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뱀신랑 설화'를 바탕으로 한 오영진의 <맹진사댁 경사>를 새로이 각색하여 만든 창극 <시집가는 날>. 지난 2006년 국립창극단 젊은 주역들이 열정으로 뭉쳐 큰 성공을 거둔 후 20회 이상 지방순회공연을 벌였고 전국 관객들에게 유쾌한 해학과 재미를 선사하며 해가 갈수록 인기를 얻고 있다.

 

입분을 좋아하는 삼돌이의 닭살스러운 애정행각, 맹노인의 우스꽝스러운 춤과 소경점쟁이의 구성진 소리가락, 참봉의 넉살스러운 연기 등이 어우러져 극의 흥겨움과 재미를 더한다.

 

형제명창 왕기철·왕기석씨가 각각 판서댁 도령인 미언과 맹진사역을 맡았고 지난 5월 전주 대사습에서 장원을 차지한 김금미씨가 맹진사 부인인 한씨역을 맡았다. 영화와 드라마로 활동의 폭을 넓히며 다양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김학용씨가 맹노인역을 맡아 특유의 유머와 구수한 입담을 발휘한다. 남상일은 타고난 재능과 끼로 소경점쟁이와 참봉역을 넘나들며 관객들에게 웃음과 재미를 선사했다. 창극 <시집가는 날>은 한국적 해학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판소리가 갖고 있는 음악적 특성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작품에 반영하고, 배역에 맞는 너름새와 굿의 활용, 해학적 요소를 극대화시키는 마당놀이형식을 활용한 구성으로 찰지고 구수한 옛날이야기를 포근하고 흥겨웁게 들려주는 주호종 연출가. 우리의 음악적 뿌리를 바탕으로 한국적 뮤지컬의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고 있는 <시집가는 날>을 연출한 주호종씨를 지난 20일 오후 늦게 사천시 문화예술회관 야외테이블에서 만났다.  

 

"해학적 표현이 관객들에게 감동과 재미 주나봐요"

 

- 사천시에서 공연을 앞두고 있는데 공연이 올해로 몇 번째인가요?

"<시집가는 날> 지방순회공연 횟수가 2007년에 10회, 2008년에는 사천시까지 현재 11회고, 공연예정지인 태안, 서울, 제천 등을 합하면 15회가 되겠네요."

 

- 지방순회공연을 20회 넘겼는데 지방관객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중학교 교과서에도 나오고 연극이나 드라마로 만들어져 많이 알려진 작품인 오영진의 <맹진사댁 경사>를 창극으로 각색하여 만든 거라서 관객들이 어느 정도 스토리를 알고 있어요. 근데 이번에는 원작에 없는 장면들을 몇 개 넣었거든요.

 

가령 맹진사 부인 한씨가 딸인 갑분이와 판서댁 아들인 미언이의 궁합을 보러 점집에 갔는데 소경점쟁이가 궁합을 보면서 두 사람의 미래에 대해서 '경사는 경사인데 이게 묘하다. 이게 바뀌었다'하면서 우리전통 굿음악을 연주하거든요. 근데 이 배우가 상당한 재주를 가졌어요. 멋들어지면서도 재미있게 소리와 굿연주를 해요. 이게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어내고 있어요.

 

판서댁 도령인 미언이가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맹진사댁에 나타나서 사위가 될 미언이가 살짝 문제 있는 친구라고 하면서 춤으로 어떤 흉내를 내요. 정말로 절름발이 흉내를 내는게 아니라 춤으로써 미화시켜 보여주는 장면인데 참봉도 그렇게 하고 미언이도 그렇게 하고 맹진사도 맹노인도 그렇게 하는 모습에서 해학이 묻어나요. 그게 재미있고 웃기거든요. 객석에서 웃음이 터지고 손뼉을 치며 박장대소해요. <맹진사댁 경사>에 나오지 않는 그런 장면들을 재미있게 해학적으로 표현해 봤는데 이런 것들이 관객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는 것 같습니다."

 

- 재미를 더하는 해학적 요소들의 삽입이 연출의도와 관계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런 면이 있죠. 일단은 관객들에게 쉽게 접근 하자. 판소리만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춤과  민요, 굿음악들을 창극 속에 집어 넣어서 좀 더 다양화시켜 보자. 그래서 관객들이 더 쉽게 느끼고 마음껏 웃고 즐길 수 있게끔 만들어 보자라는 게 연출의도였죠.

 

판소리를 하게되면 관객들이 무슨 이야기인지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이 있잖아요. 그래서 이런 부분들을 쉽게 풀었어요. 이게 춘향전이나 심청전처럼 무거운 주제도 아니고 내용자체도 그렇게 어렵지 않아서 100%는 아니더라도 90%정도는 관객들에게 전달이 잘 될것으로 생각했어요.

 

그래서 관객들도 판소리나 창극을 평소에 잘 접하지 못하니까 '어렵고 재미 없을 것이다'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오셨다가 막상 와서 보니 창극도 이렇게 재미있구나, 이렇게도 풀어갈 수 있구나라는 그런 느낌을 받는 것 같아요.

 

- 연출의도를 한마디로 말해서 '쉽고 재미있게 만들자' 이거 맞습니까?

"지방에는 창극을 하는 곳이 많지 않아요. 시민들은 자주 접할 기회가 없으니 창극은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다고 선입관을 가져요. 서양뮤지컬처럼 보러가야지 이래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거죠. 그러니까 한 번 우연찮게 창극을 보러 온 사람에게 '아, 이게 너무 어려운 것만은 아니구나. 재미있더라.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창극을 또 보러 가야지'라는 생각들게 하는 그러한 창극을 만들고 싶었어요."

 

"배우들, 지역 특색에 맞게 애드리브 해요"

 

- 어려움은 무엇이었나요?

"<맹진사댁 경사>를 창극으로 끄집어내기에는 내용이 현실과 맞지 않잖아요. 지금은 양반 상놈이 있는 세상도 아니고. 신분차이가 없는 2000년대에 신분차이를 가지고, 그것도 결혼을 가지고 창극을 한다는게 관객들에게 과연 어필이 될 수 있을까 걱정이었죠.

 

그래서 '시집가는 날'을 처음 만들었던 2006년에는 삼돌이의 죽음으로 극을 시작했어요. 삼돌이가 입분이를 사랑했는데 양반들의 권력에 의해서 입분이가 갑분이 대신에 강제로 시집을 가버리게 되니까 삼돌이가 자살을 하거든요. 처음에는 그렇게 이야기를 풀었거든요. 양반들 권력속에서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삼돌이의 사랑을, 진정성을 담아보려고 했었어요.

 

근데 사랑이라는 주제가 죽음으로 간다는 것도 뭔가 맞지 않는 것 같고 분위기도 무거웠죠. 오히려 관객들과 더 흥겹게 어우러지는 게 낫다고 판단해서 해학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향으로 돌렸죠. 무거운 것보다는 즐겁고 신나는 부분, 흥겹고 신바람나고 해학적인 우리음악의 장점을 충분히 풀어내자 그랬죠."

 

- 본래는 창극을 마당극형식으로 만들었다고 하던데요.

"배우는 배우 대로 관객은 관객 대로가 아니라 배우와 관객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놀이판 형식을 좀 취해보자고 해서 처음에는 창극을 마당놀이형식으로 만들었어요. 근데 이것을 정말 마당놀이형으로 만들어버리면 창극이 아니라 마당놀이극이 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이후로는 배우들이 공연상황과 지역특색에 맞게끔 애드리브를 자주 하는 방향으로 나갔어요. 예를 들면 소경점쟁이가 미언이와 갑분이의 궁합풀이를 해주는 장면에서 삼천포에서 많이 잡히는 쥐포나 죽방멸치 이야기를 언급하는 것 등이 여기에 해당하지요."

 

- 관객들 반응이 뜨겁고 우렁찬 박수가 터져 나오면 배우들이 흥이 올라서 즉흥적인 대사와 몸짓을 더 많이 하게 되나요?

"국립창극단 배우들은 상당한 재주들을 가지고 있거든요. 연기를 하면서 관객들의 웃음소리나 반응들을 다 읽어요. 관중들과 호흡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요. 배우들은 객석과 호응하면서 무엇을 받고 던질 것인지 생각하면서 무대에 서죠."

 

- 관객들 호응이 부족하거나 객석이 듬성듬성 비어있으면 배우들 위축되는 경우는 없나요?

"물론 그럴수도 있죠. 그렇지만 배우들은 관객이 1명이 오건 100명이 오건 사람이 적다고 대충하지는 않습니다. 10명이 와도 1000명이 온 것처럼 열과 성의를 가지고 최선을 다하죠. 근데 배우들은 정말 열심히 하지만 어떤 때는 배우와 객석이 분리되는 상황이 일어나는 수가 있어요. 객석의 반응에 의해서 배우들이 처질 수가 있어요. 그건 살아있는 인간이다보니 어쩔 수가 없어요. 그것은 <시집가는 날> 뿐만아니라 모든 공연이 다 그러지 않을까 싶네요."

 

"양반 어투 표현하려고 충청도 사투리로 바꿨어요"

 

- 판소리하면 전라도 사투리잖아요. 근데 이번 창극에서는 충청도 사투리를 쓰던데 이렇게 바꾼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맹진사가 원래 양반가문이 아니라 사실은 돈을 주고 양반을 샀지요. 하지만 그래도 맹진사 신분이 양반인지라 양반의 어투를 표현하려면 아무래도 충청도 사투리가 더 좋지 않을까해서 충청도사투리로 바꾸게 됐어요. 또 '그랬시유 저랬시유'라는 충청도 말투가 정감도 있잖아요. 원작말고 창극대본을 정리했던 사람도 충청도 출신이에요."

 

- 리허설 할 적에 배우들 대화속에 가끔 전라도 사투리가 배어나오던데, 배우들이 충청도사투리로 바꾸니까 힘들어 하지 않던가요.

"하하, 그렇죠. 연습할 적에는 입에 붙었다가도 시간이 조금 지나가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도 하죠."

 

- 소경점쟁이가 참봉으로도 나오고 그러던데 이번에는 어떤 배우들이 창극에 참여했나요?

"맹진사 역할은 국립창극단의 주역으로써 30년 가까이 활동을 해왔던 왕기석씨가 맡았고, 맹노인역을 맡고 있는 김학용씨는 영화에도 출연한 적이 있는 상당한 재주꾼이죠. 남상일씨가 참봉역할도 하고 소경점쟁이 역할도 해요. 처음에는 참봉, 소경점쟁이 배역을 따로 할까 했었는데 이 배우가 가지고 있는 연기와 재능이 뛰어나 그 재주를 관객들에게 충분히 보여주자는 생각에 두 배역을 맡겼어요. 소경으로 나왔던 사람이 참봉으로도 나오는데 그 모습이 이렇게 다를수가 있구나 라는 것을 의도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그렇게 했어요.

 

판서댁 도령인 미언으로 나오는 왕기철씨도 전주대사습에서 대통령상을 탄 이 시대 젊은 소리꾼으로서는 최고죠. 맹진사 부인 한씨역으로 나오는 김금미씨도 전주대사습에서 대통령상을 탔지요. 극중에 나오는 많은 배우들이 젊지만 모두들 상당한 실력자들입니다."

 

- 배역은 어떤 식으로 정했나요?

"이번에 나오는 배우들은 아무나 선택해서 배역을 맡긴 것이 아니라 그 배역에 맞는 배우, 그 배역을 잘 소화해 낼 수 있는 배우가 누구라는 것을 미리 파악해서 배역을 맡겼어요. 그래서 극중 인물을 더 잘 표현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신부가 뒤바뀌는 장면도 있고, 미언도령이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미언이가 절름발이라는 헛소문을 내서 사랑의 진정성을 떠보는 장면도 있는데 극중 꼭지점은 어디인가요?

"주제가 사랑이다보니 어디가 정점이다라고 꼭 집어서 이야기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만 굳이 이야기한다면 사랑의 열매, 결실을 맺는 부분인 극중 제일 뒤편의 '경사다! 경사여!'하면서 나오는 첫날 밤 장면같네요. 판서댁 도령인 미언이와 맹진사댁 몸종인 입분이의 첫날 밤에 이뤄지는 대화가 꼭지점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 그게 어떤 내용인가요?

"입분이가 자신은 모르고 결혼했다. 그래서 지금 이 자리는 내자리가 아니다고 해요. 하지만 미언도령은 나는 마음씨 착하고 고운 당신을 신부로 선택했다, 내가 찾는 사랑은 진정성이 담긴 순수하고 착한 사랑이지 부귀만을 쫓아오는 그런 사랑이 아니다라는 그런 이야기들을 하죠."

 

"창극을 세계로 수출할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 사회가 물질만능주의잖아요. 결혼도 사랑도 그렇고. 어떻게 생각하나요.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당연히 그것이 행복이라고 생각을 하겠죠. 돈이 많이 있으면 좋겠다, 돈 많으면서 사랑까지 있으면 좋겠다고. 그렇지만 하늘은 모든 것을 다 주지 않는다고 이야기들 하데요. 하나가 있으면 다른 것은 없고, 그래서 세상사는 맛이 더 있지 않겠어요.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사랑이 과연 행복할 것이냐, 그렇지 않고 없지만 만들어가고 채워나가는 사랑이 더 행복할 것이냐. 다 갖추고 행복하면 좋겠지만 세상은 절대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두 사람이 만나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면서 만들고 쌓아나가는 사랑이 죽을 때 행복한 사랑이다 하지 않겠어요.

 

저 역시도 부와 권력을 다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은, 욕심은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하지만 막상 결혼하고 살다 보니까 두 사람이 만나서 부부인연을 맺어서 그 사랑을 고생과 노력을 통해가지고 만들어가는 것이 참사랑이겠다 싶네요."

 

- 지방에서 공연이 끝나면 바로 서울로 올라갑니까, 아니면 잠시 쉬면서 지방나들이라도 하나요?

"공연일 하루 먼저 내려옵니다. 다음날 리허설을 하고 저녁에 공연을 마치면 밤 10시가 됩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들어가 대개 잡니다. 그 다음날 아침에 서울로 출발하니까. 지방으로 다니긴 하지만 공연장과 숙소만 왔다갔다 하는 셈이죠. 여유시간이 있어 그 지방의 유적지도 돌아보고 지역특산물도 먹어보고 그러면 좋을 텐데 조금 아쉽죠."

 

- 연출하기 전에 창극단원이었다고 하던데요.

"2001년도에 창극배우가 연출을 할 필요가 있다, 소리를 알고 있는 사람이 창극연출을 해야된다는 의견이 그전부터 제기가 되었었죠. 판소리를 모르면서 창극연출을 한다고 했을 경우에 판소리를 충분히 이해 못하는 부분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죠.

 

제가 창극배우를 하고 판소리를 했던 사람이라 창극 연출쪽에 관심을 좀 가져보자해서 2001년부터 <봄의 향기>라고 춘향전을 세미나처럼해서 국립창극단에 올린 적이 있어요. 그게 계기가 되어서 12바탕을 복원하는 의미로 2005년에 <장끼전>을 만들어서 공연을 했지요.

 

2006년에는 대중적인 부분, 관객들이 알고 있고 쉽게 접할 수 있는 작품이 뭔가 하고 찾은게 <맹진사댁 경사>였죠. 이것을 쉽게 풀어보자고 해서 2006년 <시집가는 날>로 각색해서 공연하고, 2007년 2008년에 걸쳐 지방순회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 연출가로서 몇 년이 흘렀네요. 꿈, 바람은 무엇인가요.

"'서양뮤지컬'하면 뜨거운 반응이 있잖아요. 창극도 우리나라 뮤지컬인데 우리 것은 소외받고 서양 것은 비싼 돈을 주고도 매진이 되고.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생각 많이 해요. 우리나라 창극을 서양뮤지컬 못지않게 상품화, 대중화시켜서 앞으로 10년이 가고 20년이 지났을 때 거꾸로 창극을 유럽이 됐든 미주가 됐든 세계로 수출하는 그런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의 창극을 세계로 나가는 창극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제가 여기에 있으면서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야 하겠죠."

덧붙이는 글 | 다음 블로거에도 올립니다.


태그:#시집가는 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널리스트, tracking photographer. 문화, 예술, 역사 취재.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