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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슈라 축제의 주인공인 이맘 후세인 사진. 이란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사진이 이맘 후세인과  호메이니의 사진이다.
 아슈라 축제의 주인공인 이맘 후세인 사진. 이란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사진이 이맘 후세인과 호메이니의 사진이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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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흐르 공원을 나와 테헤란 바자르를 향해 걸었습니다. 거리에는 검은 기가 펄럭이고, 초록색 글씨가 적힌 현수막도 곳곳에 걸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관공서를 비롯한 가게들은 모두 문을 닫았습니다.

오늘이 바로 이맘 후세인의 순교를 기념하는 아슈라 축제인 것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애도의 날 8일째입니다. 그래서 가게들은 문을 닫고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 퍼레이드를 통해 그들이 존경하는 이맘 후세인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또한 시아 무슬림 공동체를 확인하는 것이지요.

이란은 율법을 따르는 다수의 수니파와 달리 예언자 무하마드의 직계후손을 추종하는 시아파 무슬림 국가입니다. 그런데 오늘 아슈라 축제의 주인공인 이맘 후세인은 무하마드의 손자로 시아 무슬림 형성의 결정적 계기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므로 아슈라 축제는 이란인에게는 정말 중요한 행사입니다. 이런 중요한 행사에 참석할 수 있어서 운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맘 후세인의 순교를 기념하는 아슈라 축제

이란 최대 시장인 테헤란 바자르를 향해 걷다가 큰 건물 앞 도로에 붉은 카펫이 깔려있고, 검은 차도르를 걸친 여자들이 빼곡하게 앉아있는 걸 봤습니다. 좋은 구경거리가 있는가 싶어 급하게 달려왔더니 여자들이 도시락을 먹고 있었습니다. 아슈라 축제 때 뜻있고 돈 있는 사람들은 음식을 장만해서 사람들을 초대해 나눠먹는다고, 이란 오기 전 텔레비전에서 봤는데 오늘이 바로 음식 먹는 날인 모양입니다.

일회용 용기에 담긴 음식은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웠지만 냄새가 정말 좋았습니다. 아침에 커피 한 잔을 마시고는 점심때가 한참 지난 지금까지 아무 것도 먹지 않았기 때문에 뱃가죽이 등에 붙을 만큼 배가 고팠습니다.

배가 고프면 보이는 게 없을 만큼 배고픈 걸 못 참는 사람이라 그녀들이 먹는 도시락을 보자 한 그릇 얻어 먹여야겠다는 그 생각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도시락을 받는 줄로 가서 기웃거렸지요. 그때 점잖아 보이는 남자가 다가오더니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우리도 도시락 좀 얻어먹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좋다면서 원래 있던 자리에 가서 기다리면 배달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이란 사람들이 손님을 신이 보낸 선물이라고 생각한다더니 역시 손님 대접을 잘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있던 자리로 돌아와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이제나 저제나 기다려도 도시락은 감감 무소식이었습니다. 30분은 기다렸을 것입니다. 우리가 있는 곳을 못 찾나, 하고 생각하며 다시 그 점잖은 남자에게로 갔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다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20분을 기다리세요. 그러면 음식을 배달해주겠으니 원래 있던 자리에 가서 기다리세요."

30분을 기다렸는데 20분을 더 기다리라고 하니까 배가 고파서 더는 못 기다릴 것 같았습니다. 그때 아가씨 둘과 여학생 둘이 다가왔습니다. 사촌지간이라고 했습니다. 그 중 가장 큰 언니는 영어를 꽤 잘했습니다.

그녀들에게 식당을 물었더니 우리가 배가 고프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예의 그 점잖은 남자에게로 데려갔습니다. 현지인과 함께 가니 뭔가 달라질 줄 알았는데 그의 레퍼토리는 여전했습니다. 역시 기다리면 음식을 배달해주겠다는 것이지요.

이제나 저제나 기다려도 도시락은 감감 무소식

"기다리세요"를 연발하던 아저씨. 그러나 그는 그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도시락을 준비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세요"를 연발하던 아저씨. 그러나 그는 그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도시락을 준비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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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접고 테헤란 바자르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네 자매가 우리에게 길을 안내하겠다고 했습니다. 안 그래도 아슈라 축제 때문에 거리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정신없고, 안내책자에 나와 있는 지도는 무슨 암호 같이 보였는데 그녀들의 제안은 내게 큰 위안이 됐습니다.

테헤란 바자르의 가게들도 아슈라 축제 때문에 모두 문을 닫았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바자르 골목은 사람들로 꽉차있었습니다. 여기서도 음식을 나눠주는 모양입니다. 앞에서 공짜 음식이 결코 쉬운 게 아니라는 걸 배웠기에 마음을 비우고 있었는데 큰 언니가 음식을 얻어왔습니다. 어미 새가 구해온 먹이를 먹는 새끼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라면 국물 빛깔의 스프인데 업구스트라고 했습니다. 함께 얻어온 난이라는 빵을 이 국물에 넣어서 먹는 모양입니다. 우리는 시장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이란 땅에서 처음으로 이란 음식을 맛봤습니다. 배가 등가죽이라서 웬만하면 삼키겠는데 정말 목구멍으로 안 넘어갔습니다. 너무 느끼하고 그러면서 싱겁고 향신료는 강하고, 내가 싫어하는 맛은 다 들어있었습니다.

먹기 싫은 음식을 간신히 삼켜서인지 속이 느글거리고 불쾌했는데 마침 큰 언니가 음료수를 구해왔습니다. 배와 설탕과 레몬을 섞어서 만든 것인데 시원하고 정말 맛있었습니다. 앞에서 먹은 불쾌한 맛을 다 잊게 할 만큼 신선했습니다.

썰물처럼 사람에 밀려서 거리로 나오니까 이곳저곳에서 음식 나눠주는 데가 많이 보였습니다. 어떤 데서는 오렌지 주스를 나눠주고, 또 어느 곳은 양고기로 만든 첼로 케밥을, 또 다른 곳에서는 빵을, 이렇게 음식이 지천이었습니다.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간다고 난 오렌지주스를 세 컵이나 마셨습니다.

그리고 길거리에는 퍼레이드가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인 이맘 후세인의 죽음을 전해들은 조카가 숙부의 원수를 갚겠다고 울부짖는 장면을 재현한 연극입니다. 또 한쪽에서는 남자들이 먼지 털이처럼 생긴 쇠사슬 뭉치로 자기 몸을 탁탁 소리 나게 내리치고 있는데 그 옆에서는 어떤 여자가 바닥에 퍼질러 앉아 땅을 치면서 통곡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모두 종교적인 의미를 담은 재연극입니다.

과일값마저 먼저 계산한 네 자매의 이유없는 친절

아슈라 축제 때 얻어먹은 '께이메'라는 음식.
 아슈라 축제 때 얻어먹은 '께이메'라는 음식.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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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레이드 행렬을 따라 네 자매와 함께 걷다가 빨간 카펫이 깔린 곳으로 다시 오게 됐습니다. 점잖은 남자는 좀 전의 고압적인 태도와는 달리 우릴 보자 반가워했습니다. 어딜 갔었느냐며 찾았다고 했습니다. 음식을 주기 위해서지요.

그래서 우리는 이 남자에게서 도시락을 받아서 카펫 위에 앉아 먹었습니다. 감자와 콩, 쇠고기가 들어간 소스를 밥에 끼얹어먹는 요리인데 이름이 께이메라고 네 자매가 가르쳐주었습니다. 아까 먹은 업구스트 보다는 낫지만 보기와 달리 입에 안 맞았습니다. 난 아직 이란 음식과 친해지기에는 시기상조인 모양입니다.

어느덧 해도 저물고 숙소로 돌아갈 시간이 돼서 네 자매에게 과일을 사러 가자고 했습니다. 아까 돌아다니다가  문이 열린 과일가게를 봤었거든요. 네 자매가 오늘 하루 안내해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그 가게서 과일을 사줄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 밤에 야간버스를 10시간 탈 것인데 그때 먹으려고 사과를 좀 사고, 네 자매를 위해서는 석류를 1킬로그램 샀습니다. 그런데 계산을 네 자매가 하는 것입니다.  그녀들이 안내를 해줬기에 그에 대한 보답으로 과일을 사려고 한 것인데 그녀들은 과일 값을 자기들이 내며 끝까지 친절을 베풀려고 했습니다. 말렸지만 고집을 꺾을 수가 없어서 친절을 받을 수밖에 없더군요.

그런데 이 상황은 정말 내 식의 셈에는 어긋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편치가 못했습니다. 벌써 친절을 두 번이나 받았는데 난 그녀들에게 줄 게 하나도 없었으니까요. 가는 게 있으면 오게 있다는 게 내 모토입니다. 그래서 이유 없는 친절은 없다는 생각을 하고 살아왔고, 또 이렇게 받기만 하는 상황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녀들, 네 자매는 오늘 하루 내게 시간을 쓰고 돈을 썼습니다. 이유 없는 친절이었지요.


태그:#이란, #아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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