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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NGO센터의 송오 대표이사
 코리안NGO센터의 송오 대표이사
ⓒ 함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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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일본 '교토(京都)신문사'에서 근무하는 S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입사 7년차 기자로, 한일 관계는 물론 한센병 환자·이주노동자 등 '마이너리티'와 관련된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사람이었다.

교토 시내의 한 카페에서 S를 만났다. 그는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노라며, 질문을 던졌다.

"원코리아 페스티벌을 알고 있습니까?"

금시초문이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나의 대답에 S의 목소리에는 한층 힘이 실렸다. 그의 이야기에 따르면, 매년 10월 개최되는 '원코리아페스티벌'은 1985년 8월 15일 광복 40주년을 계기로 시작되어 올해로 24주년을 맞이했고, 통일(원코리아)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법, 즉 통일만이 아닌 축제를 통해 다루어보자는 의도에서 기획되었으며, 단일 비정부기구(NPO)가 주최하는 행사 중 2만명 가까운 사람이 모이는 일본 내 최대 규모의 '축제'라는 이야기였다.

'원 코리아'. 제2의 IMF, 방송 총파업, 청년 실업 등 우울한 수식어들이 연말연시를 장식하는 이 때, '하나'된 코리아를 꿈꾸는 이들이 있다는 이야기. 그들이 그리는 하나된 '코리아'는 어떤 모습일까?

S의 소개로 코리안NGO센터의 대표이사인 송오씨를 만날 수 있었다. 코리안NGO센터는 '경계(境界)에서 공생(共生)으로'라는 비전 아래, 원코리아페스티벌은 물론 재일 코리안들의 교육·인권 등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NPO법인이다.

이들의 지원 대상은 비단 재일 코리안 뿐만이 아니었다. 중국·한국 등지에서 일본으로 건너 온, 한반도에 뿌리가 있는 '뉴커머'들, 혹은 브라질·페루 출신 등 이른바 '마이너리티(소수자)'들을 위한 활동을 펼쳐 나가고 있다. 이들의 목표는 하나된 남한과 북한을 넘어 물론 '동아시아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이다.

송씨와의 인터뷰는 지난 23일, 오사카 코리안타운인 츠루하시 근처의 '코리안NGO센터' 사무실에서 이루어졌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 코리안NGO센터는 어떤 곳인가?
"지난 2004년 3월 발족된 단체다. 발족 전에 활동하고 있던 재일 사회의 NGO 단체들이 연합했다. 그 중 하나는 '원코리아페스티발' 실행위원회. 재일 코리안 사회의 입장에서 남북 통일과 화해를 다루는 모임으로 연간 3만명 정도가 참가하고 있다.

일본의 시민 단체가 주최해도 1만명 이상 모이는 행사는 없다. 3만명 이상 모이는 것은 이 페스티벌이 유일하다는 이야기다. 행사는 재일 코리안들 뿐 아니라, 일본인들도 볼란티어(자원봉사)로 참석하고 있다. 아직은 주로 학생들이 많고, 한류 붐 덕분에(웃음) 주부들. 혹은 일반 회사원들도 함께하고 있다. 남북 통일과 동아시아공동체 전체에 메세지성을 갖고 있는 페스티벌로서는 가장 큰 규모라고 생각한다."

- 또 어떤 단체들이 연합했나?
"민족교육문화센터. 주로 민족 교육 활동을 해왔다. 오사카 시내에 있는 공립 초·중·고등학교 '민족학급'이라는 별도의 교실을 만들었다. 전체 105개 정도의 학교가 있는데, 그 학교에 재일 한국인들이 강사가 되어 역사나 문화등을 가르쳐주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세 개의 단체가 연합했는데, 그 중 마지막이 재일한국민주인권연합회다. 이전에 내가 속해있던 곳이기도 한데, 1990년대에는 정치범 석방 운동을 주로 했고, 이후는 전체 코리안들을 위한 인권 운동을 하고 있는 단체다. 이 세 단체가 모여서 구성된 단체가 현재의 코리안NGO센터인 셈이다."

- 활동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역시 가장 큰 것은 민족 교육 보조와 원코리아페스티벌. 이 외에도 '다문화 양성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 오사카의 '이쿠노쿠'라고 1/4 정도가 한반도와 연관이 있는 사람들이 사는 지역이 있다. 말하자면, 수학여행객들이나 교원들을 이쿠노쿠의 코리안 타운 방문을 유치하는 프로그램인 셈이다. 벌써 교원 인권 연수의 일환으로 90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이 곳을 다녀갔다."

- 일본인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좋다. 10년전만해도 코리아 타운에 일본인들이 수학여행 온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한류붐 등으로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바뀌어, 코리안타운에 일본인들이 오는 일이 이상하지 않다."

- 일본 안에서의 재일 코리안. 아직도 차별을 체감하나?
"옛날과 비교하면 정말 많이 좋아졌다. 그러나 아직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일본과 북한 사이에 문제가 있을때는 재일교포에 대한 차별이 심해진다. 조선 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나쁜 짓을 한다거나... 취업의 경우에도 지자체에 따라 다르지만, 이를테면 과장 이상의 결제권을 가진 사람은 될 수 없다거나 하는 등의 차별이 아직 남아있다."

-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정부 차원에서의 대응은 어떤가?
"한국 정부의 경우 민단에 대해서는 일관적으로 지원해주고 있다. 그러나 다른 시민단체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없는 것으로 안다."

- 정권이 바뀌었다. 변화가 있다면.
"글쎄, 재일 사회에 대해서만큼은 이명박 정부의 정책이 후퇴했다고 생각한다. 민단이 재일 사회 전체를 대표하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단지 민단 뿐만 아니라, 작은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 단체라해도, 업무의 실적을 보고 지원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한다고 생각한다."

- 최근 몇 년동안에도, 재일(在日) 사회에 변화가 있었을 것 같다.
"다양화되었다. 젊은이들은 자신의 뿌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일본 국적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고... 사실상 이미 5명 중 4명은 양친 중 한 명이 일본인이다. 과거와 비교하면 일본인과 결혼하는 숫자가 압도적으로 늘었다. 그런 형태의 결혼으로 태어난 아이들, 일본에서는 하프라고 부르지만, 우리들은 긍정의 의미를 더해 '더블(double)'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런 아이들은 22살이 넘어가면 자동적으로 일본 국적을 갖게 된다. 그러나 국적이 다르다고 해서, 그들이 같은 민족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 아이들도 한반도의 역사에 대해 배울 필요가 있고, 제도적 뒷받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한국과 일본. 양국 모두 국적·민족·문화가 다양화 되고 있다. 재일사회도 다양화 되었다. 그런만큼 그에 걸맞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이야기다."

-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재일코리안만이 아니라 더 많은 소수자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싶다. 지난 11월에는 오사카 시내에서 '다민족공생교육포럼'을 열었다. 거기에는 재일 코리안만 아니라 브라질 출신들도 다수 참여했다. 이미 일본 내의 브라질 학교 수는 100개가  넘었다. 그러나 말이 학교지 실은 단순한 학원에 불과하다. 일반 맨션이나 콘테이너 같은 곳에 교실을 만들어, 80명 정도가 한꺼번에 공부를 한다거나 하는 식이다.

포럼에서는 조선학교나 한국계분만 아니라 일본·브라질·페루 아이들이 모여 다문화 교류회를 열었다. 또한 국회의원이나 지자체의원·기업인들이 참여했다. 이런식으로 사회 곳곳을 연계하는 전국적인 플랫폼을 만들어나가고 싶다."

- 한국에서도 재일 동포에 대한 관심이 예전보다는 나아졌다고 본다.
"재일교포분만 아닌, 재외 코리안 전체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본다. 예컨대 역사 책에 외국에 사는 코리안에 대한 역사나 정황을 가르쳐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한국에서 재외동포에 대한 선거권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면 적어도 국회의원들은 조금 더 관심을 가지게 될지도 모르겠다."(웃음)

- 개인적인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어떻게 NGO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나?
"나도 처음에는 재일 교포라는 사실을 부인했었다. 고등학교도 일본명으로 다녔었고, 일본 친구들에게도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숨겼었다. 출신이 시골인데다 재일동포도 적었기 때문에 노골적인 차별을 받은 적은 없다. 그러나 일본사회에 동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이것이 대학에 들어가며 변했다. 당시 한국은 광주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었다. 같은 대학생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또 재일 교포 선배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된 것 같다. 당시 한국의 대학생이라면, 일가 친척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존재 아니었나. (웃음) 그들이 자신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민족 전체를 생각하는 마음. 나에게는 없는 인생관과 가치관을 가진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또한 같은 연대의 사람들이 상처받고 죽어가는 것을, 동시대에 경험했기 대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되었던 것 같다. 현재, 나처럼 NGO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 중의 상당수가 광주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 마지막 질문이 될 것 같다. 앞으로 재일 사회는 어떻게 변화해 갈 것 같나.
"현재도 변화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은 쉽지 않다. 재일코리안은 남과 북의 코리아, 그리고 일본의 잣대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다. 결국 어느 곳도 자신이 있을만한 곳은 없었다. 그러나 마이너스의 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와 같은 글로벌 사회에는 오히려 플러스가 되기도 한다. 재일 코리안들 스스로가 여러가지 차별을 받았기 때문에, 다양한 이데올로기나 내셔널리즘을 초월해, 다양한 사람들을 연계할 만한 경험을 갖고 있다.

재일 코리안들이 숫자는 작지만 이런 연결고리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마이너리티들을 연결하는 존재, 동아시아 공동체를 위해 활약할 수 있는 인재. 그런 인재를 만들기 위한 교육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 세대들은 일본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다음 세대에서는 경계를 넘는 인재들이 나오리라 기대하고 있다."


태그:#재일코리안, #마이너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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