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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당국이 충분한 외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환율 폭등을 방치하여 경제를 무너뜨리는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다." (김광수 경제연구소)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기본에 충실하고 있으며, 정확한 내용 파악 없이 사실을 모르는 무책임한 주장이다." (기획재정부)

 

국내 외환보유고의 적정성을 두고, 한 민간경제연구소와 정부 사이의 치열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김광수경제연구소의 김광수 소장은 23일 <한겨레>에 실은 기고를 통해,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마치 우리 연구소가 없는 사실을 유포하여 인터넷을 통해 위기를 조장하는 것처럼 말을 흘리고 있다"면서 "적반하장도 유분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또 "자국의 화폐가치를 방어하고, 환율을 안정시킬 책무가 있는 정책당국이 충분한 외환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원-달러 환율 폭등을 방치해 경제를 무너뜨리는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라고 날선 비판을 이어갔다.

 

민간 연구소의 책임자가 공개적인 신문지면을 통해, 정부 정책당국을 대놓고 강한 어조로 비판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물론 김광수연구소의 한국경제 위기에 대한 도발적 문제제기는 그동안 꾸준히 계속돼 왔다.

 

리먼 파산 등 예견한 김광수연구소의 도발적 문제제기

 

특히 작년 초에 이미 미국의 리먼브러더스 파산과 향후 금융위기를 예고하면서, 시장의 큰 관심을 불러 모았다. 이후 작년 10월께는 '한국경제가 사실상 제2의 환란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했고, 국내 외환보유고의 적정성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해 왔다.

 

작년 10월 28일께 내놓은 연구소의 <경제시평>에선 "외환시장에서 달러 수요와 공급이 완전히 무너져 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가용 외환보유고가 매우 한정적일 것"이라며 "이미 시장개입으로 사용한 외환 등을 감안하면 2000억 달러 정도로 추정된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발표한 작년 10월 말 외환보유액은 2122억 달러까지 떨어졌고, 12월께는 2000억 달러로 줄어들었다. 국내 외환보유액은 2008년 1월까지만 해도 2600억 달러에 달했었다.

 

리먼 사태 이후 외환시장 불안과 함께 국내 금융시장의 혼란이 계속되자, 정부가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풀어 시장에 개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개입에도 원-달러 환율은 3월 들어 한때 1600원선까지 육박하다가, 최근 들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김광수연구소의 이러한 문제제기를 두고, 정부는 한때 무대응으로 일관하다가, 올해 들어서는 "사실 무근", "위기 조장" 운운하며 연구소의 주장을 일축해 왔다.

 

김 소장은 이 같은 정부의 태도에 강한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는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우리 연구소는 원-달러 환율이 작년에 이어 올 들어서 1600원까지 올라, 그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 문제를 제기해 왔다"면서 "우리가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에 환율이 치솟은 것이 아닌데도, 정부 쪽에선 언론을 상대로 마치 우리가 외환시장의 불안을 조성하는 것처럼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비판] 김광수 "외환 가지고 있으면서 환율 폭등 방치한 건 직무유기"

 

그렇다면 김광수경제연구소가 밝힌 원-달러 환율 폭등의 원인은 무엇일까. 이는 곧바로 국내 외환보유고의 적정량과 정부의 외환정책에 대한 평가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원-달러 환율이 폭등하는 이유는 시장에서 달러를 파는 것(공급)보다 사들이는 것(수요)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김 소장은 작년 하반기부터 국내 외환시장에서 수요와 공급 상황이 무너졌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외환시장의 불안이 커졌고, 한미일간의 통화스와프(통화 교환) 체결 등으로 잠시 안정세를 보였지만, 이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는 것이 연구소 쪽의 주장이다.

 

김 소장은 지난달에 이어 23일자 <한겨레> 기고에서 "한국투자공사(KIC)가 한은으로부터 외환보유고 200억 달러를 위탁받아 관리를 해왔지만, 해외투자 과정에서 상당한 손실을 냈다"면서 "하지만 정부는 이 같은 사실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한은 등에선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국의 대표적인 모기지업체인 페니메와 프레디맥 등이 발행한 각종 채권 가격이 폭락하고, 거래가 끊겨 버렸다"면서 "통화 스와프 자금은 사실상 갚아야 할 빚이며, (통화스와프 자금에 의한) 정부의 시장개입분을 빼게 될 경우 외환보유액은 사실상 2000억 달러에 훨씬 못 미치는 상태"라고 예상했다.

 

김 소장은 이어 한발 더 나아 "만일 (한미) 통화 스와프로 빌려온 달러를 모두 사용했다고 가정할 경우 한국은행의 실질 외환보유고는 1100억까지 줄어든 셈이 된다"고 주장했다.

 

[반박] 정부 "사실을 모르는 무책임한 주장"

 

김광수연구소 쪽의 이러한 주장에 정부쪽도 전과 달리 거세게 반박했다. 기획재정부는 이날 오전 별도의 보도해명자료를 통해 "한국투자공사의 투자 손실은 외환보유액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KIC의 위탁자산 중 메릴린치 은행에 20억 달러 투자한 금액은 외환보유액에 편입되지 않는다"면서 "이외 일부 투자자산의 성격상 일부 손실이 발생했지만, 최근 국제금리 하락으로 외환보유액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각종 정부채권 등의 가치가 올라서 KIC의 손실을 만회하고도 남는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미국이 발행한 정부와 정부기관 등의 각종 채권도 국제 금융시장에서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 한·일·중 900억 달러 통화스와프 체결에 대해서도, 재정부는 "이들 국가 사이에 900억 달러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했지만, 실제 사용한 것은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160억 달러"라며 "통화스와프 자금은 외환보유액 계산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회고했다.

 

재정부는 "통화스와프 성격과 사용실적 등에 대한 정확한 내용 파악 없이 실제 외환보유액이 1100억 달러라는 것은 사실을 모르는 무책임한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정부 관계자는 "환율이 급변동하는 경우에는 이를 완화하기 위해 시장안정화조치 등 정책적인 책무를 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재반박] 김광수 "논리적 반론 아닌 일방적 매도야말로 무책임"

 

기획재정부의 반박에 대해 김광수연구소 쪽도 재반박에 나섰다. 한마디로 논리적인 반론이 아니라, 정부의 정책 실패를 지적하는 연구소를 매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소 쪽은 KIC의 투자손실 문제에 대해서, "KIC의 투자내용과 실적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그저 일방적인 주장만 하고 있을뿐"이라고 말했다.

 

통화스와프의 외환보유고 적용 여부에 대해서, "형식적으로 한은의 외환보유고에 포함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실질적인 의미에서 외환보유에서 빠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연구소 쪽은 반박했다.

 

왜냐하면, 국내 은행들이 외화자금 조달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민간은행을 대신해 중앙은행끼리 통화스와프를 체결한 것이기 때문이다. 통화스와프 자금 상환 의무가 민간은행이나 한국은행에 있다고 하더라도, 미국의 FRB는 최종적으로 한국은행에 상환 책임을 지운다는 것이다.

 

김 소장쪽은 "재정부가 자신들 말대로 외환보유고가 충분하다면 왜 원-달러 환율이 폭등하며, 왜 이것을 계속 방치하고 있는지 설명해야 한다"면서 "국민에게 납득할 만한 설명도 하지 않고, 그저 문제없이 잘하고 있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태그:#외환보유고, #금융위기, #김광수, #윤증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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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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