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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파고 또 파내어도 바닥이 보이지 않는 경제난 때문에 힘들고 괴로울 때는 저만치 봄 실은 고깃배가 통통거리고 있는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로 가자. 올 봄 대학에 들어가는 딸 아들 등록금 때문에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할 때에는 잔주름 같은 파도가 스르르 밀려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생굴 어루만지는 바다로 가자.

 

살림살이 걱정, 아이들 학원비 걱정, 끝도 없이 달라붙는 세금 걱정, 빌린 돈 이자 걱정, 집세 걱정, 바늘귀에 낙타가 지나가야 하는 것처럼 어려운 취업 걱정…. 갖가지 시름 깊은 걱정에 시달리다 못해 가정이 부도날 것 같고 인생이 부도날 것 같은 때에는 깡소주 한 병에 오징어 한 마리 꿰차고 바다로 가자.      

 

그 바다에 서서 깡소주 병째 꿀꺽꿀꺽 마시다가 이 세상살이처럼 딱딱한 오징어 다리 하나 쭈욱 찢어 입에 물고, 불황을 씹듯 잘근잘근 씹어보자. 젖빛 안개에 잠겨 있는 그 바다에 비치는 자잘한 섬 그림자에 겹쳐지는 내 모습 바라보다가 수평선을 향해 '야아~ 야아~'  울부짖듯 외쳐보자. 힘겨운 세상사 북북 찢어지도록. 

 

세상인심처럼 짜디짠 그 바닷물에 늘상 찌들어 살아온 내 짜디짠 눈물 몇 방울도 톡톡톡 떨궈보자. 인생은 어차피 눈물이나 바닷물처럼 짠 것. 하지만 그 짜디짠 바닷물 속에서도 바다풀이 자라고, 미더덕과 우렁쉥이, 소라, 조개, 고둥이 살고, 여러 물고기들이 살고 있지 않은가. 그래. 더 짜게 살자. 내가 이기나, 이 세상 이기나 끝까지 한번 맞붙어보자.    

 

해마다 봄 마중을 나가는 숨겨둔 애인 같은 바다

 

이 세상과 웃통 벗고 싸우다 몸이 지치고, 마침내 마음마저 서러워질 때면 눈에 자꾸 밟히는 그 바다, 구복 앞바다. 마산시 구산면 구복마을과 점점이 떠 있는 거북등처럼 떠다니는 자잘한 섬들을 포근하게 품고 있는 구복 앞바다는 해마다 나그네가 봄 마중을 나가는, 숨겨둔 애인처럼 아끼는 바다다.

 

1월 27일 오후 2시. 봄 마중을 나가기에는 너무나 이른 그때 찾은 구복 앞바다. 그날, 젖빛 봄 안개로 얼굴을 살짝 가린 구복 앞바다는 바람 한 점 없고 날씨마저 포근해서 그런지 연초록빛 유리처럼 매끄러운 물결을 또르르 말았다 또르르 풀어내고 있었다. 내가 가진 것은 들물과 날물처럼 늘 오고 가는 것이라고 가르쳐주듯이.         

 

작은 나뭇가지 하나 주워 파래가 파랗게 깔린 갯가에 앉아 굴 껍질 몇 개 헤집고 있을 때 저만치 호수 같은 바다를 가로지르며 고깃배가 봄빛을 통통거리며 들어오고 있다. 두터운 점퍼를 걸친 사람 서넛 타고 있는 걸 보니, 낚시꾼들을 태우고 나르는 배임에 틀림없다. 고깃배라면 저렇게 작은 배에 두 사람 이상 타지는 않기 때문이다.

 

고깃배가 나무로 만든 간이부두에 닿자 어깨에 낚싯대를 울러 맨 사람들이 폴짝폴짝 뛰어 내린다. 가까이 다가가 "뭐 좀 낚았나요?"라고 묻자 5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사내가 "개기(고기)도 설 연휴 쇠러 가뿟다카이" 하며, 텅 빈 그물망을 툭 던진다. "갈치떼가 떴다 캐서 퍼떡 갔더마는…"하고 말꼬리를 흐리는 구릿빛 사내 얼굴이 건강해 보인다.   

 

     

 

거북이 닮은 산이 바다로 엉금엉금 기어 들어가다

 

낚시꾼들이 총총걸음으로 저만치 떠나고 나자 잠시 일렁이던 바다가 다시 호수처럼 잔잔해진다. 작은 고깃배들이 나란히 묶여 있는 구복 앞바다를 오른 쪽 옆구리에 끼고 천천히 저도 연륙교로 향한다. 이 다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건너면 사랑이 이루어진다 하여 이 지역 연인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안내자료에 따르면 구복 앞바다를 품고 있는 구산면은 신라 때에는 '성법부곡'이라 부르다가 고려 때가 되어 지금 이름인 '구산'현으로 불리었다. 구산이란 이름은 이곳이 3면이 잔잔한 남녘바다를 끼고 있고, 산 모습이 거북이와 닮은 데다 마치 거북이가 바다로 기어 들어가는 것 같다 하여 거북 '구'(龜), 뫼 '산'(山)을 붙였단다.

 

구산현은 그 뒤 웅신현(진해) 웅천에 속하다가 금주로 옮겨졌다가 칠원현에 편입된다. 이어 조선 고종 32년, 서기 1895년에 칠원군 구산면으로 바뀌었다가 1908년에는 창원군에 편입된다. 1910년에는 마산부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에는 다시 창원군에 소속된다. 지금의 구산면은 1973년에는 대통령령 제6542호, 1995년 1월 1일 시군 통폐합에 따라 마산시에 편입되어 있다.

 

인구 5천4백명 남짓한 작은 어촌마을 구산면에는 지금 구복을 비롯한 수정, 유산, 마전, 석곡, 옥계, 반동, 심리, 남포, 내포 등 10개리를 거느리고 있다. 구산면이 이처럼 웅천(진해), 칠원, 창원, 마산으로 오가게 된 것은 그만큼 창원과 마산, 진해가 있는 바다와 산이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초록빛 맑은 물결에 또르르 말려오는 봄맛

 

이 지역 사람들이 '콰이강의 다리'라 부르는 저도 연륙교를 홀로 지나 바다를 바라보며 저도(돼지 섬) 쪽으로 간다. 그렇게 10분쯤 들어가면 거기 또 하나 호수 같은 바다가 연초록 잔물결을 또르르 말았다 또르르 펴고 있다. 누군가 몰래 숨겨놓은 것만 같은 그 바다 갯가 쪽에는 횟집들이 굴 껍데기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중 나그네가 이곳에 올 때마다 찾는 집이 있다. 생선회를 시키면 주인이 직접 바다로 이어져 있는 다리를 건너 바다 수족관에서 싱싱하게 파닥거리는 물고기를 건져 곧장 회를 썰어주기 때문이다. 여기에 바다수족관이 있는, 출렁거리는 선상횟집에서 소주 한 잔과 함께 생선회를 초고추장에 찍어먹고 있다 보면 신선이 따로 없다.

 

밀려왔다 쓸려가는 물결따라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거리는 선상횟집에 홀로 앉아 모듬회 한 접시를 시킨다. 이 집에서 모듬회를 시키면 주황빛 반짝거리는 우렁쉥이와 송송 썬 도다리, 가지메기(깔때기, 농어 새끼), 돔 새끼, 꼬시락 등이 푸짐하게 나온다. 소주 한 잔 캬~ 들이킨 뒤 초고추장에 찍어먹는, 착착 감기는 모듬회 맛은 향긋하고 고소하다.

 

 

특히 짭쪼름하면서도 달콤하게 녹아내리는 향긋한 우렁쉥이는 저만치 초록빛 맑은 물결에 또르르 말려오는 봄맛 그대로다. 그렇게 10여 분쯤 싸한 소주에 취하고, 쫄깃한 생선회에 취하고, 연초록 봄빛처럼 포근한 연초록 바다에 취하다 보면 선상횟집이 기우뚱거리는 것인지 나그네가 기우뚱거리는 것인지 마구 헛갈린다.   

 

오래 전부터 나그네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버린 숨겨둔 애인 같은 구복 앞바다. 조약돌처럼 매끄럽고 예쁜 섬을 어루만지고 있는 그 바다에 가면 긴 불황이 드리운 그림자가 잔잔한 물결에 또르르 말렸다 또르르 흩어져 버린다. 청자빛 하늘이 연초록 물빛에 곱게 물드는 그 바다에 가면 돈가뭄에 허덕이는 온갖 시름을 갈매기가 끼루룩 물고 날아가 버린다. 

덧붙이는 글 | ☞ 가는 길/ 서울-중부고속도로-마산-마산 해안도로-경남대-남부터미널-수정-구복-구복앞바다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태그:#구복앞바다, #저도연륙교, #고깃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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