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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급한 상황을 당하여 허둥대다 큰 실수를 범하는 표현에 세 가지가 있다.

 

'똥 오줌을 못 가린다'는 말은 육체적 순환기 시스템이 작용 안 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이 보다 좀 심한 말에 'X인지 된장인지 못가린다'는 말이 있다. 이건 정신기능이 잘못되어 빛깔만 같다고 X를 된장 다루듯 하는, 말하자면 노망기가 든 경우이다. 다음, '물불을 못가린다'는 말은 물에 뛰어들 것을 불에 뛰어드는 경우로 자칫 목숨까지 앗아갈 수 있기에 가장 위험한 경우다.

   

최근 대공황에 버금가는 금융위기를 당하여 시장에 던지는 MB정권의 처방을 보면 위 세 가지 '못 가리기' 중 두 개는 해당하는 것 같다. 급기야 외신들까지도 한국 경제정책의 리더십을 못 믿겠다며 국가신인도 등급을 낮추고 있다.

 

최근의 예만 보자.

 

국내 건설사들이 부도위기에 몰린 건, 공급이 유효수요보다 턱없이 과잉되었기 때문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인데 MB는 '그린벨트를 푼다', '수도권 규제조치를 완화한다'는 식으로 거꾸로 공급을 더 늘이는 정책을 내 놓았다. 이는 틀림없이 위기에 편승하여 한몫 챙기려는 자들이 정책결정권자의 뒤에 숨어 있는 걸로밖에 안 보인다.

 

역발상(逆發想)이란 원인과 약효를 정확히 알고 자신의 취약 부분을 오히려 강점으로 바꾸는 것, 말하자면 정확한 처방인데 일반인이 보기에 거꾸로인 것처럼 인식되는 것이지, 배고픈 사람에게 소화제를 처방하는 것처럼 헛발상 내지 자충수를 두는 것은 아니다. 불난 집에 소방차가 아닌 화염방사기를 보내는 당국을 누가 신뢰하겠는가?

 

그루쉬 장군과 강만수 장관

 

그럼에도 MB는 위기관리의 문제아로 등장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교체하라는 시장의 요구를 묵살하고 철통같은 신뢰를 보이고 있다. 아마 '강을 건널 때는 말을 바꿔 타지 말라'는 속담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

 

강만수 장관을 보면 꼭 워털루전쟁 때 나폴레옹 휘하에 있던 그루쉬 장군을 연상시킨다. 그루쉬는 중간 정도의 능력에 선량하고 정직하고 용감하고 신뢰할 만한 기병대장이었다. 20년간 스페인에서 러시아까지 모든 전장에서 싸워 차근차근 원수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열렬한 전사도, 전력도, 전장의 전설도 없었다.

 

워털루전쟁 하루 전날, 나폴레옹은 그루쉬에게 군대의 3분의1을 거느리고 자신이 영국군과 싸우는 동안 프로이센 군대를 추격하라며 추격전 동안 끊임없이 본대와 연락하라는 명령을 동시에 내렸다.  그는 명령을 받고 안개 속에서 프로이센군을 따라갔지만 적은 보이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멀리서 대포 소리가 들렸다. 몇몇 장교들이 소리의 진원지가 어딘지 가늠하기 위해 땅바닥에 엎드려 귀를 대어 보았다. 워털루 전투가 시작된 것이었다. 그루쉬 휘하의 부사령관 제라르가 강력하게 요구했다.

 

"대포소리를 향해 진군해야 합니다! 얼른 돌아갑시다!"

 

그러나 그루쉬는 프로이센군의 퇴로를 추격하라는 황제의 종이 쪽지에만 매달렸다. '황제의 명령은 추격하라는 것이다. 돌아가면 문책받지 않을까….'

 

부사령관 제라르는 최후 시도로 자기 연대와 약간의 기병대만이라도 갈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했지만 그는 이마저도 묵살했다. 그 시간에 나폴레옹은 웰링턴과 필사의 싸움을 벌이고 있었고 양측 모두 핵심전력을 다 탕진하고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비축병력도 없었고 원군이 먼저 도착하는 편이 이기게 되어 있었다. 웰링턴도 나폴레옹도 망원경만 들여다 보고 있었다.

 

그때 나타난 건 도망가는 척 우회해서 돌아온 블뤼허의 프로이센군이었다. 그리고 지쳐서 너덜너덜해진 프랑스 군대의 측면을 짓밟았다. 웰링턴의 승리였다. 한 소심하고  평범한 인물로 인해 비범한 영웅의 20년 세월이 무너져 내렸다.

 

나폴레옹이 그루쉬를 마지못해 쓴 건 이미 그의 곁에 있던 네이, 뮈라, 드제, 클레버, 린네처럼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전사한 때문이었다.

 

MB와 박정희

 

그러나 MB는 강만수 외에도 얼마든지 기용할 인물들이 많은데 왜 강만수에 집착하는 걸까? 시중에서 MB-강만수를 '리만 브라더스'로 조롱하는 걸 모를까?

 

동생은 이미 226억 달러를 환율방어 명목으로 허공으로 날렸다. 말하자면 그루쉬가 병력을 보내야 할 때 안 보낸 것처럼, 안 보내야 할 때 병사들을 보내 개죽음 시킨 꼴이다.

 

동생의 퇴진을 미루다가 형님, 동생 동시 퇴진할 사태가 오리라는 건 짐작하지 못하는 걸까? 혹 MB는 나는 원조 보수우파의 적자(適子)니까 보수 우파들과 좌파에 신물난 국민들이 나를 끝까지 지켜줄 거라고 믿는 걸까? 천만의 말씀이다.

 

소위 보수우파의 대표적 존경인물인 박정희와 MB를 비교할 수 있는가? 박정희는 문제를 직시하고 정공법을 섰지 꼼수를 쓰지 않았다. 외화가 없어 경제를 일으킬래야 밑천이 없던 시절, 독일 뤼브케 대통령에게 가서 무릎 꿇고 빌어 광부와 간호사를 '인질'로 보내 차관을 얻었다.

 

월남전 참전 요청을 받자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잔인 줄 알고(피로 도운 혈맹을 배신할 명분이 어딨겠는가?) 그 대신 피값을 톡톡이 받자고, 그 당시로 말하면 전대미문의 달러를 거둬 들였다. 말하자면 박정희는 역발상의 천재였다.

 

또 1차 석유파동이 나자 청와대 실내온도부터 낮추고 군파카를 입고 근무했다. 죽어서도 의사가 "헤진 허리벨트 때문에 설마 대통령인 줄 몰랐다"고 할 정도로 검소했으며 솔선수범했다.

 

그런데 MB는 어떠한가? 소위 명품을 입고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명품족 장관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나도 어릴 때 고생을 너무 해서 고생이 뭔지는 쬐끔 압니다." 이 말이 성난 국민들에게 먹혀 들어갈 거로 보는가?

 

수시로 굶은 사람을 보고 "단식 좀 더 하십시오. 건강에 좋답니다"라고 나오는 게 지금의 MB식이다. 형님은 '물불을 못 가리는' 정책으로, 동생은 'X인지 된장인지' 모르고 나서서 국가를 위기에 몰아 넣고 '금융난은 세계적 추세'라며 뒷짐지고 있는 게 오늘 한국의 리더십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정공법을 써야 한다. 차라리 산유국들에게 특사를 파견하거나, 자신이 뛰어가서 이렇게 빌면 어떨까?

 

"우리 한국, 지금 달러가 부족합니다. 달러 용처 중 제일 많은 게 석유대금입니다. 그걸 줄이자니 석유화학 제품 수출을 못하니 도로 역효과입니다. 3년간만 외상으로 봐 주면 안 되겠습니까? 꼭 갚겠고 필요하다면 보증인도 세우겠습니다."

 

물론 "야, 석유값 떨어져 분통터지는데 불난 집에 부채질 하니?"라고 나올 것이다. 그러기에 협상력이 필요하고 외교가 필요한 것이다. 어떡하는가? IMF 신세를 지기 싫으면 그렇게라도 해야지?


태그:#금융위기, #강만수 , #IMF,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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