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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8(일)일. 맑다가 오후에 흐림

 

온평해안도로→섭지코지→성산해안도로→성산일출봉→종달해안도로→구좌해안도로→김녕해안도로→조천해안도로→제주항

 

  마지막 날이다. 엄마가 해주는 맛있는 음식이 있고, 세상에서 가장 편한 집으로 가는 날이다. 해가 뜰 때까지 충분히 자고, 아침식사는 가다 사먹을 요량으로 바로 출발했다. 날씨가 좋고, 모두들 몸 상태가 양호하다.

 

 

자전거도로가 안전하게 잘 정비되어 있고, 왼쪽으로 바다가 잔잔하다. 온평해안도로에 막 들어서서 민박집에서 가져온 귤을 먹었다. 달고 시원하다. 육지에서 바다로 오는 적들을 막기 위해 쌓았다는 환해장성의 흔적을 여기서는 눈으로 잘 확인할 수 있다. 섭지코지와 성산일출봉이 어서 오란 듯이 눈에 가까이 잡혔다.

 

 온평어촌계에서 운영하는 ‘소라의 성 ․ 해녀의 집’에 들러 아침으로 전복죽을 시켰다. 적지 않은 양이지만 남김없이 그릇을 비웠다. 가격을 생각한다면 전복이 너무 적다는 생각을 하는데, 아이들은 자기 그릇에 큰 전복이 3개나 들어있다며 자랑한다. 아이들에게는 어떤 상황도 긍정적으로 바꾸는 힘이 있다. 내가 배울 일이다.

 

  신양해수욕장을 지나는데 무슨 행사가 있는 지 경찰이 도로를 통제했다. 섭지코지에 들어서서 주차장에 자전거를 두고 올인하우스까지 걸어갔다 나왔다. 바다 검은 바위 곳곳에 사람들이 붙어 낚시에 열심인데, 아이들은 이곳에서도 ‘섯다맨’을 자청하며 바위에 돌을 세웠다. 나도 달라붙어 세워보는데 여의치 않다.

 

  성산일출봉을 향해 가는데 반대편 차선에서 반바지와 런닝 차림으로 땀을 흠씬 흘리며 사람들이 달렸다. 우리는 달리는 사람들을 향해, 그들은 우리를 향해 서로 환호하며 파이팅을 외쳐 서로 격려했다. 이 겨울에 살갗을 스치는 찬바람이 오히려 시원하게 느껴질 만큼 힘차게 달리는 서로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주차장에 자전거를 두고, 마치 중국에 온 것처럼 느껴질 만큼 많은 중국단체관광객들과 함께 일출봉에 올랐다. 백록담과 처녀의 젖가슴처럼 예쁘게 곳곳에 솟아 오른 오름이 잘 보인다. 제주도 전역에 368개에 이른다는 오름기행을 해볼 일이다. 일출봉 출입구 쪽에 새해맞이 불놀이를 준비하며 사람들이 장작을 크고 높이 쌓고 있었다.

 

  우도 가는 걸 접고, 점심을 먹으려 식당을 고른 끝에 결국은 여름에 이용했던 흑돼지고기집 ‘푸른제주’에 왔다. 제주특산음식을 먹어보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회와 돼지고기를 파는 많은 식당에서 서로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오겹살에 밥을 먹고 길을 나섰다. 이제 배 출항시간에 맞추려면 부지런히 달려야 한다.

 

 

왼쪽에 바다 건너 우도를 보면서 종달해안도로와 구좌해안도로를 달렸다. 이제 눈에 보이는 풍경과 자전거가 몸에 익숙하다. 행원 풍력시범단지 발전기의 수와 위용에 놀라고, 김녕해안도로 곳곳에 있는 작은 공원 풍치를 즐기며 달렸다.

 

 조천해안도로를 지나 점점 더 번화해지는 시가지가 보이고, 삼양해수욕장을 달리며 우리는 여행이 끝나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아무 탈 없이 무사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 결코 쉽지 않은 길과 짧지 않은 시간을 견디어준 우리 아이들은 얼마나 장한가? 가슴이 먹먹해졌다.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별도봉 옆으로 난 도로를 달리며 제주항을 내려다 봤다. 분명히 있어야할 ‘퀸 메리’호 대신 다른 배가 있었다.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했지만 어딘가에 꼭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내리막길을 아주 빠르게 달려 16 : 50에 터미널에 도착했다.

 

  “목포가는 배 4 : 30에 출항했어요. 혹시 모르니 빨리 2부두에 가보세요.” 자가용에 탄 남자분이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생겼다.

 

26일 박용과 전화통화를 한 것이 화근이었다. 분명히 4 : 30에 출항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배가 5 : 30에 떠난다며 1시간 정도를 더 타다 올 걸 그랬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른 건 생각하지 않았다. 주중엔 5 : 30에 일요일엔 4 : 30에 출항하는 변수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예약된 배표를 보니 분명히 4 : 30이라고 적혀있었다. 치명적인 실수를 한 것이다.

 

터미널에 들어서니 텅 빈 공간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청소를 하고 있었다. 사무실에 사정을 이야기하니 어딘가에 전화를 하고나서 내일 아침 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8 : 00에 출항하는 배를 타라고 했다. 예약된 배표를 다시 쓸 수 있다는 말에 일단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밖으로 나오니 아이들의 아우성이 하늘을 찔렀다. 그러나 헤엄쳐서 갈 수도, 차로 갈 수도 없는 일 아닌가?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간간이 비마져 오는 길을 허탈하게 걸어 연안여객선터미널을 확인한 다음‘친절민박’에 짐을 풀었다. 아이들 집에 배를 놓쳤다는 문자를 보냈다. 아이들도 집에 가고 싶은 열망이 하늘을 찌르지만 자식을 밖에 내놓고, 자나 깨나 걱정했을 부모님들께 정말 미안한 일이다.

 

 민박집에서 소개해준 ‘하나로 국밥’집에서 국밥과 순대, 국수를 저녁으로 먹고, 돌아와 씻지도 않고 잤다.


태그:#DAUM, #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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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놀게하게 하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초등학교교사. 여행을 좋아하고,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빚어지는 파행적인 현상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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