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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누적과 풍부함이라고 하는 것은 분명히 눈에 가장 잘 띄는 특징이다. 통조림, 의류, 식품 및 기성복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백화점은 풍부함의 일차적인 풍경이며 기하학적인 장소와 같다.

그러나 백화점만이 아니라 상품으로 가득 찬 휘황찬란한 진열장 (어디에도 반드시 조명이 있다. 조명이 없으면 상품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만 눈에 들어올 뿐이다) 및 육류진열대의 모든 통로,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식료품 및 의류의 향연은 마법처럼 침샘을 자극한다.

이러한 사물의 누적에는 생산물의 총합 그 이상의 것이 있다: 과잉의 증거, 희소성의 주술적 및 결정적인 부정, 모성적이며 호화로운 꿈의 나라의 예감이 존재한다. 시장, 상점가, 슈퍼마켓은 이상할 정도로 풍부한, 재발견된 자연을 흉내낸다: 그곳은 우유와 꿀 대신 케첩과 플라스틱 위에 네온의 불빛이 흐르는 현대의 가나안 계곡이다.

아무래도 좋다! 사물이 충분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많이 있으며, 더욱이 모든 사람을 위해서도 너무 많이 있다고 하는 강렬한 기대가 그곳에 있다. 당신은 굴, 육류, 배 또는 통조림으로 된 아스파라거스의 지금이라도 무너질듯한 피라밋을 손에 넣은 셈치고 그중에서 조금만을 사는 것이다.

전체를 위해서 부분을 산다고 하는 것이다. 소비물자와 상품에 대한 이 환유적(換喩的)이고 반복적인 언설은 과잉 그 자체에 따른 집단적인 하나의 큰 은유에 의해서 다시 증여(don)의 이미지, 즉 무궁무진하며 눈부신 윤택함의 이미지가 되는 것인데, 그것은 축제의 이미지와 다를 바 없다. - 장 보드리야르 <소비의 사회>

니체가 말했던가. "허영심이 없었다면 인간의 마음은 얼마나 가난했을 것인가. 그러나 허영심이 있었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은 상품을 가득 채워 놓고 또 수시로 보충해서 온갖 고객을 유혹하는 백화점과 같다. 고객은 거의 모든 것을 발견하고 입수할 수 있다. - 다만 통용되는 화폐(곧 찬탄)를 갖고 있는 한."(<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자유정신(自由精神)을 위한 책>) 

니체와 장 보드리야르는 백화점의 휘황찬란한 진열장 너머에 존재하는 공허함, 허영심, 교묘한 위장(기만) 전술을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그러나 오늘날 일반 대중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자본과 미디어의 세례 속에서 니체와 보드리야르가 보여준 날카로운 폭로와 냉소, 비판정신을 잊은 지 오래다.

얼마 전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이론을 언급한 적 있는데(미국인이 전쟁에 무감각한 이유) 오늘 인용한 대목에도 예외없이 시뮬라시옹 - 가짜와 진짜의 구분이 없는 환상(이미지)의 세계 - 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보드리야르는 산더미처럼 상품을 쌓아 올린 백화점의 진열대에서 거대한 환상(이미지)의 구조물인 피라미드를 발견한다. 각종 조명 기기들의 호위를 받으며 진짜 피라미드 못지 않은 위용으로 우뚝 서 있는 재화(財貨)의 피라미드. 그 앞에서 대중(소비자)이 느끼는 감정은 이집트의 거대한 석상이나 피라미드를 보았을 때의 위압감, 경외감과 다를 것이 없다.

피라미드 외에 보드리야르가 포착한 또 다른 이미지는 성경 속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계곡"이다. 그의 말을 빌면 "그곳은 우유와 꿀 대신 케첩과 플라스틱 위에 네온의 불빛이 흐르는 현대의 가나안 계곡"이다. 백화점이나 대형할인점의 통로는 단순히 이동(보행)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자본의 세례로 온몸을 적시는 재화(財貨)의 요단강인 셈이다.

그러나 재화의 피라미드로 소비자를 위압하고 자본의 세례를 퍼붓는다고 해서 소비자의 돈지갑이 저절로 열리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의 돈지갑을 열어젖히는 결정적 메커니즘은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전체를 위해서 부분을 산다" 다시 말해 "부분을 취해 전체를 공유"할 수 있다는 환상이다. 보드리야르 식으로 설명하면 "당신은 굴, 육류, 배 또는 통조림으로 된 아스파라거스의 지금이라도 무너질듯한 피라밋을 손에 넣은 셈치고 그중에서 조금만을 사는 것이다."

"전체를 위해 부분을 산다"는 원리는 TV CF의 주요 전술(전략)이기도 하다. 화면 가득 펼쳐지는 풍요로움, 낭만, 환상의 세계에 당신도 얼마든지 동참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각종 CF는 "부분을 취해 전체를 공유할 수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로 소비자를 유혹한다. 백화점 진열대를 장식한 재화의 피라미드가 TV 화면 속으로 자리를 옮겼을 뿐 보드리야르가 말한 그대로다.

이처럼 우리 일상을 거미줄처럼 빈틈없이 포획하고 있는 자본주의 메커니즘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교활하고 영악스럽다. "손님(소비자)은 왕"이란 구호는 세련된 상술에 불과하고, 우리에게 꿈과 환상의 세계로 각인되어 있는 테마파크는 구매력을 담보한 소비자들을 제한된 공간과 시간 속에 몰아 넣고 소비를 유도하는 상술의 경연장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도 소비 생활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때나 가능한 일이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사고 싶어도 살 돈이 없고 팔고 싶어도 팔 물건이 없게 된다. 그와 더불어 풍요와 낭만의 장밋빛 환상도 거품처럼 소멸된다. 보드리야르가 "소비의 사회" "시뮬라시옹" 등의 개념에 천착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는 단순한 물물교환에서 벗어나 무형의 환상, 이미지, 추상적 가치를 사고파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로 인해 경제 공황은 물질적 토대를 붕괴시킬 뿐만 아니라 거품처럼 쌓아 올린 장밋빛 환상과 희망을 송두리째 제거함으로써 정신적, 심리적 붕괴로까지 이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위기에 처한 한국경제가 하루빨리 안정을 되찾아 최악의 정신적, 심리적 붕괴로까지 이어지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소비의 사회

장 보드리야르 지음, 이상률 옮김, 문예출판사(1992)


태그:#보드리야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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