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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사람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확장하려는 욕구를 가진 존재라고 한다. 아마 상호관계를 중시하는 사람의 속성 때문에 사람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싶다.

 

 나 역시 젊은 날에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요시했었다. 그래서 친구들과 모임을 만들고 또 많은 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즐겨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지속되는 모임과 그 모임의 관계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세어보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 일반적인 인간관계는 5년을 주기로 변한다는 말이 틀리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한 직장에 근무할 때는 날마다 얼굴을 마주 대하면서 업무에 관한 내용은 물론 개인적으로 사는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던 사람일지라도 1년에 한 번이라도 만나자는 구체적인 모임 약속이 없는 경우 그 직장을 떠난 후 술자리를 다시 했던 사람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만난 지 거의 40년 가까운 오래된 모임이 있다. 늦게 대학에 입학한 몇 사람이 모여 사는 이야기 또 살아갈 이야기를 하다가 발전된 모임인데 이제는 안식구들끼리 더 가까운 사이가 된 모임이다. 지난 16일(금요일) 충남 서해안에 있는 무창포에서 그 친구들과 하룻밤을 보내고 왔다.

 

 그런데 묵은 간장 맛을 내는 친구들과 찾아간 무창포는 사람 모이는 우리나라의 여느 해변처럼 시멘트에 덮여 자연스러움을 잃어버린 곳이었다. 우선 거슬리는 것이 백사장과 도로 사이의 시멘트 옹벽이었다. 미관상 좋지 않을 뿐 아니라 모래의 자연스러운 이동을 막는다는 연구 결과를 보았기 때문이다.

 

원래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옹벽 때문인지 확인할 수 없었지만 백사장에는 백사장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만큼 자갈과 조개껍데기가 깔려 있었다. 과연 여름에는 해수욕장 구실을 할 수 있을는지 의심스러운 풍경이었다.

 

 또 해수욕장 건너에 있는 작은 섬까지 시멘트 축대를 쌓아 연결해놓은 길도 보기 좋은 풍경은 아니었다. 멋진 소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진 섬에 울긋불긋한 지붕의 포장마차라니! 강을 파내고 시멘트를 발라 운하를 파겠다는 수작을 보는 것처럼 거슬렸다. 

 

 그리고 또 있었다. 바짝 해안의 풍경을 가린 식당과 모텔, 상가도 자연 환경을 버리고 있었다. 물론 우리나라의 유명한 해수욕장 주변이나 강변 풍경이 식당이나 모텔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래서 무창포만 예외이기를 바란다면 내 욕심일 수 있다는 점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역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기만 했다.

 

 춥고 피곤하다는 친구와 안식구들은 숙소를 찾아 들어가고 세 친구만 작당하여 일탈을 시도했지만 우리가 갈 곳을 찾기란 어려웠다. 허름한 술집에서 지나온 생을 반추하고 자녀들 결혼 따위의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오는 길에 보았던 밤바다만이 위안이었다.

 

 멀리 불빛 몇 개만 어른거리다 사라지는 무겁게 어두운 바닷가를 거닐면서 우리는 해변의  유흥업소나 숙박업소가 문제라는 이야기를 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수변구역정화법이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유흥업소의 허가권이 자치단체에 있기 때문에 통제가 안 된다고 했다.

 

이 때문에 한국의 강변, 호숫가, 해변의 자연경관은 유흥업소나 숙박업소가 독차지하는 지경에 이르고 만 것이다. 강변이나 해변에서 일정한 거리에는 꼭 필요한 공공건물 외에는 건축을 제한하는 법률 제정이 시급한 때가 아닌가 한다. 이미 국립공원 내의 사찰구역을 정화해온 사례를 참고하면 될 것이다.

 

 숙소에 돌아와 여름에 예정된 여행 일정과 코스를 검토하고 한 잔씩 더 나누었지만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만난 지 오랜 친구들과 억겁 세월을 지켜온 바다를 보지 않았다면 여행은 허망하게 끝났을 것이다. 

 

 다음날 아침, 바람이나 쐬자고 혼자 바다 곁으로 나갔더니 겨울 백사장을 찾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한없이 밀려왔다가 포말로 부서지는 파도가 보인다. 내 기억의 흔적은 남에게 전할 수 없는 법. 찰나의 순간이나마 붙잡겠다고 작은 카메라의 스크린을 노려보면서 몇 커트 사진을 담고 돌아섰다.

 

 숙소에 들어오니 솜씨 좋은 친구 부인들이 쑤어놓은 전복죽이 따뜻했다. 이제 새로운 사람을 사귀고 모임을 만들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제 친구들 모두가 건강하여 만남이 더 오래 지속되고 더 많은 이야기를 하며 살 수 있기를 속으로 기원했다.

 

 어제 오후, 광주로 돌아온 이후 나는 줄곧 사상누각(沙上樓閣)이라는 말을 생각한다. 모래위에 지은 집이 오래 버틸 수 없다는 뜻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과의 관계는 물론 매사에 신중하고 진실하게 처신하고 다가올 미래에 대해 빈틈없이 준비하고 살았느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대답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나 역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신 있게 과연 이것은 자랑할 만하다고 내세울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아직 다 살지는 않았으나 지금까지는 준비 부족 혹은 터무니없는 욕심에 갇혀 잃어버린 것들이 더 많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죽으면 이 땅의 한 부분, 모래알 하나도 손에 쥐고 갈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를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무리하게 자연에 상처를 남기고 후손들의 터전까지 훼손해서는 안 되는 일임에도 사람들이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 때문인가?

 

 자신의 선택이 혹시 사상누각을 세우는 길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멀리서 보는 자연의 풍경은 아름답다. 기대를 가지고 갔으나 너무 심한 훼손에 걱정만 안고 돌아온 여행이었다. 사람들의 욕심이 빚은 죄악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글은 한겨레 내 블로그에도 옮긴다.


태그:#사상누각, #무창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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