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야생 멧돼지, 전국 출몰... 농작물 피해 수백억'

사람들 신문에 난 기사를 보니 가슴이 벌벌 떨립니다. 멧돼지 퇴치법으로 ‘호랑이 똥’이 좋다는 민간처방부터, ‘전기철조망’처럼 최신 기술로 우리를 잡을 수 있는 첨단방법도 일러줍디다. 사람들 속담에 “똥 묻은 뭐가 겨 묻은 뭐를 나무란다”는 말이 있지요. 지금 당신들 하는 짓이 딱, 그 짝입니다.

한 번 따져보지요. 사람들이 일구고 개간한 산과 숲은 애초에 우리들이 다니던 길목이고 뛰어놀던 마당입니다. 그런 길목이며 마당이 이제는 오로지 사람만을 위한 도로와 도시로 가득 들어섰지요. 가끔씩 도시를 어슬렁거리는 것은 빼앗겨버린 오솔길을 오가며 지내던 달뜬 추억과 주린 배를 움켜쥐고 졸망졸망 뒤를 따르는 어린 것들을 먹여 살려야하는 어미로서 절박한 본능일 뿐. 당신들을 놀래주려는 생각도 없고 그럴 힘도 없지요.

그러니 제발 우리 멧돼지들 탓하기 전에 살 곳을 몽땅 들어내고 다닐 길조차 꽁꽁 틀어막은 당신들 이기심 먼저 돌아보세요. 자연이 준 온갖 먹을거리를 독차지한 그 끝없는 욕심 없앨 궁리부터 하세요.

농사짓는 분들이 불같이 화를 내는 것도 조금은 이해합니다. 알뜰히 지어놓은 농작물을 엉망으로 만든 것을 보면 호랑이 똥이라도 구하고 싶은 심정이겠지요. 길을 잃고 불쑥불쑥 도시에 나타나 아이들을 놀라게 하는 일도 참 민망합니다.

농사짓는 분들 이해합니다. 그러나 우리도 할 말이 많답니다. 대한민국 환경부 직원들이 우리 사는 곳을 둘러보고 한 말입니다.

"수도권 근처 멧돼지 피해 신고가 빈번한 지역에는 전국 평균인 100㏊당 3.7마리보다, 두 배가 넘는 100㏊당 7.5마리가 살고 있다. 서울 아차산, 동구릉, 북한산, 불암산 따위에도 멧돼지가 자라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북한산 송추와 서울 아차산은 9.9마리나 산다."

100ha 넓이에 멧돼지 겨우 열 마리 정도 모여 사는 셈인데. 도시는 말할 것도 없고 산이며 들, 강이나 바다조차 움켜쥔 사람들 아닙니까. 겨우 멧돼지 몇 마리 정도 다니는 것을 용납 못하다니 참 치사하고 옹졸하네요. 개발(우리가 볼 때는 무식하게 때려 부수는 일)이랍시고 온갖 것을 없애고, 허물고, 태우고 펑펑 쓰는 것을 보니 이렇게 쫓아내지 않아도 얼마 지나지 않으면 사람들만 우글거릴 것 같습니다.

“아차산, 북한산, 불암산에도 멧돼지가 서식한다”는 말에는 “어디 감히 사람 사는 산에 멧돼지가 살아?”라는 사람들 이기심과 독선이 배어있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도시는 사람 차지니 멧돼지는 산으로 갈 수 밖에! 남아있는 멧돼지 식구들 몽땅 끌고 도시로 짓쳐 내려갈까요?

인간들만 사는 곳이 아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묻습니다. 도시는 사람이 차지하고, 뭇 생명이 살아야 할 산까지 당신들이 독차지한다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지 답해주세요. 대한민국 어디에도 발붙일 곳이 없는 우리를 난민으로 인정하여,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할 마음은 없는지요?

멧돼지 삶을 사람들이 좌우할 문제는 아니지만 엽총을 들이대며 함부로 우리 목숨을 앗아가니 드리는 이야기입니다. 난민은 "정치적 압박, 전재(戰災), 자연재해 따위로 생활 근거를 잃고 고국이나 정주지를 벗어나온 자"라니 바로 우리 멧돼지를 두고 하는 말 아니겠습니까.

멧돼지도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자연이 허락한 생명체입니다. 어슬렁거리며 먹이를 찾을 자유, 언제 죽을지 모를 공포감에서 벗어나 사랑을 나누고 새끼를 배고 키울 권리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부탁합니다.

많이 불어났다지만 사람들한테 견주면, 멧돼지 아직 얼마되지 않습니다. 자연을 함께 나누고 멧돼지도 종족을 이어갈 소중한 생명체임을 성찰하며 존중해줄 것을 간곡히 바랍니다.
사람이 등을 돌린 오늘은 멧돼지가 난민 처지지만, 자연이 등을 돌린 내일은 당신들 차례니까요.


태그:#그래!숲, #함께사는 세상, #멧돼지, #자연보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나무와 숲 그리고 조경일을 배웁니다. 1인가구 외로움 청소업체 '편지'를 준비 중이고요. 한 사람 삶을 기록하는 일과 청소노동을 합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