다.

보춘화 꽃말은 '소박한 마음'이다.
보춘화꽃말은 '소박한 마음'이다. ⓒ 김민수

보춘화는 난 중에서는 흔한 꽃이다.

물론 변이종은 비싸다고 하지만 재래시장 같은 곳에 가면 간혹 시골 할머니들이 야산에서 캐온 난을 2-3천 원이면 살 수 있고, 꽃시장에 가면 출처불명이긴 하지만 5천 원 내외의 가격으로 장만할 수 있다.

보춘화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사진상으로 꽃도 보았다. 그리고 올해는 화분에서 피어난 보춘화도 보았다. 그러나 같은 꽃이라도 야생의 상태에서 보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 화분에 피어난 보춘화를 본 이후 야생의 보춘화를 사진으로 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한창 보춘화가 피어날 시기, 때마침 강진 출장 일정이 잡혔다.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이번 기회에 야생 보춘화를 꼭 봐야겠다고 계획을 하고 그곳에서 목회를 하는 후배에게 전활 했다.

보춘화 남도에는 지천에 피어있는 것이 보춘화다.
보춘화남도에는 지천에 피어있는 것이 보춘화다. ⓒ 김민수

"형, 여긴 보춘화가 지천이야, 그냥 풀이야."
"설마, 어디쯤 가면 볼 수 있냐?"
"그냥 나지막한 산 있으면 올라가. 동네에서 부르는 소리 들릴 정도만 가면 그냥 밭이야."
"요즘 피어 있냐?"
"요즘 한창때지. 형, 오면 내가 안내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5시간여를 달려 강진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일박하고 새벽에 숙소를 나섰다. 후배는 급한 일이 생겨서 나오질 못했다.

백련사 쪽으로 향해가다가 아침 햇살이 잘 들만 한 나지막한 산자락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올라갔다. 지천이라던 보춘화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산행을 한 지 30여 분, 수줍은 듯 피어 있는 보춘화를 만났다. 그리고 한 번 만남을 허하자 여기저기에 숨어 있던 보춘화가 인사를 한다.

보춘화 소박하게 생겼지만 그 은은한 향은 여느 난의 향기보가 깊다.
보춘화소박하게 생겼지만 그 은은한 향은 여느 난의 향기보가 깊다. ⓒ 김민수

'이것이 야생의 보춘화구나!' 숨이 탁 막혔다.

보춘화의 은은한 향기를 맡아보려고 코를 갖다 대었지만 감기 기운 때문인지 코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출장관계 일을 하려고 아쉽지만, 그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출장관련 일을 마치고 다시 오후,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 보춘화 만났어요?"
"그래, 아침 회의 전에 두어 시간 보춘화를 만났다. 정말 많더라."
"제가 아는 곳으로 가실래요?"
"물론, 가자!"

후배가 안내한 곳은 장흥의 나지막한 야산이었다.

산길로 접어들자 보춘화가 여기저기 보이기 시작하는데 오전에 보았던 것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푸르다 싶은 것은 모두 보춘화다. 후배가 '보춘화가 그냥 풀이여!' 한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음이 증명되는 순간이다.

보춘화 뒤로 푸릇푸릇 보이는 것들이 다 보춘화다.
보춘화뒤로 푸릇푸릇 보이는 것들이 다 보춘화다. ⓒ 김민수

누구에겐 일상인데 누구에겐 평생의 소원일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 내게 없는 것, 갖지 못한 것만 그리워하다 지금 내가 가진 것과 내게 일상인 것에 대해 감사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는 어리석은 삶을 살지 말아야 하겠다면서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니까 사람이겠지만.

보춘화의 꽃말은 '소박한 마음'이란다. 정말 그랬다.

그들은 귀족에 속하는 난이 아니라 서민에 속하는 난이다. 돈이 없어도 한 촉 키워보겠다면 서민들도 편안하게 키울 수 있는 난이요, 남도의 야산에 가면 풀처럼 흔한 난이다. 마치, 남도 사람들의 소박한 삶처럼 말이다.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길, 서둘러 보았지만, 꼬박 5시간이 걸린다.

그래도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며 운전을 하는 것을 보면 보춘화를 만난 기쁨이 꽤 큰가 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김민수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보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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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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