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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구탕은 육질이 쫄깃쫄깃할 뿐만 아니라 국물이 정말 시원하다.
▲ 생아구탕 아구탕은 육질이 쫄깃쫄깃할 뿐만 아니라 국물이 정말 시원하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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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마신 다음날 아침, 생각만 해도 미욱스럽다. 아직 얼큰한 취기가 가시지 않고, 속은 심하게 매슥거린다. 입안이 깔깔하다. 아침도 건너뛰었다. 오전 내내 천당과 지옥을 반복한다. 겨우 찬물만 들이킨다. 숙취 해소는 시간이 약인걸. 한참을 고생한 끝에 이제야 겨우 속이 진정되는 것 같다. 살 것 같다.

점심시간이다. 해장국 생각이 간절하다. 그래서 헛헛한 속을 달래고 싶다. 뭔가 속을 확 풀어줄 수 있는 국물이 없을까? 하지만 뭘 먹어야 할지 고민된다. 마땅히 술꾼이라면, 두주불사하는 주당이라면 더러 겪었을 일이다.

얼큰한 동태찌개 먹을까?’
‘국물이 시원한 복국을 먹어?’
‘아님 콩나물 팍팍 넣고 푹 끓인 아구탕 먹을까?’

식성과 평소 해장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개 숙취해소에는 얼큰한 탕이 먼저다. 개중에는 생뚱맞게도 순대국밥이 좋다고는 하나, 나는 물메기탕을 최고로 꼽는다. 물메기는 지역에 따라 ‘곰치’, 또는 ‘멍텅구리’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남해 삼천포에서는 술독에 빠졌을 때 이보다 더한 명약은 없었다. 국물은 시원하고, 살은 아이스크림처럼 살살 녹으며 담백하다. 그 맛이 깔끔하고 개운해서 일품이다. 그저 속이 뻥 뚫린다. 개인적으로 아구탕보다 낫고, 복지리보다 낫다는 찬사다. 

술 마신 다음날 가장 먹고 싶은 해장국은

그런데 어제 간절곶 해맞이를 갔다가 아내랑 기분 좋게 한 잔을 하였다. 정도가 넘쳤다. 그래서 오전 내내 방안에서 뒹굴다가 겨우 속을 진정시켜 해장국집을 찾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들른 게 아구탕 집이었다. 굳이 그것을 먹어야겠다고 들른 것은 아니다. 주변에 해장국으로 먹을 만한 게 보이지 않은 탓이다. 또한 평소 아구찜이나 아구수육은 즐겨먹었어도 아구탕은 그다지 먹어본 적이 없기에 별로 기대하지 않고 시큰둥한 기분으로 들어갔다.

그야말로 아구 일색이다.
▲ 아구나라 차림표 그야말로 아구 일색이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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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군 언양읍 서부리 ‘동해생아구나라’, 그러나 이 집은 뭔가 다르리라는 기대감이 들었다. 인사치레겠지만 반갑게 맞이하는 말품이 여간 정겹지 않았다. 식당 내부가 여느 가정집처럼 아늑하게 꾸며져 있다. 마치 안방에 든 것처럼 대접받는 느낌이다. 차림표를 내놓는다.

“제일 맛있는 게 무엇입니까?” 
“다 맛있습니다.”

허허허, 이 얼마나 자신감 있는 얘기냐. ‘모든 게 다 맛있다니’, 그래서 생아구탕 2인분을 주문했다. 1인분에 만원이란다. 가격대로 봐서는 대구탕이나 복국(지리)과 비슷하다. 밑반찬을 내왔다. 근데 이게 웬 횡재란 말인가. 아구수육을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구예와 내장 수육이 따로 한 접시 나왔다. 일반적으로 아구예는 싱싱하지 않으면 못 먹는다. 내장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집에서는 기본 차림으로 꼭 내놓는다고 한다. 길손이 생각하기엔 그만큼 살아있는 아구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증거다.

아구예와 내장은 아구탕을 시키면 덤으로 나온다.
▲ 아구예와 아구내장 아구예와 내장은 아구탕을 시키면 덤으로 나온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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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냉이, 일명 ‘와사비’라고 하지요. 그걸 간장에 타서 아구내장을 찍어 먹어 보세요. 맛이 기가 막힙니다. 특별히 얼큰하고 매운 것을 좋아하시면 다대기를 만들어 드세요.”
“네, 나중에 아구탕에 곁들여져 나오는 고기도 고추냉이에 찍어 먹어야겠네요.”
“그럼요. 아구수육은 물론, 아구탕을 먹을 때도 고추냉이가 필수에요.”

친절하다. 그런 덕분에 고추냉이를 찍어서 맛보는 아구예는 고소하고 알싸한 맛으로 혀끝을 감친다. 마파람 게 눈 감추듯 한 접시를 다 비웠다. 마음 같아서는 한 접시 더 요청하고 싶었으나 주문해 놓은 아구탕 먹을 맛에 그만두었다.

“어제 오늘 동해안을 돌아보고 있는데, 이쪽 지방음식점에는 기본 밑반찬으로 꼭 생미역을 내놓더라구요. 무슨 이유가 있습니까?”

“아, 네. 그만큼 생미역이 흔하다는 것이겠지만, 예부터 과메기나 일반 생선을 먹을 때 미역에 싸서 먹었던 관습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그런지 이곳 사람들은 미역국을 끓일 때가 아니면 데쳐 먹지는 않아요. 짭조름한 미역향을 그대로 즐기는 것이지요.”

동해안 포구에 있는 식당에 가면 대부분 밑반찬으로 생미역 반찬을 내놓는다.
▲ 미역무침 동해안 포구에 있는 식당에 가면 대부분 밑반찬으로 생미역 반찬을 내놓는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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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돈나물 무침도 따라 나왔다.
▲ 돈나물무침 바닷가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돈나물 무침도 따라 나왔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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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쳐서 젓국에다 찍어먹는 것만 맛본 길손에게 생미역은 다소 거부감은 있었지만, 그래도 과메기나 생선살을 싸서 먹어보니 한결 감칠맛이 났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듯이 음식 하나에도 그 지방 특유의 조리비법이 스며 있는 것이다.

우와! 이렇게 많이 주는 거예요. 너무 한 가득이다. 하! 국물이 끝내주네요.”
“저희 집에 오시는 손님들이 다 그러세요. 양이 많다고.”
“이렇게 퍼 담아 줘서 남는 게 있어요?”
“그래도 남는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입소문을 타고 오는 손님이 많거든요.”

주인 손이 크다. 아구탕 한 상차림이 가득하다.
▲ 아구탕 차림 주인 손이 크다. 아구탕 한 상차림이 가득하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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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 끝에 아구탕이 나왔다. 뿌연 국물이 먹음직스럽다. 주인 말마따나 식초 한 숟가락을 뿌리고 맛을 본다. 시원하고 뒷맛이 깔끔하다. 콩나물도 아구고기만큼이나 듬뿍 넣었다. 평소 해장국으로 즐겨 먹었던 복국과 대구탕, 메기탕도 다 좋다. 그러나 오늘 새롭게 맛본  아구탕은 정말 국물이 시원했다. 또 육질도 쫄깃쫄깃해서 맛이 더없이 좋았다. 지조를 따지기 전에 단박에 아구탕 애찬가로 돌아앉고 싶을 지경이다.

“근데, 아구란 고기는 대체 어떤 고긴가요?”

“우리 집에서도 아귀를 아구라고 부르고 있지만, 원래 아구는 아귀가 맞습니다. 아귀는 표준어고, 아구는 사투리인 셈이지요. 아귀는 매일 대하는 우리가 보기에도 그 모습이 흉측해요. 깊은 바다에 살아요. 이런 말이 있어요. 누군가 아귀더러 왜 그렇게 생겼느냐고 물었더니 아귀가 사람은 왜 그렇게 생겼느냐고 되묻더래요.

예전에 뱃사람들이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을 때 정작 잡으려고 하는 고기는 올라오지 않고 지지리도 못생긴 고기가 걸렸다고 해요. 하지만 그 모습이 너무나 흉측해서 못 먹는 고기라 생각하고 재수 없다며 바다에 던져 버렸지요. 그때 이귀가 물에 텀벙하고 빠지니까 아귀를 ‘물텀벙’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걸 맛나게 요리하는 법이 생기자 이제는 먹는 사람이 많아 일부러 잡으러 갑니다. 생긴 것은 뭣해도 최고의 고기가 된 것이지요.”

“아구나라에서 자랑삼아 내놓는 아구찜과 아구탕의 비법은 무엇입니까?”

“그것참 어려운 질문이네요. 아구찜과 아구탕은 말 그대로 찜이고 탕이예요. 당연히 양념이 다르고, 조리방법이 달라요. 요리비법은 별게 없어요. 굳이 비법이 있다면 저희 집에서는 냉동아구보다 생아구만을 사용한다는 겁니다. 찜의 경우 콩나물을 살짝 삶아 데치는 것과 아구와 해산물을 익히는 데 있습니다. 너무 익히면 질겨집니다.

이 때문에 해산물이 색깔이 변할 정도로만 익히죠. 물은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콩나물과 아구에서 물이 나오거든요. 그렇지만 찜이 정말 뻑뻑하다 싶으면 그땐 물을 조금 넣어 볶습니다. 이때 방아나 미나리 깻잎을 곁들이면 그 향이 한결 맛깔스럽게 나지요. 양념장이 잘 버무려지고, 걸쭉해지면 접시로 옮겨 담아 참기름, 통깨를 뿌려 마무리 합니다.

아구탕, 지리의 경우는 이와 다릅니다. 육수내기가 관건입니다. 우선 냄비에 물을 넣고 통마늘, 다시마, 고추, 무를 넣어 미리 끓여둡니다. 무 대신에 파뿌리를 넣어도 좋습니다. 콩나물, 무를 나박 썰어 냄비 맨 아래에 깔고 그 위에 후추뿌린 아구만 넣고 끓여요.

물론 다른 집에서는 각종 해산물을 넣는데 그러면 아구 특유의 담백한 맛이 떨어져요. 반드시 소금으로 밑간을 하구요. 파와 양파를 넣고, 살짝 끓이다가 미나리, 쑥갓 넣고 한소끔만 더 끓이면 됩니다.

기호에 따라 빨간 국물 좋아하시면 고춧가루 넣으시면 되지만, 알큰하고 매운 것을 좋아하시면 흰국물에 식초를 서너 방울 떨어뜨리고 다대기를 넣어먹는 게 더 좋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고추냉이 간장소스에다 고기를 찍어 먹어야 제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아구탕 한 그릇에 든 아구살점이 한 그릇이다.
▲ 아구탕에서 건져낸 아구살 아구탕 한 그릇에 든 아구살점이 한 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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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여느 해장국집을 가 봐도 저절로 속이 확 풀리는 해장국은 그 재료의 싱싱함에 있다. 길손이 반한 아구탕의 비법 역시 그 신선함에 있었다. "동해생아구나라", 가족들끼리 가면 더 맛이 좋은 집이다. 살아있는 생아구를 수족관에 놔두고 주문이 들어오면 주인이 바로 잡아서 요리하고 있다. 그만큼 신선함을 보장한다. 음식을 내놓는 주인의 손도 크다. 아구나라에는 아구수육도 있고, 아구찜과 아구탕도 있다. 아구탕은 육질이 쫄깃쫄깃할 뿐만 아니라 국물이 정말 시원하다. 게다가 양도 푸짐해서 정말 대접받는 기분이다.

시원한 아구탕의 비법은 신선한 재료에 있다

일반적으로 아귀(餓鬼, preta)는 또 다르게 지칭되는데, 아귀는, 아귀도(餓鬼道:餓鬼途), 즉 목마름과 배고픔 등 고통으로 가득 찬 세상에 사는 중생을 말한다. 탐욕이 많은 자가 사후에 떨어지는 생존상태로서, 불교에서 육도(六道:지옥·아귀·축생·수라·인간·하늘) 중 하나인 아귀도에 있는 자를 말한다.

아귀는 팔부의 하나. 계율을 어기거나 탐욕을 부려 아귀도에 떨어진 귀신으로, 몸이 앙상하게 마르고 배가 엄청나게 큰데, 목구멍이 바늘구멍 같아서 음식을 먹을 수 없어 늘 굶주림으로 괴로워한다고 한다. 때문에 염치없이 먹을 것을 탐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쓰이거나, 성질이 사납고 지독히 탐욕스러운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아귀 같은 놈이라고.


태그:#아구탕, #아귀, #대구탕, #복국, #아구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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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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