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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3일 아침 경기도 교육청 제12시험장에서 한 선생님께서 제자를 위해 기도하고 있구나. 딸아! 아빠 마음도 똑같단다.
▲ 기도 11월 13일 아침 경기도 교육청 제12시험장에서 한 선생님께서 제자를 위해 기도하고 있구나. 딸아! 아빠 마음도 똑같단다.
ⓒ 박병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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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 드디어 수능시험을 치르고 있구나. '드디어'라는 부사어는 '마침내, 결국'이라는 말과 동의어라서 약간 긴장감이 내재된 수식어라고 할 수 있지. 적당한 긴장은 좋은 결과를 내는데 도움이 된다니 실수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렴.

첫돌을 전후하여 아빠 손바닥 위에 올라 다리를 펴고 양손을 벌리며 재롱을 떨던 딸이 어느덧 고3이 되어 대한민국 대입시 통과의례를 치르고 있다니 빠른 세월을 실감하는구나. 대견스럽다, 딸아!

수시모집에 1차 합격하여 수능 최저등급제만 통과하면 최종 합격을 예정하고 있는데, 어젯밤엔 유난히 떨린다며 불안해하던 모습이 영 마음에 걸리는구나.

"아빠! 정답 내려쓰면 어떡하지?"
"엄마! 어디 절간에라도 안 가는 거야?"
"엄마, 아빠! 나 정말 잘 볼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아빠 엄마 주변인들께서 마음을 담아 건네주신 엿, 초콜릿, 찹쌀떡 상자와 만점을 상징하는 만 원권 봉투 등을 뜯으며 위안을 삼던 너의 모습이 겹치는구나. 부디 실수하지 말고 차분하게 최선을 다하렴.

딸아! 오늘 아침 시험장 정문 풍경이란다. 아빠도 함께 응원한단다.
▲ 응원 딸아! 오늘 아침 시험장 정문 풍경이란다. 아빠도 함께 응원한단다.
ⓒ 박병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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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아빠는 수능대박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실수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렴.
▲ 수능대박 딸아!아빠는 수능대박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실수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렴.
ⓒ 박병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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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 초중고 12년 동안 그럴싸한 사교육 한번 받지 않고 자력으로 여기까지 버텨 준 것이 무엇보다도 자랑스럽다. 세상이 아무리 하늘 같은 대학이라며 '스카이'를 우러러봐도 이 아빠는 우리 딸이 진학하는 대학이 곧 하늘 같은 대학이라 믿으며 지지하고 성원해주련다.

딸아! 정규수업, 방과후학교, 야간자율학습 등 웬만한 나라들이 믿을 수 없는 고교생의 하루 일과를 거치며 얼마나 고생이 많았니? '다시 태어나면 대학입시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던 넋두리도 이젠 끝이로구나.

그렇지만 딸아! 아빠가 보기엔 대입 수능시험 결과도 걱정되지만 수능시험 이후가 더 걱정되는구나.

"아빠! 수능 끝나면 건드리지 않을거지?"
"아빠! 수능 끝나면 코 세워줄 거지?"
"아빠! 수능 끝나면 귀 뚫어도 되지?"
"아빠! 수능 끝나면 치마 길이 제한 없기다!"”
"아빠! 수능 끝나면 아르바이트 해서 등록금 벌어볼까?"

수능을 며칠 앞두고 문득문득 건네는 황당한 질문과 통보하듯 내뱉는 어투에서 아빠의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고는 말하지 않으련다. 그 무엇보다도 수능 끝나면 준비해야 할 것들이 고3 시절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구나.

코 세우고 귀 뚫고 짧은 치마를 입고 자유를 누리고 싶은 충동마저 나무라지는 않으련다. 다만 아빠가 판단하기에 수능 시험 이후 우선 해야 할 일은 외면이 아니라 내면을 잘 가꾸는 일이라고 본다. 고교 시절 3년 동안 대입시 준비에 억눌려 지낸 결과가 외모 지상주의로 연결되어 자칫 더 소중한 내면을 도외시할까 걱정이 앞서는구나. 기우겠지?

딸아! 그 어떤 말보다도 '아르바이트해서 등록금 벌어볼까?'라는 말 앞에서는 아빠 가슴이 철렁했구나. '한 학급 1등부터 15등까지 사교육 안 받은 친구가 없다'는 상황에서도 내 딸은 견고하게 학교 교육만으로 잘 버텨주었으니 등록금은 순전히 아빠가 준비할 몫이라고 믿는다. 그러니 약한 몸으로 함부로 일터에 뛰어들지 말고 차라리 여행을 하고 독서에 열중하거라.

딸아! 지금은 2008년 11월 13일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려면 아직도 3개월 가량이나 남아 있단다. 그러니 엄연히 고등학생인 거다. 그런데 왜 이 나라는 수능 시험만 마치면 고등학교 시절이 다 끝난 것처럼 공백기가 생기는지 알 수가 없구나.

학교마다 수능시험을 마친 고3 수험생들을 위해 특성화된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인성교육이 가미된 생활지도 대책을 세우고 있다니 일단 안심은 된다만, 일탈을 꿈꾸는 청소년들이 싸구려 어른 흉내를 내며 자칫 방종이나 방탕의 덫에 걸리지나 않을까 염려되는구나. 이 또한 기우겠지?

딸아! 그토록 내 딸과 우리 가족을 옭아매던 대학수학능력시험도 잠시 후면 끝이로구나. 그 수능시험 끝 바로 다음에 아름다운 고교 시절을 마무리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거라.

평생을 살면서 좋은 친구,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것이 경전 수백 권을 읽는 일보다 낫다는 말이 있단다. 이 말을 명심하며 고교 시절 아름다운 마무리를 기대한다.

그러므로 아빠는 수능 시험을 마치는 딸에게 '노터치'가 아니라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으로 바라볼 것임을 천명한다. 아울러 코 세우는 것, 귀 뚫는 것, 치마 길이 제한 없는 것, 아르바이트해서 등록금에 일조하는 것 모두 모두 유효하나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것도 명심하거라. 

애썼다, 딸아! 어서 나오렴. 정답 확인은 나중으로 미루고 예쁜 딸이 좋아하는 시원한 냉면이나 한 사발 먹으러 가자구나. 야호!



태그:#수능 시험, #수능 시험장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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