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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자국 외 - 2008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 김애란 (지은이) | 해토

 

요즘 아이를 가진 여자들은 태아에게 좋다는 것은 죄다 하는 게 보편적인 추세다. 중국에선 '소황제'라는 말까지 나돌면서 자신의 아이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희생하고 내줄 태세다. 옛부터 어머니의 마음은 그러했겠지만, 물질만능주의가 판치는 세상에서 그것은 변질 왜곡되어 언제부터인가 뱃속의 아이에게 바르고 맑은 마음과 언행을 전해주기보다, 천박한 물질과 돈으로 태교와 육아 교육을 대신하려는 풍토가 있어 씁쓸하기만 하다. 이에 편승한 국가는 늘 그래 왔듯이 인간의 생명과 출산을 국익을 위한 도구와 수단으로 전락, 이용하고 있다.

 

고귀한 생명을 잉태한 어머니의 마음과 모성본능은 변함이 없겠지만, 아이와 어머니를 둘러싼 세상은 안전하거나 좀체 평화롭지 못하다는 말이다. 이스라엘은 성탄절 전후부터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8일간 습격, 공습해 무고한 어린 아이들까지 죽음으로 내몰고 있고 말이다.

 

그런 소란스런 세상에서 음악은 아이뿐만 아니라 아이를 품은 어머니의 걱정과 불편한 마음까지 편안하고 평화롭게 감싸주고 씻어내준다. 그래서 다들 태교음악을 찾는 게 아닌가 싶다. 파도소리와 새소리, 시냇물소리, 풀벌레소리, 빗소리 등 자연의 소리를 엘가와 슈베르트, 멘델스존, 바흐, 드보르작, 윌리암스 등 유명 음악가의 곡에 맑고 부드러운 오르골 연주에 녹아낸 것은 태초의 그것을 느끼게 하고, 숲속의 요정들이 뿌린 수면가루에 취해 나른한 졸음에 빠지게 한다.

 

늦은 저녁 야채 팔고 돌아온 어머니를 만난 듯 반가운 이의 소설

 

그렇게 티없이 맑고 투명한 오르골로 연주하는 투박하면서도 섬세한 어머니의 노래같은 소설을 얼마 전 접했다. 칼국수집과 어울리지 않는 '맛나당'이란 간판을 내걸고 무쇠칼 하나로 딸 자식을 키워온 어머니의 삶을 단조롭고 차분한 멜로디로 노래한 2008년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속 <칼자국>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문단의 미래를 이끌 2000년대 대표 작가'라는 큰 눈을 번뜩이는 김애란이란 이름의 낯선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인 <칼자국>은 그녀뿐만 아니라 나와 나의 어머니와 나의 어머니의 어머니 모두를 위한 태교음악과 같이 "딩동댕동" 하며 공명할 만한 이야기였다.

 

그녀가 인천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자란 배경이 소설에 고스란히 녹아 있어 그런지 누구보다 친밀했고, 칼국수 간을 하다 뇌졸증으로 쓰러진 어머니의 죽음은 외할아버지를 일찍 보내고 갑작스레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떠오르게 했다. 그녀에게 국수와 김치를 입속에 밀어넣어 주던 어머니의 모습은, 어렸을 적 동네사람들이 집에서 돼지를 잡은 날 간을 삶아 떼어내 입속에 넣어준 어머니의 모습과 겹쳐지기도 했다. 오늘 아침 시원한 김치 콩나물국을 끓여낸 어머니의 뒷모습도.

 

그래서 모진 역경과 고된 삶 속에서 불평 투정없이 묵묵히 가족과 자식 새끼들을 건사해 온 이 땅의 모든 어머니와 딸 자식의 이야기와 닮은, 신랄한 칼놀림으로 생을 살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노래 같은 <칼자국>이란 단편소설에 흡수되지 않을 수 없었다. 바지락이 듬뿍 우러난 뽀얀 칼국수 국물 속에 빠진 국수처럼.

 

그리고 인천 재래시장에서 아이를 밴 몸으로 특수'스댕' 칼을 하나 사서, 죽기 전까지 수차례 손과 국수, 김치, 고깃거리에 칼자국을 낸 어머니 때문에 작가는 "내 심장과 내 간, 창자와 콩팥은 무럭무럭 자라났다"고 소회한다. 임신 3개월째에 맞은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담담하게 그녀는 어머니의 칼로 사과를 깍아 갑작스레 밀려온 허기를 채우며 "아, 맛있다!"를 중얼거린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땅을 일구며 살아온 아버지와 어머니가 매일 같이 해주시는 쌀밥 하나만으로 나의 머리와 팔, 다리가 살지고 살게 하고 있다. 어머니의 칼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마음과 정성, 사랑을 먹고 모진 세상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 같다.

 

그래서 늘 감사하고 고마워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어머니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게 바로 자식이란 존재가 아닐까 싶다.

그 자식은 또 다시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되고.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와 블로거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칼자국 외 - 2008년 제9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김애란 외 지음, 해토(2008)


태그:#칼자국, #이효석문학상, #어머니, #노래, #김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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