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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설은 듣기만 해도 동심이 솟아오른다. ‘아치’는 작은(小)의 뜻이다. 아치설, 아찬설에서 ‘ㄱ’이 첨가되어 된소리로 변해 까치설이 되었다 한다. 사전엔 ‘설날의 전날을 이이들이 부르는 말’, 즉 섣달 그믐날을 뜻한다. 또 윤극영의 ‘까치 까치설날은’ 동요가 부르게 되면서 까치설이란 이름이 제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고도 한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들이고 

 새로 사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우리 언니 저고리 노랑 저고리 

우리 동생 저고리 색동 저고리

 아버지와 어머니 호사하시고 

 우리들의 절받기 좋아하셔요 

 우리집 뒤뜰에는 널을 놓고서 

 상 들이고 잣 까고 호두 까면서

  언니하고 정답게 널을 뛰고 

 나는 나는 좋아요 참말 좋아요 

 -윤극영 <까치 까치 설날은>전문

 

나다니엘호손의 ‘주홍글씨’엔 세 가지 죄가 묘사되어 있다. 간통사건으로 여주인공 헤스터프린은 ‘펄’이라는 사생아를 낳은 죄로 간통의 첫 글자 A(adultery)를 평생 가슴에 달고 살라는 청교도 형을 받는다. 속죄의 상징으로 ‘드러난 죄’이다. 간통의 상대 목사 아서딤스테일은 죄를 가슴에 숨기고 위선적인 생활을 하며 설교를 한다. 그 죄로 몸이 쇠약해 온다. ‘숨겨진 죄’를 짊어지고 평생을 사는 셈이다. 한편 헤스터의 남편 칠링워트는 의사로 가장해 두 사람의 죄를 밝혀 단두대에 세우려고 안간힘을 쓴다. ‘용서 못할 죄’라 했던가. 하여간에 죄란 드러난 죄도 있고, 숨겨진 죄도 있으며 용서 못할 죄도 있다.

 

우리는 한 해를 살며 많은 죄를 짓고 산다. 그러나 그 죄를 어딘가 털어놔야 속이 시원하겠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종교인이라면 고해성사를 통해 죄를 토해낼 수 있지만 산촌에선 더욱 그럴 기회가 없다. 

 

그러나 기회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 조상들은 섣달 그믐날, 까치설날에 죄를 고백할 수 있도록 세시풍속을 마련해 두었다. 시골집 부엌에 신단을 꾸며놓고 정화수를 떠 바친 ‘삼시랑’ 신주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또 빌면 죄를 사해준다 전해오고 있다.

 

도교에서 파생된 삼시(三尸) 신주가 삼시랑이다. 이 삼시랑은 사람의 착한 일과 나쁜 일을 감시하도록 옥황상제로부터 파견된 스파이다. 섣달 그믐날이 일 년 동안 지은 죄를 상제에게 일러바치는 날이다. 삼시랑은 사람이 잠을 자는 동안 코를 빠져나와 일 년 동안 저질러 놓은 악행을 하나하나 보고한다. 옥황은 보고를 받고 그 사람의 지은 죄를 평가한다. 선행을 했으면 수명을 늘려주기도 하고, 악행을 했으면 목숨을 단축하기도 한다.

 

삼시랑이 하늘로 올라가 상제를 상견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섣달그믐날밤 삼시랑이 코를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잠을 자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섣달 그믐날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세시풍속이 여기서 나온 것이다. 어린 시절 잠이 들면 눈썹이 센다는 어머니 말씀에 졸려오는 눈을 비비고 밤을 새워가며 설빔을 기다리던 어린 시절 추억이 지금도 생생하기만 하다.

 

간첩인 삼시랑이 하늘에 오르건 말건 간에 섣달그믐날밤은 양심의 심판을 받는 날이다. 드러난 죄이든, 숨겨진 죄이든, 용서받지 못할 죄가 이 세상에 어디 있으랴 싶다. 위로는 대통령으로부터 아래로는 촌부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착해질 수 있는 유일하고 소중한 작은 설날을 헛되이 하지 않았으면 한다.

 

조금 전부터 까치소리 ‘까가 각 깍깍’ 섣달 그믐날 적막을 흔들고, 까치설날 밤 축제를 위하려는양 함박눈이 소록소록 자꾸만 내리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다음카페 '북한강이야기' 윤희경 수필방과 북집 네오넷코리아, 정보화마을 인빌뉴스에도 함께합니다.
쪽빛강물이 흐르는 북한강이야기를 방문하면 농촌과 고향을 사랑하는 많은 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태그:#까치설, #까치집, #삼시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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