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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개신교 가운데 진보교회의 대명사로 알려진 향린교회가 있다. 우리나라의 사회구원에 최선을 다하는 교회 가운데 가톨릭 교계를 대표하는 명동성당이 있다면 향린교회는 개신교계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향린교회는 사회구원과 사회참여에 온몸을 다하는 대표적인 교회다.

 

향린교회가 더 뜻 깊은 것은 미국이나 유럽풍 교회와는 달리 토착화된 한국산 교회를 주도하고 있는 점이다. 예배가 징소리로 시작되고, 중간에 국악으로 찬양하기도 하고, 예배 갈무리에 하는 축도 역시 담임목사의 일방적인 선포가 아니라 온 교우들이 손을 잡고 서로를 위해 축도 한다.

 

향린교회가 향린교회다울 수 있는 것은 교회를 구성하는 교우들의 몫이 크다. 지금껏 토착화된 한국산 교회를 일구어 온 것도, 어지러운 정치계를 향해 예언자적인 쓴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도, 사회적으로 낮은 자리에 처한 이들과 함께 울 수 있었던 것도 교우들이 함께해 온 결과다.

 

그 구성원들의 토대 위에 2003년부터 새로 부임한 조헌정 담임목사가 있다. 그는 1960년대 이래 한국의 민주주의 회복과 통일운동에 앞장서 온 워싱턴 목요기도회 회장을 역임했고 24년간의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고국에 돌아온 뒤에는 한국교회협의회(KNCC)의 평화통일위원회, 양성평등위원회 등에서 활동했으며, 박정희기념관반대 국민연대, 국가보안법철폐 시민연대, 한미 FTA 반대 기독인연대를 맡아왔다.

 

더욱이 평택의 미군기지 확장반대를 위해 연대하다가 3일간 구치소 신세를 졌고, 최근에는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2006년 10월 12일(주일)에는 제2의 평택 대추리라고 하는 파주 무건리 한미합동사격 훈련장을 찾아 '무건리 훈련장 확장 백지화 대책위원회'와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갈릴에서 만나자'라는 제목으로 하늘뜻펴기(설교)를 했고 그날 헌금을 대책위원회로 보내기까지 했다.

 

그가 쓴 <양심을 습격한 사람들>(한울)은 2008년 한 해 동안 향린교회 강단에서 행한 그의 '하늘뜻펴기' 원고다. 여기에는 구약성서 가운데 제사장 전통을 따르지 않는 여러 예언자들의 표호와 탄식을 오늘의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운 상황 속으로 재해석하여 토해내는 그의 절규와 울부짖음이 들어 있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우리나라의 현재 모습이 주전 8세기로부터 6세기까지의 이스라엘 사회 상황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그의 관점이다. 나라의 윗물이 썩을 대로 썩었는데도 어용 제사장들은 그래도 괜찮다며 그들을 위로하고 힘을 보태던 꼴이나, 사회적인 약자를 위한 길은 좁게 만드는데 반해 사회적인 부자와 강자를 위한 정책은 더 활짝 열어주던 꼴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한미FTA 체결이 우리와 미국 사이의 자유무역 공정거래가 아니라 헤비급과 플라이급이라는 두 체급간의 권투 씨름에 해당될 뿐이라는 그의 항변과, 광복절 대신 건국절을 이 땅에 높이 세우려는 뉴라이트 계열의 오만불손한 역사왜곡과 관련한 그의 강도 높은 쓴 소리는 분명 이 시대를 향한 선지자 이사야의 또 다른 항변이자 거침없는 쓴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구약시대에 활동했던 예언자들의 목소리를 오늘 우리시대에 맞게 재해석하는 그의 하늘뜻펴기를 엉뚱하게 비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특별히 제사장 전통에 따라 개인구원에만 치중하려는 이들이 그 대열에 서 있다. 정치인들이 엉뚱하게 펼쳐나가는 나랏일에 대해서 예수님도 그랬고 사도 바울도 그랬다는 듯이, 무조건 위의 권세에 복종할 것을 주장하는 목회자들이 그렇다.

 

하지만 예수님은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위의 권세에 굴복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헤롯을 여우라고 비판할 정도였고, 기도하는 장소인 성전에서 자기 배를 불리는 자들의 상을 엎어버릴 정도로 과격했다. 바울 역시 복음을 원활하게 전하기 위한 합리적인 접근 차원에서 위의 권세에 순복하라고 했을 뿐이다.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빌라도에 대해서 사복음서가 호의를 베풀고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 관점이다.

 

하나님은 사랑과 공의라는 두 팔을 갖고 있다. 오늘날의 한국교회와 목회자들이 우리사회에 대해 공의를 잃은 채 사랑으로 쓰다듬기에만 바쁘다면 머잖아 우리사회는 패륜아만 양산해 낼 것이다. 그에 따른 부메랑을 한국교회와 목회자들이 되돌려 받을 것은 뻔한 일이다.

 

더 늦기 전에 우리사회를 향해 바른 쓴소리와 울부짖는 탄식, 눈물어린 절규를 토해 내고 있는 조헌정 목사의 하늘뜻펴기를 깊이 경청하도록 하자. 그의 외침은 단순한 시대만평이 아니다.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이 시대에 하늘 양심을 저버리며, 공의를 잃고 사는 이들을 향한 제2의 예언자적 외침이요, 참된 표호다.


양심을 습격한 사람들 - 예언자와 오늘의 시대정신

조헌정 지음, 한울(한울아카데미)(2009)


태그:#양심, #예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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