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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병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이 지난달 25일 "고용 안정을 위한 경제계 대책 회의 결과 30대 그룹이 대졸 신입사원의 연봉을 최고 28%까지 차등 삭감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정병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이 지난달 25일 "고용 안정을 위한 경제계 대책 회의 결과 30대 그룹이 대졸 신입사원의 연봉을 최고 28%까지 차등 삭감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 남소연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는 대졸 초임(연봉 2600만원 이상인 자에 한해)을 삭감해 채용 인원을 더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후 몇몇 대기업들은 임원의 임금을 깎아 그 돈으로 '인턴'을 채용하겠다고 했습니다. 일명 일자리 나누기(잡 셰어링)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인데요. 단어만 봤을 땐 뭔가 훈훈한 느낌을 주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삭감'인 것이고 이로 인해 '임원'들보단 평직원들이 겪는 어려움이 더 클 것이란 건 눈으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한 달 전 우리 회사에서도 정리해고가 진행됐습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잘리지 않았습니다. 임신한 여직원부터 왕성하게 활동하는 30대 남자 직원까지 전체 10%에 달하는 숫자가 '해고'라는 문턱을 넘어야만 했습니다. 회사는 단호했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직원들에게 지급되던 수당의 30%가 깎였고 설상가상으로 상여금도 200% 삭감됐습니다.

정리 해고된 옆자리 동료의 뒷모습이 자꾸 떠오릅니다. 부장님 호출에 힘없이 발길을 옮기던,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의 발걸음을 연상시키던 그의 모습이…. 정리해고 다음 날 짐을 싸 사무실을 떠나던 동료들의 모습도 아직 머릿속 한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바탕 바람이 일었지만, 남은 직원들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언제든 나도 해고될 수 있다는 그런 마음 말입니다.

정리해고가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건 침울과 냉소

감원과 임금 삭감의 파고는 그렇게 회사를 한 바탕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떠나간 동료들의 빈자리는 어떻게 해도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회사 입장에선 인원이 줄어 고정비용을 아끼고 숨통이 트였다고 자위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남은 자들이 겪을 심리적 충격과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로 회사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았습니다. 침울함을 넘어 모두 냉소적으로 변했습니다. 웃음도 잃었습니다. 자본의 무자비한 효율 논리는 삶을 공유하고 관계를 매개로 한, 사람을 중심으로 일터를 가꿔가려는 동료들을 더욱 더 피 나는 생존 경쟁과 피동적인 자본의 객체로 내몬 것입니다.

둘째로 업무가 2배로 늘었습니다. 두 세 사람이 할 일을 부서에 따라선 한 사람이 떠맡아야 하기도 합니다. 회사 입장에선 3명분의 일을 한 사람에게 시키니 이득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자리보전을 위해 싫은 내색 없이 생경한 업무까지 맡아야 하는, 남은 자들에게서 노동의 창의성과 업무 효율성을 기대하기란 힘듭니다.

엎친 데 덮쳤다고 해야 할까요. 급기야 회사는 당분간 휴업에 들어갑니다. 물론 저도 출근 하지 않습니다. 주문 물량이 줄었기 때문입니다. 생산직 동료들의 고충은 더욱 심각합니다. 이미 지난해 말 30% 인원 감축이 있었습니다. 또 이번에 휴업에 들어가게 된다면 100만원도 안 되는 기본급으로 자식 교육과 살림까지 꾸려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아이러니한 일이 생겼습니다. 모 공기업에서 퇴임 후 감사로 있던 분이 얼마 전 우리 회사 부사장으로 부임한 것입니다. 사실 그 분 1년치 연봉이면 직원 5명이 나가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생산직 직원의 경우, 더 많이 채용할 수 있습니다. 회사에선 그 분이 받는 만큼 기여할 것이라고 믿겠지만 동료 직원들의 해고를 목격한 저로서는 씁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대기업 임원 임금 삭감은 생색내기용

 27일 오전 10시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 소속 대학생 10여명은 여의도 전경련회관 앞에서 대졸 신입사원 초임 삭감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27일 오전 10시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 소속 대학생 10여명은 여의도 전경련회관 앞에서 대졸 신입사원 초임 삭감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권박효원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최근 '잡 셰어링(Job Sharing)'이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대기업들 사이에선 아주 유행이 돼 버린 듯합니다. 이명박 대통령께서도 한 방송사가 주최한 특별방송에서 '첫째도 일자리, 둘째도 일자리, 셋째도 일자리라는 생각에서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끝없이 추락하는 경제 침체 파고 속에 일자리 늘리기가 가장 중요한 국가 현안이 됐다는 방증입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이런 발언들로 대학 졸업을 앞둔 사회 초년생들이나 평직원들은 상황이 더욱 어렵게 됐습니다. 안 그래도 적은 연봉으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데, 삭감이라니요. 더 황당한 것은 정부나 기업들이나 '삭감'에만 방점을 찍었지, 그것을 어떻게 활용해 일자리를 늘릴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밝히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임원들 임금을 깎아 만들겠다는 '인턴'도 비정규직 늘리기에만 일조할 뿐, 일자리 늘리기에 대한 확실한 처방이 아닙니다.

너무 비양심적입니다. 진정한 고통분담은 위에서부터 시작돼야 합니다. 전경련의 '30대 그룹 대졸초임 최대 28% 삭감' 계획이 발표되기 전에 먼저 대기업 그룹 임원들의 임금 삭감 발표가 먼저 났어야 합니다. 대기업 임원들 임금 삭감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보도된 것들은 몇 개 안 됩니다. 그저 '좋은 일 한다, 훈훈하다'는 식입니다. 신입사원 임금 삭감에 대해선 30대 그룹이 똘똘 뭉쳐 구체적 안까지 제시하더니, 임원 임금 삭감에 대해선 몇 개의 기업들만 안을 내놓았을 뿐입니다. 생색내기입니다. 대졸초임 삭감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들끓자, 마지못해 내놓은 생색내기용인 듯해서 씁쓸합니다.

신입직원 임금삭감, 모든 노동자 임금 하향 부를 것

이 땅의 지도자, 특권층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허공 속에 메아리일 뿐입니다. 잡 셰어링은 노동 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늘리기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반대입니다. 이러한 신규 직원 임금 삭감 움직임은 제가 속한 기업이나 여타 하청 업체들의 동반적 임금 하향을 부를 것이 뻔합니다. 이는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데 일조할 뿐, 사회를 발전시키는 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정부나 대기업이나, 뭔가 잘못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질입니다. 양이 아닙니다. 우리 회사의 경우에서 보듯 근로자는 언제나 약자입니다. 통제받지 않은 권력인 자본과 신뢰 상실의 리더십이 이 땅 노동 약자들의 권리를 옥죄이고 있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습은 분명 정상이 아닙니다.

이 자본의 힘은 민주주의 가치와 노동자 인권, 표현의 자유까지 압도하고 있습니다. 비극입니다. 지금 우리를 더욱 암울하게 만드는 건 특권 부유층만을 대변하는 현재의 권력과 유착해 갈수록 공고해지고 있는 이 자본의 철옹성이 앞으로 노동 약자들을 얼마나 더 깊은 고통과 절망의 수렁으로 밀어 넣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정리해고 #잡쉐어링#이명박 #자본#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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